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서기 1869년의 3인의 동갑내기
트럼프의 친할아버지 프레데릭 트럼프가 청소년기를 보내던 시기의 독일은 거침없는 기세로 국운이 상승하던 독일이었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 빌헬름 2세(왼쪽 사진)의 세계정책과 황화론이 차례로 출현했다.
19세기 후반인 서력 1869년, 세 명의 중요한 인물이 고고지성을 울렸다. 한 사람은 인도의 독립투사이자 인권운동가 모함다스 카람찬드 간디 즉 마하트마 간디였다. 다른 한 사람은 현대적 공군 개념과 전략폭격 이론의 창시자인 이탈리아의 직업 군인 줄리오 두헤였다. 간디와 두헤 모두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죽었다. 마지막 한 사람은 프레데릭 트럼프였다. 그가 태를 묻은 땅은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 지방이었으나 숨을 거둔 곳은 미국 최대 도시 뉴욕이었다. 그는 세 명 가운데 유일한 이민자였던 셈이다.
간디와 두헤의 자손들이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세계인의 대부분은 알지도 못하거니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반면에, 프레데릭 트럼프는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아주 이름난 손자를 두었다. 그는 미합중국의 전직 대통령 겸 현직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할아버지였다. 즉 이방카 트럼프가 그의 증손녀란 뜻이다.
영국이 장사꾼의 국가라면 독일은 철학자의 나라였다. 장사꾼은 이해관계에 입각해 행동한다. 철학자는 신념에 근거하여 움직인다. 문제는 인류 역사에 커다란 상흔을 남긴 악당들은 태평천국의 홍수전이나 제3제국의 히틀러나 크메르루주의 폴포트처럼 하나같이 투철한 확신범이었다는 데 있다. 철학자의 나라 독일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전부 일으킨 까닭이다.
트럼프는 한국에 미국 화폐로 3천 5백억 달러, 원화로는 물경 491조 원을 선불(Upfront)로, 게다가 일시불로 내놓으라고 채근하고 있다. 트럼프의 요구를 들어주는 순간 대한민국은 폭삭 거지꼴이 될 것임은 굳이 두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트럼프는 한국과 이웃한 일본을 향해선 5,500억 달러를 토해내라고 압박하는 중이다. 일본이 1980녀대의 거품경제 시절에 벌어놓은 게 아무리 많아도 이쯤 되면 정말 막가자는 거다.
트럼프는 어째서 저 난리를 치는 것일까? 순간 나는 비로소 확실히 집히는 구석이 있었다. 트럼프가 다름 아닌 독일계 혈통이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의 조부 프레데릭 트럼프는 독일판 통일 전쟁일 보불전쟁, 곧 프러시아-프랑스 전쟁이 발발하기 한 해 전에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카리스마적 영도 아래 독일제국의 국운이 그야말로 욱일승천의 기세로 거침없이 상승하던 시기의 중부 유럽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훗날 미국으로 이주한 트럼프는 금광 개발에 성공해 막대한 부를 쌓으며 지금의 트럼프 가문의 영광과 번영이 존재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튼튼하게 구축했다. 그가 만약 신대륙으로 건너오지 않고 모국에서 계속 생활했다면 오늘날의 세계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생전의 할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트럼프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조부가 폐렴으로 사망한 탓이었다. 그러나 돈과 권력과 영광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조부의 정신과 기질은 손자에게 고스란히 이어진 듯싶다.
Make Occident GREAT AGAIN, 서양을 다시 위대하게
총통의 독일이 등장하기 이전에 황제의 독일이 있었다. 황제의 독일은 카이저 빌헬름 2세 시대에 화려하게 꽃피었다가 급속하게 시들었다. 1차 대전 발발 전의 빌헬름 2세는 세 가지 사건으로 유명했다.
첫째는 비스마르크를 전격적으로 해임하고 친정(親政)을 시작한 일이었다.
