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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과 우정의 리더십 : 펠로피다스와 에파미논다스 (8)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20-05-18 15: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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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class="fr-img-caption fr-fic fr-dii fr-fir" style="width: 271px;"><span class="fr-img-wrap"><img src="/data/cheditor4/2005/7a8cc23c1f541154ab71e2b767f5cb1526ade044.jpg"><span class="fr-inner">펠로피다스가 맹활약한 레욱트라 전투는 고대 그리스 세계의 국제정치 질서를 일변시켰다. 이미지는 레욱트라 전투 장면이 묘사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시리즈 5권</span></span></span>펠로피다스는 레욱트라에 부대의 진영을 설치한 다음 막사에서 잠이 들었다. 사람이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심란하면 꿈자리가 뒤숭숭해지기 쉽다. 펠로피다스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는 억울하게 죽은 처녀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꿈을 꾸었다. 현몽한 스케다소스와 그의 딸들은 펠로피다스에게 잔인무도한 스파르타를 응징해 자신들의 원통함을 풀어달라고 절규하면서 갈색머리의 처녀를 제물로 바쳐줄 것을 아울러 호소했다.</p><p>&nbsp;</p><p>잠에서 깨어난 펠로피다스는 간밤에 꾼 꿈의 내용을 참모들에게 이야기했고, 테베군의 수뇌부는 대장의 꿈에 대한 해몽으로 설왕설래를 거듭했다. 때마침 윤기 나는 갈색 갈기를 가진 암컷 망아지 한 마리가 진중을 어슬렁거리는 광경이 포착되었다. 예언자인 테오크리토스는 시간 맞춰 눈치 없이 등장한 운 없는 망아지를 희생물로 쓰자고 제안했고, 그의 의견에 동의한 좌중은 망아지를 스파르타인들 때문에 원한에 사무친 죽음을 맞이한 아가씨들의 무덤가로 데려가 고인들을 진혼하는 제물로 봉헌했다.</p><p>&nbsp;</p><p>펠로피다스가 진짜로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책사 역할도 겸했을 테오크리토스와 사전에 입을 맞추고 의도적으로 연극을 했는지 후세의 우리로서는 진상을 확인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사건이 긴장감과 공포심으로 몸과 마음이 크게 위축돼 있던 테베 병사들의 사기와 전의를 끌어올리는 데 적잖이 기여했다는 점이다. 호재는 수동적으로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사자 스스로 주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조국의 진운(進運)이 걸린 바로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펠로피다는 절대 기죽지 않는 진취적 기상을 유감없이 뽐냈다.</p><p>&nbsp;</p><p>싸움의 승패는 테베군이 스파르타군과 그 동맹국 군대들 사이에 신속하게 쐐기를 박아놓을 수 있느냐에 좌우되었다. 물건이든 대형이든 연결고리 부분이 취약한 지점인 이유에서였다. 본대를 지휘하고 있는 에파미논다스가 이러한 목적의 기동에 나서자 스파르타 군대는 노련한 기동술을 선보이며 테베 측의 노림수를 좌절시켰다. 서로가 상대의 급소를 노리며 대치와 이동을 지루하게 반복할 즈음 펠로피다스가 이끄는 300명의 신성대가 별안간 나타나 스파르타 진영의 옆구리를 찔렀다.</p><p>&nbsp;</p><p>에파미논다스는 집요하게 한 놈만 패는 전술을 구사하는 터였다. 이 한 놈만 패는 전술에 맞서서 스파르타의 클레옴브로토스는 한 놈만 막는 데만 전력하는 중이었다. 따라서 신성대의 기습적 출현은 역전의 용사들인 스파르타 군사들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한 신의 한 수였다. 스파르타군은 한동안 우왕좌왕하다가 자국의 역사에서 미증유로 기록될 수 있는 수치스러운 각자도생의 전면적 도주를 시작했고, 테베인들은 허겁지겁 정신없이 도망치는 라케다이몬 사람들을 대규모로 처치하거나 또는 무더기로 사로잡았다. 철옹성처럼 여겨진 스파르타의 패권체제를 일거에 무너뜨린 역사적인 레욱트라 전투의 공동 MVP 자리는 당연히 펠로피다스와 에파미논다스 두 죽마고우의 차지였다.</p><p>&nbsp;</p><p>레욱트라 전투의 결과는 테베와 스파르타의 처지를 단숨에 뒤바꿔놓았다. 지키던 자들이 이제는 빼앗는 입장이 되고, 침략하던 나라가 되레 침략을 당하는 놀라운 인생역전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졌다.</p><p>&nbsp;</p><p>전성기의 국가는 법률의 집행과 적용이 지극히 공정하기 마련이다. 잣대는 일관되며, 상벌에는 열외가 없다. 이때의 테베가 그랬다. 구국의 영웅인 펠로피다스와 에파미논다스의 관직 임기는 동짓날이 지남과 동시에 끝날 예정이었다. 임기가 만료됐는데도 벼슬을 내놓지 않는 자들은 모조리 사형에 처해졌다. 펠로피다스와 에파미논다스는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했다. 엘리스와 아르고스와 아르카디아 등의 스파르타의 주요 우방국들이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대오에서 이탈한 지금이야말로 전통의 강호 스파르타를 확실하게 무릎 꿇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p><p>&nbsp;</p><p>그리스의 동짓날은 현대의 역법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초봄 무렵에 해당했다. 즉 테베는 한겨울 동절기에 스파르타 정복작전을 수행했다는 의미다. 두 영웅은 추위가 고통스럽고 고향이 그리웠던 다른 동료 장수들을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윽박질러 에우로타스 강을 건넜다. 이 강은 스파르타로 진격하려면 반드시 넘어서야만 하는 자연적 장애물이었다.</p><p>&nbsp;</p><p>에우로타스 강을 도하한 테베 주도의 그리스 연합군은 스파르타의 오래된 세력권인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거침없이 유린했다. 적이 나타나면 무찔렀고, 도시가 나오면 점령했다. 당시 테베 연합의 병력은 무려 7만 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순수한 테베 출신 병사들의 비율은 6천명 남짓이었다. 거함 스파르타를 일격에 침몰시킨 테베의 위용과 상승세에 이웃나라들이 얼마나 벌벌 떨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p><p>&nbsp;</p><p>겨울이 물러가기 전에 테베군은 스파르타 시를 제외한 아르카디아 전역을 완벽하게 평정함으로써 그리스 세계의 세력판도와 역학관계를 완전히 재편시켰다. 동맹국의 성공에 시기심이 발동한 심술궂은 일부 아테네 병사들이 테베군이 본국으로 귀국하는 길목을 가로막고 잠시 시비를 걸었지만 신성대의 명성과 카리스마 앞에서 그들은 이내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p><p><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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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18 15: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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