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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소환한 ‘합판의 추억’ - 윤석열 대통령은 왜 자꾸 꼰대가 되려 하나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2-11-21 19: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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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판소문을 아시나요


용산 대통령실에 출연한 ‘합판석열’의 원조는 화려했던 당나라 궁성을 합판으로 재연한 대하사극 「연개소문」의 합판소문이었다. (이미지출처 : SBS 드라마 연개소문)

「연개소문」은 SBS 서울방송이 참여정부 말기인 2006년부터 2007에 걸쳐 방송한 대하사극이다. 고구려 관련 사료의 절대적 부족과 수양제 역할을 연기한 배우 김갑수의 신들린 듯한 열연으로 말미암아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로부터 「양제소문」으로 불리기도 했다.

 

「연개소문」의 별칭은 하나 더 있었다. 「합판소문」이었다. 수나라 도성 낙양성을 재연해놓은 세트장이 합판으로 얼기설기 급조한 티가 너무나 역력했던 탓이었다.

 

사극의 명가로 불리는 KBS 한국방송이 방영한 「대조영」에 맞서서 SBS가 야심차게 출진시킨 「연개소문」은 왜 「합판소문」이라는 달갑지 않은 오명을 얻게 됐을까? 드라마 초입의 안시성 공방전에 제작비를 과도하게 쏟아 부은 바람에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실탄’이 빠듯해졌기 때문에 촬영장을 부득이하게 합판으로 대충 만들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게 상당수 시청자들이 내놓은 개연성 높은 분석이었다.

 

「연개소문」의 진짜 맹점은 부실한 세트장이 아니었다. 연개소문의 캐릭터 자체였다. 연개소문은 고당 전쟁의 주역이자 대고구려 제국의 최고 권력자였다. 냉철한 정치가 겸 합리적 전략가로 묘사돼야 마땅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그는 무슨 사이비 도사 비슷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연개소문이 출근길 기자회견을 전격 중단한 윤석열 대통령과, 이런저런 이유들로 세간의 구설수에 자꾸만 오르는 천공 법사(본명 이병철)를 합체시킨 인물처럼 그려진 셈이다.

 

필자의 뇌리에서 한동안 잊혔던 합판의 추억이 다시금 소환됐다. 용산 대통령실이 청사 1층 현관 입구에 합판으로 다급하게 가림막을 설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여러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이다.

 

나는 이 황당한 소식을 접하고 윤석열 대통령과 참모들이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윤 대통령 스스로를 위시한 용산 대통령실의 초조함과 불안감은 새 정부의 상징처럼 요란하게 시작된 이른바 도어 스테핑을 MBC 문화방송 기자와 어느 행정관 간에 펼쳐진 거칠고 지질한 설전을 핑계로 급작스럽게 중단한 데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필자는 MBC 문화방송이 이미 오래전에 공정하고 중립적인 언론 본연의 사명을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MBC는 정상적 공영방송이라기보다는, 정권획득을 목표로 노골적이고 정략적인 정치기동을 수시로 일삼는 일종의 유사 정당에 훨씬 더 가깝다. 꾸준히 추락을 거듭해온 MBC 뉴스의 처참한 시청률은 다수의 여론이 문재인 정권과 나란히 MBC 또한 단호히 심판했음을 뜻한다.

 

합판 다음은 철판인가

 

그럼에도 MBC의 편파성과 불공정성이 윤석열 정권의 옹졸함과 편협함을 정당화하는 구실은 결코 되지 못한다.

 

국민의힘 내 윤핵관들을 비롯한 윤석열 정권 사람들은 MBC 기자들을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지 못하게끔 배제한 용산 대통령실의 조치를 참여정부가 기자실에 대못질을 했던 행동과 동급으로 취급하며 열심히 옹호하고 있다.

 

허나 참여정부의 기자실 못질과 윤석열 정부의 문화방송 취재진 탑승 불허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단적으로, 참여정부는 당시의 집권세력과 앙숙관계에 있던 조선일보사 기자가 사용하는 책상과 의자에만 못질을 한 게 아니었다. 내 편, 네 편 가리지 않고 골고루 공평하게 못을 박았다. MBC 기자만 콕 집어 탑승을 거부한 윤석열 정부와 견주면 최소한 통이나마 컸다.

 

「연개소문」 연출팀은 수많은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려다가 드라마 제작 예산의 균형 잡힌 배분에 실패해 고육지책으로 합판을 동원해야만 했다. 반면, 지금의 용산 대통령실은 대통령 단 한 사람을 흐뭇하게 하려는 꼼수로 어디에서인가 합판떼기를 부랴부랴 구해왔다. 사익을 추구하는 민영방송은 공익기관처럼 움직이고, 국민에게 봉사해야만 할 행정당국은 일개 사조직 같이 운영되는 꼴이다. 그 덕분에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합판석열’이란 모멸스러운 야유와 조롱을 받을지 모르는 옹색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합판소문과 합판석열의 공통분모를 굳이 찾자면 합판을 자재로 사용했다는 점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긴 하다. 초장에 무리하게 에너지를 집중시켰다는 것이다. SBS 드라마는 나중에 써야 할 제작비까지 미리 당겨 쏟아 부었다. 윤 대통령은 일국의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으로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가리지 않고 취임 즉시 모조리 쏟아 부었다. 드라마가 더는 쓸 돈이 없어진 것처럼, 윤 대통령은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대통령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과제는 자기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아니다. 남의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경청하는 것이다. 자신이 더 이상은 하고 싶은 말이 없다고 등을 획 돌려 매몰차게 사라지는 윤 대통령의 부박하고 소인배적 태도는 겸손하고 진중한 위정자의 자세가 아니다. 기업을 포함한 각종 집단과 조직체들에서 흔히 목격되는 오만하고 권위주의적인 꼰대들의 태도다. 말할 입은 있어도, 들을 귀는 없는 거야말로 구제불능의 꼰대들의 전형적 특징이다. 윤석열은 1시간 가운데 혼자서 59분을 떠드는 인간이라는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주장이 근거 없는 험담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경제위기와 안보위기가 중첩된 미증유의 복합위기에 직면해 있다. 위기 극복의 성공적 출발점은 정확한 상황 파악에 있다. 자기 말은 할 줄 알아도, 남의 말을 들을 줄은 모르는 대통령이 정확한 상황 파악과 객관적 정세 분석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필자는 윤 대통령이 변화하리라는 희망과 기대를 진즉에 일찌감치 단념했다. 단지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들을 향해 쌓으려는 칙칙한 가림막의 재질이 합판에서 철판으로 바뀌지 않기만을 소박하게 바랄 뿐이다. ‘합판석열’은 대통령 본인 한 명의 개인적 망신으로 끝나지만, ‘철판석열’은 나라 전체의 창피함으로 확대될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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