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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조국의 엇갈린 운명 - 조국은 부활했는데 윤석열의 미래는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4-05-21 00: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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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윤석열 집권의 토대를 마련했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조국 부활의 동력을 제공했다. 두 사람의 이러한 의도하지 않은 상부상조 관계는 우리나라 정치를 롤러코스터에 태워왔다. 이미지는 윤 대통령과 조 대표의 조우 소식을 보도한 TV 조선 뉴스 화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금은 어엿한 공당인 조국혁신당의 대표자로 변신해 며칠 후에는 정식 국회의원 신분으로 원내에 입성하게 되었다. 그가 임명직인 법무부 장관으로 입각하는 경로 대신에 총선 출마 등과 같은 선출직 형태로 공직의 길에 들어섰다면 대한민국 제도정치권의 지형은 현재와는 판연히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

 

시계를 수년 전 과거로 돌려보련다. 이른바 조국 사태가 절정으로 치달을 즈음, 단행본 하나가 출판됐다. 제목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조국 흑서」란 별칭으로 인구에 더 널리 회자되며 민주당 정권, 즉 문재인 정부를 끝장내는 최전방 돌격대 구실을 톡톡히 하게 된다.

 

책의 저자는 총 5명. 이 가운데 권경애 변호사는 불성실한 자세로 변론에 임한 게 문제가 돼 공적 활동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김경율 회계사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에 비대위원 자격으로 참여했다가 영부인 김건희 여사를 시쳇말로 들이받는 바람에 용산 대통령실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상태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작금에 이르러 그 의식과 행태가 편벽되고 시대착오적인 극우 유튜버처럼 돼버린 탓에 많은 누리꾼들로부터 실소를 자아내는 중이다. 다른 공저자들과 견주어 비교적 덜 우경화한 것으로 평가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광운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아는 사람은 많아도 실제로 읽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측면에서 「조국 흑서」 또한 일종의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해당 도서가 출간될 무렵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정계 입문과 곧 이은 대선 출마가 초읽기에 돌입한 듯한 분위기였다. 대선판에 뛰어들려면 세력과 명분이 동시에 절실하게 필요하다. 흑서 저자들은 당시까지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지위를 아직 유지하고 있던 윤 대통령에게 대통령 선거전에 끼어들 이데올로기 혹은 알리바이를 제공해줬다. 필자가 조국 흑서의 저자들을 윤석열 정권의 초기 창업 공신으로 기꺼이 고평가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조국 전 법무장관은 되살아났다. 조국 흑서의 메가톤급 핵폭탄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뚝이처럼 기적적으로 다시 일어섰다. 범야권 지지층 입장에서 조국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무당층 유권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는 운 좋게 부활을 당했다.

 

능동태로 부활을 했든, 아니면 수동태로 부활을 당했건 관건은 조국이 무기력한 서생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야당 지도자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고, 조국 대표의 이러한 극적인 회생과 재기의 중심에는 하필이면 윤석열 대통령이 특유의 거대한 몸집을 드러내며 떡하니 버티고 있다.

 

조국 흑서가 등장한 일이 중요한 계기가 되어 윤석열 정권이 출범했다. 그런데 세상은 역시나 돌고 도는 요지경 속인 모양이다. 지난번에는 흑서가 나라를 요란하게 들었다 놨다 했더니, 이번에는 백서로 말미암아 집권당이 한바탕 크게 뒤집히기 일보 직전이다. 국민의힘이 올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희대의 굴욕적 참패를 당한 원인과 이유를 분석ㆍ제시해놓을 총선 백서에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과 오판을 어떻게 기술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여권 전체가 둘로 짝 갈라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당들에서 대선과 총선 등 주요한 선거의 교훈과 문제점을 기록한 백서는 계파 갈등의 도화선 겸 진원지 역할을 수시로 해왔다. 그 결과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은 물론이고 심지어 승리한 정당마저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힘들게 백서를 만들어놓고는 중세 암흑시대의 불온한 금서인 양 비공개로 꽁꽁 묶어두기 일쑤였다. 백서를 감춰둔 덕에 일시적 봉합은 이뤘을지 몰라도 선거에서 왜 졌는지에 대한 진지하고 발본적인 자기반성은 줄곧 외면당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싫은 소리만 들으면 조건반사적으로 격노하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윤 정부에 대한 중가평가 성격을 띤 총선에서 역대급 대패를 하고서도 국민의힘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쉬쉬하기 바쁘다. 역대급 대패에 조응하는 역대급 정신승리인 셈이다.

 

윤 대통령의 측근들 중 조금은 머리가 돌아가는 축은 투표일 바로 이튿날 당대표직을 사퇴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끌어들여 물타기에 급급하다. 한동훈이 여당의 선거를 지휘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가장 치명적 과오와 실책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끌려다닌 데 있음은 굳이 두말한 나위가 없으리라. 총선 패배와 관련된 책임 규명 작업의 출발점이 어디든지 간에 그 최종 도착지는 항시 윤석열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배경이다.

 

조국 흑서가 발간됐을 당시 그때의 집권세력이 흑서의 내용 일부만이라도 무겁게 경청하는 시늉을 했다면 20대 대통령 선거의 승자와 패자는 바뀌었을지 모른다.

 

조국 흑서는 갖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종내는 나오긴 나왔다. 반면, 국민의힘의 총선 백서는 예정대로 완성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조국 흑서의 주인공 아닌 주인공이었던 조국 대표는 결국은 부활했다. 총선 백서의 주역일 윤석열 대통령은 부활의 기회조차 잡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고통스러운 부활의 기적을 고독하게 완수해야만 할 당사자가 십자가에 박히기를 한사코 거부하며 주변에 인의 장벽을 더욱더 두껍게 치고 있으니 어찌 부활을 감히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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