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리건과 벌컨」, 정당이 납치된 시대의 죽비소리
장훈 교수는 훌리건들 반대편에는 벌컨(Vulcan)들이 포진해 있다고 역설한다. 벌컨은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 판단을 중시하는 시민들을 뜻한다. 장훈 교수는 벌컨들이 소란스러운 지금의 정치판에서 설 자리를 잃은 채 깊은 침묵 속에 빠져버렸다고 「훌리건과 벌컨」에서 긴 한숨을 내쉬며 개탄했다. 훌리건의 득세와 벌컨의 퇴조 현상은 상식적 민심과는 나날이 동떨어져가는 이른바 당심에 무기력하게 휘둘려온 최근 20여 년 동안의 한국 정당정치의 족적에서 뚜렷하게 증명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10일 청와대가 20일만에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 답변서는 오류와 모순투성이였다. 기존 진술과 공식발표 등의 앞뒤를 짜 맞추려다 오류를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아주 기초적인 시간대도 맞지 않는 대목도 눈에 띄었다. 대통령 측은 15:35에 관저에서 미용사의 머리손질을 20분간 받았다고 하면서 15:42에 집무실에서 외교안보수석실 서면보고를 받았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지난주 윤전추 행정관의 “미용사 2명이 20분간 관저에서 머물렀다”는 진술과 앞뒤를 맞추려한 흔적이다. 헌법재판소가 “본인 기억을 되살려 다시 제출하라”며 퇴짜를 놓은 것은 당연하다.
오류와 거짓으로 가득 찬 답변서지만 그 자체를 그냥 사실로 받아들인다 해도 국민의 화를 돋우는 대목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사고의 최초 인지시점이다. 당일 9시 19분 최초 방송 보도 이후 온 국민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때에 10시나 되어서야 관저에서 안보실로부터 첫 서면보고를 받았다는 답변이 대표적이다. 관저가 곧 집무실이라며 24시간 재택근무를 하는 시스템이라고 반박하고 나선 것도 국민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언제는 ‘여성대통령의 사생활’ 운운하더니 이제는 숙소인 관저가 집무실이라니 믿어줄 국민이 없다.
공식 답변서에 기초해도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이 오후 3시다. 국민들은 TV와 라디오 뉴스속보에 눈과 귀를 대고 있던 시간들이었는데 모든 정보가 집중되는 청와대에서 사건 발생 6시간이 넘어서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게다가 스스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지 35분 뒤인 3시35분에 외부에서 미용사를 급히 불러 머리손질을 했다고 하니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기에도 어렵다.
그래놓고는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수습과 인명 구조, 재발 방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고 직무에 태만하였다는 비판을 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며 발뺌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대응태도는 대통령으로서의 지위에 대한 자각이나 소명은 전혀 없다. 오직 피의자로서의 자기방어 논리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권리와 권한을 동원해 시간을 끌며 피의자 신분에서 죄의 책임을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이런 태도로 인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고려할 필요성이 사라지고 엄중한 법적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할 이유는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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