둘째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상대로 건함 경쟁에 몰두한 일이었다.
셋째는 황화론(黃禍論 : Yellow Peril)을 주장하며 백인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한 일이었다.
백악관에 재입성한 트럼프는 공교롭게도 빌헬름 2세와 유사한 행보를 걸어왔다.
첫 번째로 그는 노련한 정치인과 경륜 있는 관료들을 그림자 국가(Deep State)의 일원이라 매도하며 모조리 내쳤다.
두 번째로 중국과 해군력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군비증강 경쟁을 전개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는 한국이 조선업에서의 협력을 매개로 미국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 정확히는 착각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세 번째로 황인종 국가의 간판격일 한중일 3국을 겨냥한 급속하고 무차별적 관세 인상에 나섰다. 산업혁명 이후로 서세동점으로 고통받아온 동양이 서양을 마침내 추월할 수 있으리라는 개꿈에서 동아시아 3국은 일찌감치 깨어나라는 투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Make America Great Again!)”는 기염을 쉬지 않고 토해왔다. 제국을 경영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은 한국인의 치명적 약점으로 꼽혀왔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식견깨나 갖췄다는 지식인 계층은 물론이고 일반 민중마저 조야하고 피상적인 경제결정론(Economic determinism)의 시각과 잣대로 세계사의 흐름과 국제정세의 변화를 파악·이해하라는 경향이 지나치게 널리 퍼져 있다.
트럼프가 목표하는 미국은 무엇일까? 단지 국민소득 증가시키고 무역수지 개선하는 게 위대한 미국으로 가는 길일까? 전혀 아니다. 서양 제국주의의 뿌리는 중세의 십자군 전쟁이었다. 십자군 전쟁은 잃어버린 성지 예루살렘을 이교도들의 마수에서 되찾자는 지극히 관념적 동기에서 출발했다. 경제적 이해타산은 그다음이었다.
트럼프의 선구자로 평가돼야 마땅할 독일의 빌헬름 2세의 세계정책(Weltpolitik)은 본디 독일제국의 명성을 전 세계에 떨치고 싶다는, 실리적으로는 무용하기 짝이 업는 과시욕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현대 한국인에게 체질화된 소박한 유물론적 사고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무모한 국책이었다. 트럼프의 대외정책을 곰곰이 뜯어보면 빌헬름 2세의 세계정책만큼이나 경제적으로 마이너스인 행위가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그는 마이웨이를 고집하며 무소의 뿔처럼 가고 있다. 왜냐? 미국은 위대해야 하니까. 그리고 백인종은 우월한 인종이니까.
국내외 여러 외교 전문가들의 애당초 예상과 달리 트럼프는 북한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는 일에, 중국으로부터 대만을 지키는 데 매우 소극적이다. 이유는 뻔하다. 한반도의 대립과 대만 해협의 갈등은 트럼프에게는 그저 황인종끼리의 불화일 따름이다. 자기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에 미국이 국력을 쏟아가며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게 트럼프의 솔직한 속내이리라.
트럼프는 한일과 중국에 대해서 상당한 온도 차이가 있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연한 노릇이다. 트럼프는 서양이 동양을 제압해야 한다는 나름의 서생적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동시에 그는 버겁고 거대한 중국 대신에 작고 만만한 한국과 일본을 때리는 게 낫다는 상인적 현실감각 또한 지니고 있다.
트럼프는 입으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고 있다. 허나 몸으론 “서양을 다시 위대하게(MOGA : Make Occident Great Again)”를 실천하고 있다.
트럼프가 푸틴에게 꾸준하게 우호적인 원인은 단 하나, 그가 보기에 러시아는 서구 문명에 속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인종과 문명의 광대한 바다를 항진하고 있건만, 한국은 관세와 수출의 비좁은 가두리 양식장 안에 여전히 답답하게 갇혀 있는 형국이라 하겠다.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만 줍는 안일하고 수동적인 타성에서 우리는 과연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