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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해전의 예고편 살라미스 해전 - 전략과 용단의 리더십 : 테미스토클레스 (6)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21-02-01 18: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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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아이스킬로스는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비극 작가이다. 그가 남긴 극작들 가운데 특히 유명한 창작물이 「페르시아 사람들」이다. 비유하자면, 「페르시아 사람들」은 1980년대 초중반에 우리나라에서 KBS 한국방송의 전파를 탔던 반공 드라마 「지금 평양에서」처럼 자국민의 시각을 통해 적국 수뇌부의 정세와 동태를 극화시켜 묘사한 작품이었다.</p><p><br></p><p>아이스킬로스는 기록과 상상력에만 의지해 글을 쓰는 평범하고 문약한 극작가가 아니었다. 그는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서 모두 싸워본 경험을 가진 역전의 참전용사이기도 했다. 플루타르코스가 「영웅전」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일반적 형태의 사료가 아닌 아이스킬로스의 희곡을 주요한 출처로 채택한 배경이었다.</p><p><br></p><p><span class="fr-img-caption fr-fic fr-dib" style="width: 650px;"><span class="fr-img-wrap"><img src="/data/cheditor4/2102/d27e1e7f6a74e36347d8ef1df4eafffa04803cfe.JPG"><span class="fr-inner">살라미스 해전 상상도. 독일의 화가 카울바흐가 1868년에 완성시킨 그림으로 낭만적 느낌마저도 준다.</span></span></span></p><p>플루타르코스, 아니 아이스킬로스에 의하면 살라미스 해전에 출전한 페르시아 제국의 군함들은 대형 전함만 해도 무려 1천 척에 달했다. 정찰선이나 연락선 등의 작고 빠른 207척의 군용선들을 빼놓은 숫자였다. 그리스 연합함대는 여기에 맞서서 180척의 삼단노선을 동원했다. 그리스군이 출동시킨 소형 함선의 숫자들도 꽤 되었을 테지만 승패의 관건은 양측 주력함들 사이의 대결이 결정할 터였다.</p><p><br></p><p>인화가 빛을 발하려면 천시와 지리가 이를 뒷받침해줘야만 한다. 이순신과 테미스토클레스는 싸울 시간과 장소를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선택했다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그리고 두 사람 전부 결전의 최선봉에 나섰다.</p><p><br></p><p>페르시아 전함들은 아테네의 함정들과 비교해 덩치가 우람했다. 위에서 아래쪽 적군을 내려다보며 전투를 벌일 수 있다는 장점을 확보하고 있었다. 단, 한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만 했다. 물살이 잠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파도가 거세지면 선박의 무게중심이 높은 페르시아 함대에게는 그야말로 쥐약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선박의 균형을 잡느라 적선과의 교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반면, 그리스 함대 입장에선 우수한 기동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조성되는 셈이었다.</p><p>&nbsp;</p><p>테미스토클레스는 물결의 흐름이 페르시아 함대의 선미를 앞으로 밀어내는 시간을 골라 전 함대에 돌격명령을 하달했다. 당시는 인간이 젓는 노가 전함을 기동시키는 핵심적 동력원인 시대였다. 엔진과 스크류의 조합으로 구동되는 근대적 배들과는 달리 물살을 역류할 수단이 없었다. 페르시아 함대는 전투를 회피하고 싶어도 회피할 수가 없었으므로 아테네 함대의 도전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응해야만 했다.</p><p>&nbsp;</p><p>페르시아 함대의 지휘체계는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붕괴됐다. 개별 전함들마다 선박이 전복되는 사태만은 어떻게는 막아보려고 낑낑대느라 아군 선박들과의 합동작전은 아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리스 함대는 각자도생에 급급한 페르시아 군선들을 테미스토클레스의 일사불란한 통솔 아래 하나씩 하나씩 바다 밑으로 가라앉혔다.</p><p>&nbsp;</p><p>전투가 종반전 무렵에 이르자 그리스 장병들의 시선은 적선들 가운데에서도 유난히 크고 화려한 선박으로 일제히 내리꽂혔다. 제국 해군의 총사령관인 아리아메네스가 승선하고 있는 페르시아 함대의 기함이었다. 아리아메네스가 탑승한 페르시아의 대장선은 점점 더 불리해지는 전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리스 배들을 상대로 분전하는 중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바다 위의 성에서는 육박해오는 그리스 군함들을 향해 쉬지 않고 활을 쏘고, 창을 던져댔다.</p><p>&nbsp;</p><p>아리아메네스는 크세르크세스 대왕의 형제들 중에서 단연 용맹하고 모험심이 강하기로 명성이 드높은 사내였다. 안전한 후방에서 입으로만 싸우기 일쑤인 대부분의 페르시아 왕족들과는 정반대로 그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전투현장으로 몸소 출진을 감행한 이유이기도 했다.</p><p><br></p><p>그리스 선박을 기준으로 삼자면 승조원의 대다수는 갑판 밑의 격군들이었다. 선상에서 싸움을 책임지고 담당하는 실제 전투원은 총 18명으로, 이들은 열네 명의 중무장 보병과 네 명의 사수로 이뤄져 있었다. 더욱이 해상에서의 싸움에서는 육지에서의 전투와는 다르게 마땅히 도망갈 데도 없었다. 아리아메네스의 범상치 않은 상남자 면모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정황적 증거들이다.</p><p>&nbsp;</p><p>아리아메네스의 전함은 사방을 옥죄어오는 그리스 배들에 상처 입은 야수가 더욱더 사납고 거칠게 울부짖듯이 난폭하게 달려들었다. 데켈레이아 출신의 아메이니아스와 파이아니아 태생인 소클레스는 이 살찌고 탐나는 먹잇감의 숨통을 자기들 손으로 직접 끊어놓는 영광을 차지하고 싶었다. 이들이 타고 있는 삼단노선과 아리아메네스의 페르시아 기함의 뱃머리가 뒤엉키면서 두 척의 배는 열차의 연결된 객차들만큼이나 서로 단단히 고정되었다.</p><p>&nbsp;</p><p>그러자 영화를 방불하게 하는 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아리아메네스가 한국영화 「명량」에 등장하는 왜군 장수 구루시마 미키시마라도 되는 양 그리스군 함선으로의 도선을 대담하게 시도한 것이다. 따라서 페르시아 해군 총사령관의 운명이 영화배우 류승용이 연기한 왜장의 최후와 판박이가 돼버린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소클레스와 아메이니아스 두 그리스 용사의 창에 동시에 꿰뚫린 아리아메네스의 몸통은 물 반, 시체 반인 바닷물 속으로 이내 처박히고 말았다.</p><p>&nbsp;</p><p>죽은 아리아메네스에게 그나마 다행이었던 사실은 그의 시신이 불타고 부서진 수많은 선박들로부터 떼어져 나온 무수한 잔해들과 어지럽게 뒤섞여 수면을 부유하다가 페르시아의 여성 장군인 아르테미시아에게 기적적으로 발견됨으로써 적군의 창끝에 머리통이 매달리는 치욕스러운 수모만은 가까스로 면했다는 점이었다.</p><p>&nbsp;</p><p>물속에서 건져진 동생의 주검은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참패로 말미암아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 놓여 있던 크세르크세스의 본진으로 지체 없이 옮겨졌다.</p><p><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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