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군은 외적과 싸울 때는 세계 최강의 군대였지만 그 칼끝이 안으로 향할 때는 나라의 큰 우환거리가 되었다. (이미지는 영화 속 로마군단 전투 장면)
이 운명의 날, 황제를 경호하는 책임은 군사 호민관 마르티알리스가 지고 있었다. 그는 황제를 시해하려는 음모에 공모하지 않았음에도 반란군 무리에게 순순히 길을 내주었다. 대세에 편승하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적 처신이였다. 사령관의 패배주의적 행보를 목격한 황제의 근위병들은 일부는 도망갔고, 일부는 오토의 반란군에 가세했다.
이 모든 급박한 상황은 팔라티노 언덕의 갈바에게 실시간으로 보고되었다. 책봉식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사제의 불길한 점괘가 너무나 빨리 현실이 된 데 경악했다. 근처 광장에 자리해 있던 인파가 불안감 반, 호기심 반으로 몰려들면서 언덕은 이내 사람들로 빽빽해졌다. 비니우스와 라코를 비롯한 황제의 최측근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는 칼을 뽑아 들고 황제를 호위했다. 피소는 후계자도 책봉된 기쁨을 채 누릴 사이도 없이 구원병을 부르러 동분서주했다. 갈바에게 충성을 다해온 마리우스 켈수스는 빕사니아 주랑에 진을 친 일리리아 군단에 도움을 요청하러 정신없이 달려갔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오토의 진영과 달리 갈바의 신하들은 자중지란에 휩싸였다. 비니우스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자고 제안하자 켈수스와 라코는 그에게 결자해지의 자세로 전면에 나서서 사태를 수습할 것을 촉구했다. 비니우스의 국정농단과 호가호위가 파국의 원인으로 작용한 탓이었다.
이때 갈바에게 희망의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근위병들 중 한 명인 율리우스 앗티쿠스가 느닷없이 나타나 오토가 죽었다고 고했기 때문이다. 그는 반역의 수괴를 척살한 증거라며 피 묻은 검을 내보였다.
반란이 끝났다고 안심한 갈바는 가마를 대령하라고 지시했다. 유피테르 신전에 들러 감사의 예물을 바친 다음 시민들에게 황제의 건재함을 과시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앗티쿠스가 떠들어댄 가짜 뉴스는 갈바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희망고문이었다. 황제가 탄 가마가 광장에 이르자 시민들 대신에 무장한 반군 병력이 그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반군들은 시민들에게 다칠 수도 있으니 속히 피할 것을 엄명했다. 반군의 명령조차 대중의 관음증 욕구를 억누를 수는 없었다. 군중은 마치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만난 듯이 로마 제국 최고 통치자의 임박한 비극적 최후를 육안으로 목도하기 좋은 장소를 경쟁이라는 하는 것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찾아 꿰찼다. 반란군과 시민들이 뒤섞여 아비규환을 이루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황제의 가마는 몇 차례나 전복될 뻔했다.
황제가 탄 가마를 겨냥한 공격은 적군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전개되는 군사작전을 방불할 만큼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황제의 조각상을 뒤엎는 것을 공격개시 신호로 삼아 선두에는 기병대가, 후위에는 보병들이 가마를 향하여 돌격해왔다. 그러나 반란군이 던진 투창은 황제의 가마에 단 한 개도 명중하지 못했다. 황제를 처치했다는 공을 다투느라 제대로 조준도 하지 않고 서둘러 마구 던져댄 연유에서이리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는 셈프로니우스 덴수스라는 이름의 백부장의 분전이 특별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이날 황제의 목숨을 지키려고 자신의 본분을 다한 유일한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12·12 군사반란 당시에 신군부에 맞서서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한 김오랑 중령을 연상시키는 참군인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하겠다.
셈프로니우스는 처음에는 칼이 아닌 지휘용 채찍을 휘둘렀다. 같은 로마군끼리 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양심과 신념의 발로였다. 그러나 그는 반란군의 공격이 격렬해지자 마침내 칼을 들고 싸웠다. 역시나 중과부적이었다. 로마의 이 참군인은 결국은 사타구니에 치명상을 입고 안타깝게 쓰러지고 말았다.
셈프로니우스가 쓰러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탑승한 가마가 요란하게 뒤집혔다. 가마에서 떨어진 갈바는 가슴을 보호하는 흉갑만 두른 상태였다. 몸 여기저기에는 무수한 상처가 나 있었다. 죽음을 직감한 황제는 그의 생명을 거두러 온 불충한 병사들을 이러한 말로 의연하게 타일렀다. 이 말은 온화했으되 우유부단했던 늙고 불운한 황제의 유언이 되었다.
“이것이 나라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면 제군들 뜻대로 하게나.”
피투성이가 된 황제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한 반란군 병사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파비우스 파블루스라는 자는 죽은 황제의 머리를 창끝에 꽂아 높이 올리고선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님으로써 국가를 능멸하고 군의 명예를 실추시킨 희대의 악한으로 그 부끄러운 이름을 후세에 영원히 남기게 되었다.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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