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국민을 믿고 원형 그대로의 배심원단 제도로 가야
공희준(이하 공) : 검찰이 법무법인 태평양을 자신 있게 압수수색한 건 국민들이 대형 법무법인을 오래전부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 아닐까요? 국민들은 검사와 판사를 불신하는 것만큼이나 변호사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관기(이하 김) : 신뢰가 소멸했다고 봐야죠. 사법 시스템 전체가 불신의 대상이 된 판국인데 변호사라고 예외겠습니까? 국민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겠습니까? 검사가 원칙과 기준 없이 수사와 기소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사의 판결이 원칙 없고 기준 없는 수사와 기소에 휘둘린다고 생각합니다.
공 : 변호사는 그릇된 전관예우 관행의 수혜자로 민심의 거울에 비칩니다.
김 : 법조 3륜이 전부 지독한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한 토양을 바꾸려면 인적 청산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합니다. 사람만 몇 명 쫓아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더는 아닙니다.
공 : 서울법대만 사라지면 단숨에 문제가 풀릴 거라는 의견이 여론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던 시절이 한때 있었습니다.
김 : 여러 대학의 학부에서 법과대학을 없애고 법학전문(로스쿨) 제도를 밀어붙여서 상황이 좋아졌느냐면 그것도 아니에요. 검찰이 수사에서 손을 떼게 만들면 사법 시스템이 정상화될 거라는 생각으로 종내는 검수완박까지 강행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경찰이 말썽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저는 수사 과정과 재판 절차 모두에 배심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사를 시작해야 할지 말지를, 기소해서 재판에 넘겨야 할지 말지를 무작위로 선정된 국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결정하도록 해야만 합니다. 이 중요한 일을 현재처럼 검사와 판사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됩니다.
공 : “전쟁은 장군들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라는 명제와 일맥상통하는 말씀이네요. 사법 시스템은 검사와 판사들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는 취지로 저에게는 들립니다.
김 : ‘국민참여재판’이라고 들어보셨죠?
공 : 예, 들어봤습니다.
김 : 일부 사건에 제한적으로 실시되는 국민참여재판을 모든 피고인들이 받게끔 그 범위를 확장해야 합니다. 현재는 합의부 사건에 한정해 국민참여재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성범죄 사건의 경우에는 여전히 판사 마음대로 판결하고 있습니다.
공 : 그래서 몹쓸 죄를 지은 범죄자들에게 피해자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고 있었네요. 술김에 실수했으니 봐주지는 식으로 판사들 맘대로 재단하고 있거든요. 심신미약인지 뭔지 하면서요.
김 : 더 큰 문제는 배심원단이 제시한 의견에 판사가 구애되지를 않는다는 점입니다. 단지 참고사항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배심재판이 허점투성이인 이유입니다. 국민참여재판은 미국에서 들여온 제도입니다. 제도를 들여오면서 차 떼고 포 떼니 남은 게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를 수입하면서 레이다도 떼고, 제트엔진도 떼고, 미사일 발사장치도 떼고 들여온 격입니다.
공 : 전투기에서 엔진 제거하고, 레이더 제거하고, 무기체계 제거하면 싸구려 고철덩어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김 : 그 결과 배심원단의 본래 의도인 사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을 사실상 수행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전투기를 이왕 수입하려면 원상태로 들여와야죠. 사법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제품 그대로 가져다 써야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습니다.
공 : 한국적 민주주의의 사법부 버전인 한국적 배심재판을 운용하고 있네요. 그런데 저는 원제품 그대로 도입하는 게 다소 꺼림칙하게 느껴집니다. 왜냐면 한국인은 미국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정에 약하기도 하고요. 정에 약하고, 감정적인 사람들이 주축이 된 배심원단에서 과연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김 : 한국인들은 미국에 가도 잘 적응하고 생활합니다. 제도가 미국식이니 한국인들에게 맞지 않을 거라고 미리 예단하는 건 일종의 편견일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 감정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도 알고 보면 그 역시 ‘가스라이팅’입니다.
공 : 불순한 세뇌 공작?
김 : 한국인들이 감정적이라는 주장은 한국인은 열등하다고 말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한국인이 만약 실제로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어떻게 일류 기업들로 성장하고 발전해 해외 시장에서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발표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삼성이 머잖아 망하리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삼성을 보세요. 반도체 산업은 물론이고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삼성뿐만이 아닙니다. 현대자동차가 미국 시장으로 자동차를 수출하면서 ‘10년간 10만 마일 무상보증’을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현대자동차가 자기 손으로 제 무덤을 파고 있다는 야유와 조롱이 쏟아졌습니다. 실제 결과물은 어떤가요? 수많은 한국산 차량이 북미 대륙의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도 현대자동차도 국내 잣대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선진적 세계표준(Global Standard)을 두려움 없이 과감히 채택했습니다.
