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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23명으로 로마 제국을 접수하다 - 로마의 강화도령 갈바 (7)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5-10-03 22: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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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는 낙담한 와중에도 로마의 모든 길이 통하는 광장의 금빛 기둥으로 향했다. 소수로 다수를 제압·정복하려면 중앙을 차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갈바 황제의 흥망을 기록한 「이다희 번역, 도서출판 휴먼앤북스 발행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제 10권 표지황제가 누구를 후계자로 정할지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좌고우면하는 사이에 로마군 최강의 병력이 배치된 게르마니아에서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보상금을 받지 못한 데 대해 앙심을 품은 군단병들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게르마니아 군단병들은 상관인 베르기니우스 루푸스가 갈바로부터 푸대접을 받은 일에 특히 불만이 컸다. 루푸스가 황제 자리를 순순히 양보한 덕택에 갈바는 비교적 무난히 대권을 거머쥔 터였다. 반면, 베르기니우스와의 전투에서 패배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갈리아 지역 총사령관 빈덱스는 사후에 정중한 예우를 받았다. 게다가 빈덱스를 따르던 갈리아의 군인들에게는 게르마니아 병사들이 받지 못한 두둑한 보상금이 주어졌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하기는 서기 1세기 중엽의 로마인들도 매한가지였다.


변고는 하필이면 새해 첫날 일어났다. 통풍으로 고생해온 플락쿠스는 어렵게 몸을 움직인 다음 병사들을 소집해 황제를 향한 의례적 충성을 맹세할 것을 명령했다. 병사들은 명령에 집단으로 불복종하고는 황제의 조각상들을 거칠게 쓰러뜨린 후에 각자의 막사로 휑하니 돌아갔다.


병사들의 공공연한 하극상에 놀란 한 지휘관이 황급히 수습책을 제시했다. 청렴하고 강직하기로 소문난 아울루스 비텔리우스를 새로운 황제로 추대하자고 동을 뜬 것이다.


비텔리우스는 실제로는 청렴하지도 않고, 강직하지도 않았다. 병사들의 분노가 자신에게까지 미칠 것을 염려한 장교 한 명이 서둘러 생각해낸 대안이 하필이면 저지(低地) 게르마니아, 곧 라인강 하구 지방에 주둔한 군대를 이끌고 있던 비텔리우스였다.


병사들이 장교의 제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동안 군대의 항명 소식은 당사자인 비텔리우스에게도 전해졌다. 비텔리우스는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역인 너무나 큰 도박 앞에서 결정을 미루다가 이튿날 군단장 파비우스 발렌스가 대규모 기병대를 인솔하고 도착해 그를 황제로 추대하자 마침내 마음을 굳혔다. 최정예 기병대가 그의 간 크기를 단박에 몇 배로 키웠던 셈이다.


12·12 군사쿠데타 당시 사단장인 노태우 소장이 서부전선 최전방에서 무단으로 빼낸 육군 제9사단 병력은 전두환의 신군부 측으로 승세를 확실하게 굳혀주는 역할을 했다. 발렌스의 기병대는 비텔리우스에게는 전두환에게 천군만마가 되었던 1979년 12월의 9사단 같은 존재였다. 플락쿠스의 통제권에서 벗어난 병사들도 이윽고 비텔리우스 편에 가담함으로써 그는 한층 더 대담하고 신속하게 제위를 노릴 수 있었다.


대업을 아직은 이루지 못한 비텔리우스는 겸손은 힘들지 않음을 증명하려 애썼다. 황제 계승 1순위자를 뜻하는 카이사르 칭호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게르마니쿠스 호칭만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게르마니아를 정복한 자’를 의미하는 게르마니쿠스는 단순히 군사적 공적만을 가리키지 않았다. 로마 최고의 명문가 소속임을 인증하는 표지이기도 했다. 비텔리우스는 게르마니쿠스 호칭을 수락함으로써 자기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로부터 연원하는 ‘로마판 백두혈통’의 고귀한 일원임을 요란하게 광고했다.


비텔리우스가 황제에 옹립되었다는 급보는 제국의 잘 닦인 도로망을 타고서 수도 로마에 이내 당도했다. 갈바가 취한 첫 번째 대응조치는 세간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는 행동이었다. 그는 오토도, 비니우스도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았다. 신중하고 예의발랐으되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은 귀족 청년 피소에게 카이사르 호칭을 수여하며 그를 황위 후계자로 선포했다.


이 예상 밖 결정에 가장 먼저 동요한 집단은 비텔리우스가 주동하는 반란 진압에 나서야 할 주체인 군대였다. 군부가 선호하는 인물이 후계자로 낙점받지 못한 탓이었다. 갈바의 주재 아래 진행된 피소의 황태자 책봉식에서 돌연 천둥 번개가 무섭게 쳐대면서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친 일은 황제에게도, 그의 젊은 후계자에게도 영 불길한 징조였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완전 돼버린 오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괜히 섣불리 행동에 나섰다가는 황제에게 오로를 숙청할 수 있는 빌미만 제공할 수 있었다.


