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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희⑤, “휴식 같은 방송인이 되고 싶다” - 나의 직업적 이상형은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아나운서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3-04-27 15:5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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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경쟁의 승패를 좌우할 중요한 승부처마다 분야를 막론하고 금과옥조로 언급되어온 격언이다. 강자생존이 아닌 적자생존이 관철되는 냉혹한 자연의 세계를 관찰하며 인간이 터득한 교훈일 터이다.

박지희 아나운서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는 방송인이 되겠다는 명확한 포부와 바람을 이번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방송인으로서 약한 사람을 도우려면 스스로는 역설적으로 강해져야만 한다며, 그 강해짐은 폭발적 인기보다는 지속적 호응을 받는 방송인이 되는 데 있다고 역설했다.

아나운서는 말의 힘으로 성공해야 하는 직업

 

박지희 아나운서는 방송에서는 할 수 없는 얘기들을 담은 에세이집 「밟아도 되는 꽃은 없다」를 2023년 1월 발간했다. 이미지는 박지희 아나운서가 써낸 책의 표지공희준(이하 공) : 제가 현재 살고 있는 집 근처에 MBC 아카데미가 자리해 있습니다. 제가 처음 잠실로 이사를 올 무렵에는 텔레비전 방송화면에 등장하는 아나운서들이 흔히 하는 형태의 단발머리 모양새의 여성분들이 MBC 아카데미 근처에서 자주 목격됐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분들이 잘 보이지를 않습니다. 아나운서 직종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게 시들해진 여파로 아나운서 지망생들의 숫자도 줄어든 탓인가요?

 

박지희(이하 박) : 방송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분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그러나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대안 미디어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방송사 아나운서가 반드시 돼야겠다고 다짐한 사람들도 줄었습니다. 방송사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교육기관이 과거와는 달리 문전성시를 이루지 않는 이유입니다.

 

공 : 박지희 아나운서님께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명칭을 이참에 소개해주세요.

 

박 : 「채널지희」입니다. 저는 「채널지희」를 특정한 목적의식을 갖고서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존에 블로그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활용해 해왔던 것처럼 저의 소소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을 보여드리면서 다른 분들과의 소통과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생각으로 유튜브 채널을 꾸리게 됐습니다. 제 채널을 찾아오신 분들은 처음에는 다소 의아한 반응을 보이십니다. 그분들께서 알고 계신 저란 사람은 정치와 시사를 주제로 맹렬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격렬하게 공방을 주고받는 인간이거든요. 평범한 보통의 생활인으로서의 저의 삶에는 그리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으십니다. 어떠한 사안과 관련해 제가 어떤 관점을 취하고 있는지가 궁금해 구독을 신청해주신 분들이 대부분이십니다.

 

나라 안팎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쟁점들에 관해 일일이 견해를 보탤 만큼의 내공과 식견은 저에게 솔직히 아직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유튜브 채널에서 세상사에 대해 함부로 속단해 왈가왈부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충분한 숙고를 거치지 않은 저의 생각을 섣불리 발설했다가 다른 이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오도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한 문제를 가지고 남을 이해시킬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제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는 시사평론을 최대한 삼가고 있습니다.

 

공 : 제가 아나운서님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채널지희」에 올라온 영상들을 잠깐 둘러봤는데 부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할 수 있는 정겹고 아늑한 느낌의 콘텐츠 위주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말씀하신 채널을 접하기 전에는 저 역시 ‘박지희’ 하면 강성 발언의 주역이란 이미지가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정치투쟁의 매파가 아닌 생활 속의 비둘기파 박지희와 비록 영상일지언정 직접 대면해보니 쉽게 적응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박 : 제가 정부여당을 겨냥해 새파랗게 날이 선 독설을 퍼붓는 광경을 기대하고서 제 유튜브 채널을 들르셨다면 당혹감부터 느끼시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저는 제 개인 공간에서는 저의 다른 면모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곳에서까지 부담감과 긴장감을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즐겁고 명랑하게 수다 떠는 보통의 행복한 새댁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박지희가 아닌 집에서 살림도 하고, 힘들게 출퇴근도 하는 인간 박지희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누리꾼들도 다행히 계셨습니다. 아나운서도 결국은 똑같은 사람이니까요.

 

공 : 아나운서님에 대한 호기심이 몇몇 단편적인 정치적 발언들로 발동된 경우가 많아서 소소한 일상이 담긴 공간을 더 적극적으로 운영해주셔야 일반 대중의 편견과 선입관이 하루라도 빨리 불식될 것 같습니다.

 

박 : 사람들은 선정적 사건에 쉽게 꽂힙니다. 그러나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흥밋거리들만 계속 좇다 보면 결말이 아름답지를 못합니다. 저는 순간의 욕심에 굴복하지 않는 것을 생활의 신조로 삼고 있습니다. 선정성 짙은 자극적 언동들로 단기적 이목을 끌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이 그 결과를 주체하지 못할 무리수를 범하게 됩니다.

