「훌리건과 벌컨」, 정당이 납치된 시대의 죽비소리
장훈 교수는 훌리건들 반대편에는 벌컨(Vulcan)들이 포진해 있다고 역설한다. 벌컨은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 판단을 중시하는 시민들을 뜻한다. 장훈 교수는 벌컨들이 소란스러운 지금의 정치판에서 설 자리를 잃은 채 깊은 침묵 속에 빠져버렸다고 「훌리건과 벌컨」에서 긴 한숨을 내쉬며 개탄했다. 훌리건의 득세와 벌컨의 퇴조 현상은 상식적 민심과는 나날이 동떨어져가는 이른바 당심에 무기력하게 휘둘려온 최근 20여 년 동안의 한국 정당정치의 족적에서 뚜렷하게 증명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임지민 기자
서울시는 조선 선조(宣祖) 22년(1589)인 기축년(己丑年) 7월 29일부터 그해 9월 27일까지 승정원(承政院)을 통해 처리된 왕명의 출납, 행정 사무 등이 기록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소장 <선조 기축년사초(宣祖 己丑年史草)>를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선조 기축년사초>는 총 38일의 기록을 날짜별로 담고 있으며, 해당 일자의 간지(干支) 다음에는 ‘청(晴)’, ‘음(陰)’, ‘우(雨)’ 등과 같이 그 날의 날씨가 적혀 있고, 이어 승지나 대간(臺諫) 등이 올리는 계사(啓辭)와 그에 대한 임금의 전교(傳敎), 경연(經筵)에서 군신(君臣)이 논의한 대화, 신하들의 헌의(獻議) 등과 같은 국정과 관련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표지
본 희귀본은 그 내용과 형식이『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유사함에 따라 당시 승정원 주서(注書) 또는 가주서(假注書)로 재직하고 있던 관원이『승정원일기』의 작성을 위해 기록한 초고(草稿)로 추정된다. 행서(行書)가 섞인 해서(楷書)로 쓰인 필체(筆體)를 통해 볼 때, 최소 3인 이상이 필사(筆寫)에 참여한 것으로 판단된다.
『승정원일기』는 조선 전기부터 지속적으로 작성되었으나 선조 이전의 일기는 임진왜란(1592년)으로 인하여 불타고 말았으며, 임진왜란 이후 인조(仁祖) 원년(1623)까지 기록된 일기도 1624년에 발생한 이괄(李适)의 난으로 대부분 소실되어 본 <선조 기축년사초>의 희소성이 가중된다.
특히 본 문화재의 가장 큰 특징은 작성 후 그 내용을 수정 · 보완해 나가는 과정이 여실히 드러난다는데 있다. 날짜 순서가 뒤바뀐 기록, 내용을 지우고 다시 기재한 점, 문장을 새로 삽입한 부분 등을 통해 <선조 기축년사초>는 완전한 정리가 이루어 지지 않은 초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선조 기축년사초>의 기재방식이 일부『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유사하며『선조실록(宣祖實錄)』에 누락된 기사들도 자세히 기재되어 있어 해당 내용과 실록 편찬 과정 등을 살펴보는데 유용하다. 이에 대한 학계의 심도있는 검토를 기대하는 바이다.
따라서 본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소장『선조 기축년사초』는 현재 전하지 않는 임진왜란 이전의『승정원일기』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일차 사료로서 서울시는 이를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향후 지속적인 보존 · 관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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