급한 비를 피하려 납작 엎드린 오토와 달리 측근들은 즉각 거사에 나설 것을 주군에게 촉구했다. 그 가운데에는 예언자인 프톨레마이오스도 끼어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오토보다 네로가 먼저 죽을 것을 정확히 점친 바 있었다. 그는 네로 황제의 조기 몰락을 예견하면서 오토가 황제에 오를 것 또한 아울러 예언했다. 앞의 점괘가 맞았으니 응당 뒤의 점괘도 적중할 것이라는 달콤한 언사로 프톨레마이오스는 오토의 거병을 집요하게 부추겼다.


갈바에게 불만을 품은 불온한 세력 역시 오토 주변에 속속 결집했다. 이렇게 오토에게 달라붙은 무리에는 님피디우스의 잔당은 물론이고 심지어 티겔리누스의 지지자들도 포함돼 있었다. 티겔리누스는 갈바의 은전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죽은 네로 황제에게 충성했던 인사들이 권토중래를 꿈꾸며 오토의 빅캠프에 대거 참여한 양상이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 맹상군은 다양한 재주를 지난 3천 명이 넘는 식객을 거느렸던 것으로 유명하다. 계명구도(鷄鳴狗盜)의 사자성어를 남긴 맹상군 못잖게 오토 휘하에는 온갖 잡다한 인간 군상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중에는 척후병 구실을 맡은 벤투리우스와 전령 노릇을 담당한 바르비우스도 있었다.


두 사람은 몸놀림도, 판단력도 두루 빠른 자들이었다. 이들은 해방 노예 출신으로 언변이 빼어난 오노마투스와 함께 3인조로 구성된 별동대를 이뤄 도성 안팎의 군영을 휩쓸고 다니며 때로는 돈으로, 때로는 말로 장병들을 꼬드겼다. 3인조의 반란 선동은 단 6일 만에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갈바가 피소를 후계자로 입양했다고 발표한 지 불과 엿새 후에 군대가 황제와 그 의붓아들을 수많은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백주에 참살했기 때문이다. 당대의 로마 역법을 기준으로 1월 15일에 벌어진 대역 사건이었다.


그날 날이 밝자 황제는 황궁이 소재한 팔라티노 언덕에서 신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는 의례를 거행하기 시작했다. 행사의 절정은 사제 움부르키우스가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내장으로 점을 치는 점복 의식이었다. 그런데 점괘의 내용이 좋지 않았다. 사제는 곧 반란이 일어날 거라고 큰소리로 경고했다. 황제도, 피소도 얼굴이 금세 흙빛으로 변했다.


안색이 사색이 되기는 오토도 마찬가지였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그는 모반 계획이 들통날지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오토는 새롭게 구입한 저택을 수리하는 공사를 감독해야만 한다는 핑계를 대충 둘러대곤 행사장을 떠났다.


그가 향한 곳은 새로 산 집이 당연히 아니었다. 광장에 우뚝 선 금빛 기둥이 있는 자리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한다. 그때의 로마는 오토가 찾아간 바로 이 금빛 기둥을 가리켰다. 보위를 찬탈하려는 인물과 그 추종자들에게 국가의 도로원표가 위치한 지점은 매우 어울리는 집결 장소였다.


이곳에서 오토를 기다리던 병사는 통틀어 고작 스물세 명이었다고 한다.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세 개의 대륙에 광활하게 영토가 걸쳐 있는 로마 제국의 권력을 차지하겠다고 봉기한 숫자치고는 너무나 초라한 규모였다.


오토는 근육질의 다부진 몸매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는 건장하지 못한 체구를 가졌다는 단점을 강한 정신력으로 만회해왔다. 그렇지만 이날만큼은 강심장의 오토조차 두려움으로 몸을 떨어야만 했다. 그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가마꾼들이 짊어진 가마에 올라탔다. 가마에 탄 오토는 침울한 어조로 “이제 모두 끝났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되풀이했다고 플루타르코스는 기록하였다.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한 대장과는 정반대로 23인의 군인들은 용기와 자신감으로 충만한 상태였다. 가히 23개 군단을 상대하고도 남을 배짱과 담력이었다.


그들 개개인의 당당한 위용과 호전적 자세가 대세를 결정지었다. 23명의 병사가 내뿜는 일당백의 기세에 압도당한 동료 병사들이 오토가 탄 가마 주위로 계속 몰려든 이유에서였다.


오토 일행을 따르는 병사들의 숫자는 장마철 강물처럼 급속도로 불어났다. 그들은 오토를 우렁찬 함성으로 일제히 황제라 불렀다. 그리고 동시에 칼을 칼집에서 뽑아 하늘로 높이 치켜들었다. 병사들이 내지른 고함 소리는 듣는 사람들의 귀를 먹먹하게 했고, 뽑아 든 칼날에 반사된 강렬한 태양빛은 보는 사람들의 눈을 눈부시게 만들었다.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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