 

공 : 제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이 첨단언론지구(Digital Media City)로 재개발된 다음 처음 이곳에 와봤습니다. 유수의 언론사들 사옥이 마천루처럼 곳곳에 즐비하게 솟아 있는 풍경을 접하자마자 딱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영향력이 있어서 오래가는 게 아니다. 오래가니까 영향력이 있는 것이다”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박 : 맞습니다. 기성 정치인들도 작가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취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자기 이름이 들어간 기사는 부음기사 빼고는 전부 좋아한다고 하니까요. 심지어 선동적 가짜 뉴스에 주인공으로 등장해도 싫지 않은 기색들입니다. (잠시 말을 쉬었다가) 저의 방송인으로서의 목표들 가운데 하나가 끝까지 버티는 방송인이 되자는 데 있습니다.

 

공 : 일시적 눈요깃거리밖에 되지 않을 소재들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오래 버티지를 못하더라고요.

 

박 : 허황하고 그럴싸한 도발적 주장과 논리로 대중의 인기를 끌어모은 인사들은 종국에는 본인이 언급한 말에 발이 걸려 엎어지고 맙니다.

 

공 : 자승자박, 자업자득입니다.

 

박 : 넘지 말아야 선을 넘은 탓입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일단 넘게 되면 그다음에는 자제력을 잃고서 브레이크 고장 난 자동차처럼 폭주하게 됩니다. 그렇게 폭주하다가 어느 순간 방송계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인물들이 여럿입니다. “입으로 흥한 자, 입으로 망한다”, 제가 늘 잊지 않고 유념하는 교훈입니다. 아나운서는 근본적으로 말과 언어의 힘으로 성공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절제심이 더욱더 요구되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훌륭한 방송인은 입에 앞서서 귀부터 연다

 

필자 역시 박지희를 이른바 막말꾼으로만 편벽되이 인식해온 터였다. 실제로 대면해 대화를 나눠본 박지희 아나운서는 막말과 독설로 빚어진 파문에 본인이 휘말리는 사태를 무척이나 조심하고 경계하는 눈치였다.

 

공 : 아나운서님 말씀을 듣고 보니 아나운서야말로 잘못한 말 한마디 때문에 언제든지 한 방에 훅 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직업임을 새삼 뼈저리게 절감했습니다. 내가 자칫하면 순식간에 나락으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일하는 내내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하겠네요.

 

박 : 다른 모든 직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나운서는 일을 하면 할수록 요령이 생기는 직업입니다.

 

공 : 불의의 방송사고에 노련하게 대처하는 아나운서들의 기지 넘치는 활약상이 유튜브 동영상으로 많이 게시돼 있더라고요.

 

박 : 대신에 일에 대해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배워야 할 것들이 오히려 더 많아지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훌륭한 아나운서가 빨리 될 수 있는 편리한 지름길 같은 건 아쉽지만 애당초 없습니다. 한 번 저지른 실수를 두 번은 저지르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공부하고 훈련하는 것만이 좋은 아나운서가 되는 유일한 왕도입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이제는 충분히 보완했다고 안도하는 순간 미처 메우지 못했던 빈틈과 허점이 어디에선가 또다시 발견되곤 합니다. 한마디로, 매우 힘들고 고된 직업입니다. 동시에 재미있고 보람찬 직업이기도 합니다.

 

공 : 10년은 짧고, 20년은 기니 그 중간인 15년으로 기준을 설정하겠습니다. 아나운서님께서는 지금부터 15년이 흐른 후에도 현역 아나운서로서 방송국 카메라 앞에 변함없이 앉아 계실 가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박 : 15년 후에는 제가 우리나라 나이로 쉰 살쯤이 됩니다. 당연히 그때도 지금처럼 손에 마이크를 쥐고 있고 싶습니다.

 

공 : 아나운서님께는 방송이 천직이네요.

 

박 : 예, 그렇습니다. 저는 들을 때는 당장은 후련하고 시원하긴 해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아무 울림과 메시지가 남지 않는 방송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와 반대로, 사람들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잔잔하게 남아 있을 여운과 감동을 주는 친근하고 편안한 방송인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하고픈 말들을 다 화끈하게 막 쏟아내는 방송인 노릇은 젊어서 잠깐이야 할 수 있겠죠. 제가 상상하는 나이든 저의 모습은 청산유수로 말 잘하는 방송인이 아닙니다. 시청자의 바람과 청취자의 사연에 귀를 열고 있는 방송인입니다. 힘들고 지치고 외롭고 소외된 분들께서 정신과 영혼의 휴식처로 의지할 수 있는 다정하고 믿음직한 방송인이 되겠습니다.

 

공 : 대중과 아나운서님의 관계를 소년과 아낌없는 나무의 관계로 상정하고 계시네요.

 

박 : 단 한 사람이라도 제 방송을 듣고서 마음의 위안과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게 방송인으로서의 저에게는 최고의 행복입니다.

 

공 : 방송활동 하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실 텐데 귀한 시간 내어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박 : 제 두서없는 얘기들 진지하게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박지희 아나운서는 198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다음 KBS 한국방송, MBC 문화방송, SBS 서울방송 공중파 방송 3사와 TBS 교통방송, 한국경제 TV, YTN 라디오 등에서 마이크를 잡았고, 작년부터는 유튜브 「채널지희」를 통해 많은 누리꾼들과 소소하고 따뜻한 일상의 사연들을 공유하고 있다. 올해 2023년 1월에는 사회비평서 「밟아도 되는 꽃은 없다(도서출판 왕의서재)」를 펴내 방송에서 육성으로는 말할 수 없는 첨예하고 미묘한 여러 가지 정치적 현안들에 관련된 소신을 글에 담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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