박정희 정부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하자 자동차도 얼마 없는 나라에서 웬 고속도로냐며 반대가 빗발쳤습니다. 포항제철을 짓겠다고 했을 때도 한국에 왜 대규모 제철소가 굳이 필요하냐며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저는 국민참여재판의 전면 도입을 반대하는 심리도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건설을 비토했던 정서와 같다고 봅니다.
공 : 자기 자신에 대한 과소평가네요. 이른바 자학사관이요.
김 : 왜 스스로를 믿지를 못합니까?
공 : 내가 나 자신을 믿어야 남들도 나를 믿어줍니다.
김 : 일제가 한국에 주입한 아주 사악한 고정관념이 “우리는 안 된다”는 엽전의식입니다.
공 : 그 엽전의식이 여전히 활개를 치는 곳이 우리나라 정치판입니다. 대선 때만 되면 자체적으로 후보를 내지 못하고 늘 당 바깥에서 유력 대선주자를 외부인사 영입을 핑계로 급하게 빌려오더라고요. 예전에는 더불어민주당이 그러더니, 요새는 국민의힘도 비굴하고 한심한 엽전의식의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김 : 판검사 본연의 의무는 뭐냐?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자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독단적으로 선고하는 게 아닙니다. 배심원단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길 안내를 하는 역할입니다.
공 : 히말라야 산맥 지역의 세르파 같은 구실이네요. 하지만 현실은 보조자 지위에 머물러야 할 판검사들이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보란 듯이 태극기를 꽂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법정을 배경으로 제작된 미국 영화나 드라마들에서는 변호사들이 마치 선거유세장의 연단에 선 정치인처럼 열변을 토하곤 합니다.
김 : 미국 변호사들은 판사가 아니라 배심원을 보고 말합니다. 우리는 변호사가 판사에게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판사가 기라고 말하면 기가 되고, 아니라고 얘기하면 아닌 게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잠시 숨을 골랐다가) 우리나라 판사들은 나라에서 챙겨주는 월급만 편안히 받아온 사람들입니다. 본인이 직접 장사이건, 사업이건 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비즈니스는커녕 변호사 개업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대한 경험치가 충분히 축적될 수 없습니다. 종이뭉치 안에 모든 진리와 진실이 담겨 있다는 착각과 환상에 빠지기 쉽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그 어떤 간접경험도 실제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책에서 읽었던 내용밖에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재판을 주도하고, 심리를 진행하니 국민들로서는 얼마다 답답한 노릇이겠습니까?
변호사의 ‘별의 순간’은 약자의 편에서 권력과 싸울 때
공 : 제가 아는 변호사님들이 몇 분 계신데, 가끔 전화로 연락해 지금 뭐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대개는 서면 작성하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서면 쓰는 작업과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일은 어떻게 차별화되나요?
김 : 통상적 부분이야 서면으로 갈음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결정적 사실 다툼에 관계된 사항은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꼭 있어야만 합니다. 누가 봐도 정답이 빤한 일은 문서로 처리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정답이 빤하지 않은 1프로의 사건들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구하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판결에 참여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99건의 사건들에 대해선 불만도, 분노도 없을지 모릅니다. 관건은 나머지 1건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다루는 재판에서 불법 청탁이 오간 흔적이 발견되고, 부당한 거래가 개입한 징후가 포착되면 정상적으로 진행된 99건의 무구한 사건들까지 오염됐다는 의심을 덩달아 삽니다. 대장동 사건 하나가 다른 무수한 사건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과 의구심을 증폭시킨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중요한 사건 판결을 말아먹은 처지에 법원과 검찰이 무슨 낯으로 국민들에게 판사와 검사를 믿어 달라고 호소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 : 변호사님께서도 김만배 전 기자로부터 연락을 받으신 적이 있나요?
김 : 청탁을 받기는 받은 적이 있습니다.
공 : 우와!
김 : 다른 청탁은 아니고 글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아봤습니다. 열심히 칼럼을 써서 보냈는데 정작 원고료를 지급해주지 않더라고요.
공 : 현직 변호사를 상대로 원고료를 떼먹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웃음)
김 : 그때는 제가 젊었을 때니 홍보용이라고 생각하고 악착같이 달라고 하지 않았죠. (웃음) 그런데 별로 유명하지 않은 변호사인 저에게까지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해올 정도였으면 그분이 얼마나 법조계 여기저기에 마당발로 발을 걸쳐놨을지 대충 짐작이 가기는 합니다.
공 : 그래도 서초동에서는 성골 아니신가요. 어쨌거나 연락을 받기는 받으셨으니까요.
김 : 성골은 무슨 성골. 원고료도 못 받았는데!
공 : 우하하하
김 : 중앙일간지 기자들도 로비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저는 신문사 중견 기자들이 돈 받은 일에도 놀랐지만, 계좌이체 방식으로 돈을 주고받았다는 점에 더 놀랐습니다. 기본적 긴장감과 경계심마저 희미해진 탓이었습니다. 감히 누가 언론인을 건드리겠냐는 오만한 특권의식의 발로였을 수도 있고요.
