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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어떻게 꼰대가 되는가 - 소심은 나의 힘 : 파비우스 (17)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20-03-11 13: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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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의 기수 스키피오에게 구세대의 전형 파비우스는 “라떼 이즈~”를 입에 달고 사는 고루하고 답답한 꼰대로 비칠 뿐이었다. 이미지는 인물과사상사에서 나온 「꼰대의 발견」 표지선공후사의 자세는 파비우스 집안이 자랑해온 뿌리 깊은 전통이었다. 이를테면 파비우스의 증조부는 집정관직에 다섯 번이나 취임한 내로라하는 고관대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집정관으로 선출되자 기꺼이 자식의 부관이 되어 전쟁터로 나갔다. 그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화려한 개선행진을 벌이는 아들의 뒤를 공손하게 따라왔다.


나중에 아들 파비우스는 아버지 파비우스보다도 먼저 세상을 뜨게 된다. 참척의 불행을 당한 파비우스는 포룸의 자기 자리로 나와서 로마의 장례식 관습대로 집안사람의 죽음에 하는 추모연설을 이를 악물고 담담히 해나갔다. 그에게는 나라가 있고서야 가족도 있었다.


경영전문가인 공병호 박사는 세계 최대의 자전거 제조업체의 사장 킹 리우 회장의 말을 빌려 새로운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은 머잖아 꼰대가 된다고 일갈하였다. 공 박사는 과거의 성공경험에만 집착하는 건 이미 죽어버린 바퀴벌레를 똑같은 방망이로 계속 때려잡는 데 불과하다고 일갈하였다.


로마가 자원과 인력에서 카르타고와 비교해 압도적 우위에 있는 점을 최대한 활용해 한니발의 진을 빼놓는 장기적 전략이 마침내 주효한 덕택으로 한니발의 로마 정복은 오래전에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는 로마에게 사자나 호랑이 같은 위협적 존재가 더는 되지 못했다. 단지 파리와 모기처럼 귀찮은 말썽꾼일 뿐이었다.


스키피오 코르넬리우스는 한니발이 자리를 비운 사이 빈 집과 다름없게 된 이베리아 반도의 카르타고 식민지를 신나게 유린하고서 로마로 금의환향한 젊고 야심만만한 집정관이었다.


그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정세를 간과할 리가 없었다. 스키피오는 한니발과 이탈리아 반도에서 드잡이를 지속하는 일은 쓸데없는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다며 오랜 전쟁을 치르면서 오히려 더욱더 막강해진 로마의 우세한 군사력으로 당장 아프리카로 쳐들어갈 것을 주장하였다. 로마를 지키려는 목적은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느니, 카르타고 정복이라는 새롭고 원대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스키피오에게 공세 중심의 전격전은 위험하다면서 종래의 방어적인 지구전 전략을 고집하는 늙은 파비우스는 죽은 바퀴벌레의 사체를 똑같은 몽둥이로 의미 없이 두들겨 패는 시대착오적 꼰대로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혁명적 격동기가 닥쳤음에도 기존의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점진적 개량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유럽 각국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해 블라디미르 레닌이 터뜨렸던 분노 역시 전통을 맹신하는 구세대와 변화된 기류에 발맞추려는 신세대 간의 세대갈등의 폭발이었을지도 모른다.


파비우스는 스키피오를 무책임한 대중선동을 일삼는 무모한 모험가로 간주했다. 그는 자기의 불안감과 위기의식을 시민들 사이에 확산시키려고 애썼다. 민중이 동의해주지 않으면 젊은 집정관의 야망에 찬 전쟁계획은 혼자만의 백일몽에 그칠 것이 명백한 까닭에서였다.


세대교체는 지도층에서만 단행되지 않았다. 민중의 세대교체도 이뤄졌다. 신세대는 파비우스가 개인적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스키피오의 카르타고 정벌 기획에 사사건건 딴죽을 건다고 믿었다. 만약 스키피오가 카르타고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한다면 파비우스의 소심함과 태만함 탓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전쟁을 질질 끓어왔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날 터이므로 이를 두려워한 음흉한 노인이 실술 궂은 몽니를 수시로 부리는 것이라고 청년들은 생각했다.


파비우스가 이제 믿을 건 공동 집정관인 크라수스밖에 없었다. 그는 크라수스를 찾아가 스키피오에게 군대의 지휘권을 일임하지 말고 아프리카로 같이 건너가 젊은 집정관의 성급한 도발과 망동을 견제할 것을 주문했다.


크라수스는 파비우스의 조언을 좇아 전쟁에 필요한 예산집행을 막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스키피오는 그의 지지자들이 많은 에트루리아 지방의 여러 도시들로부터 군자금을 마련해온 다음 지중해를 도해했고, 젊은 집정관과의 갈등을 내켜하지 않았던 크라수스는 더 이상의 만류를 단념한 채 수도인 이탈리아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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