공 : 불륜 저지르는 남녀가 함께 모텔에 투숙하면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꼴이었습니다. (웃음)
김 : 불륜관계라면 현금으로 내고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럽게 들어가야지. (잠깐 웃은 다음) 우리나라 국민의 법원 판결에 대한 신뢰는 OECD 국가들 중 꼴찌 수준입니다. 이와 관련해 씁쓸한 후일담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부끄러운 뉴스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니까 법원 측에서 신문사들에 급하게 연락해 기사를 싹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는 후문이었습니다
공 : 법원이 하는 부탁은 받는 입장에선 부탁이 아닙니다. 명백한 압박이지.
김 : 그렇죠, 압박이지. 언제 어떤 소송에 휘말릴지 알 수 없는 게 언론매체들의 속성인데 무슨 배짱으로 법원의 부탁을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하겠습니까? 저처럼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면 몰라도 언론사를 비롯한 민간법인들은 법원의 눈치를 요리조리 살필 수밖에 없습니다.
공 : 변호사님께서 김박법률사무소에 계시니까 법원을 겨냥해 용기 있게 쓴소리를 발언하실 수 있지, 여기가 태평양이었으면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어야 했다는 뜻이네요.
김 : 제가 태평양에 몸담고 있었으면 당연히 입 닫고 있었겠죠. 김박에 있는 덕분에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고 있지. (웃음)
공 : ‘김박’이 엄청 박력 있게 들리는 어감의 브랜드입니다. (웃음)
김 : 변호사의 본원적 사명은 권력을 가진 자와 돈을 가진 자의 편에 서는 데 있지 않습니다.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사람들 곁에서 강대한 국가권력과 싸우는 일이야말로 변호사가 한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임무이고 역할입니다. 돈 많고 권력 센 계층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챙길 것 다 챙기고 있습니다. 보호받을 것 전부 보호받고 있습니다. 돈도, 힘도 없는 공동체의 구성원들 옆에서 국가와 맞서는 순간이 변호사에게는 바로 별의 순간이 됩니다.
공 : 저는 김만배 전 기자에 대해 일말의 연민이나 동정심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변호사의 직업윤리를 고려한다면 검찰이 태평양의 문을 따고 들어오려고 했을 때 해당 법무법인 변호사들이 사무실 출입구에 드러누웠어야 하는 게 이치에 맞았겠네요.
김 : 거대 로펌이 아닌 작은 법률사무소들이었다면 당연히 그렇게 대응했겠죠. 일본 닛산 자동차의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이 일본 검찰의 수사망을 피해 악기 상자에 몰래 몸을 숨기고서 자가용 비행기로 일본 열도를 탈출하는 희대의 엽기적 도주극이 2019년에 발생했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일본 검찰이 곤의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자 변호사가 몸으로 극렬하게 저항하다가 물리력으로 제압이 됐습니다. 변호사라면 그 정도 결기와 배포는 응당 지녀야 합니다. 공무집행방해죄로 들어가는 걸 각오할지언정 순순히 사무실 문을 열어줘서는 안 됩니다.
공 : 태평양이 돈을 받고 사건을 수임했으면 최선을 다해 의뢰인을 보호해줘야 하는데 이번 경우는 결과적으로 법무법인이 의뢰인은 남겨둔 채 저 혼자 살겠다며 먼저 내뺀 모양새가 돼버렸네요.
김 : 그게 대형 로펌들의 약점이고 한계입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조직이기 때문에 확고한 책임감과 주인의식에 입각해 검찰과의 정면대결을 불사하는 인물이 없습니다. 우리야 다르죠. 의뢰인과 일심동체입니다. 물론 결국에는 팔다리 잡혀 밖으로 끌러나갈 테지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결사항전을 흉내나마 낼 수가 있습니다.
공 : 앞으로 재판받을 일 생기면 변호사가 목숨 걸고 검찰과 맞짱을 뜨는 김박법률사무소로 직행해야겠네요.
김 : 변호사가 피고인을 변론하다가 법원을 모독했다는 사유로 구치소로 끌려간 일이 있었습니다. 유신시대에 인권변호사로 맹활약한 강신옥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민주화운동을 펼치다 구속된 학생들을 변호하다가 검찰의 엉터리 기소와 법원의 일방적 횡포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연히 들고 일어났었습니다. 후배 변호사들이 본받아야 할 명예로운 귀감입니다.
공 : 의뢰인을 위해 내 한 몸 언제든 불사를 수 있는 김관기의 우렁찬 사자후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김 : 제가 공 작가에게 감사드려야죠.
김관기 김박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20기로 수료한 다음 판사로 근무했다. 아주대학교 로스쿨과 서강대학교 로스쿨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사)도산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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