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편집위원
공희준(이하 공) : 인공지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총아이자 견인차로 각광받는 첨단 신기술입니다. 그런데 조정흔 감정평가사님께서는 인공지능, 즉 AI를 감정평가 작업에 동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상당히 도발적인, 어쩌면 구태스러운 의견을 제기하셨습니다. 어떤 근거에서 그와 같은 견해를 용감하게 주저 없이 피력하셨는지요? 왜냐면 특정한 직역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집단 이기주의의 발로라고 여론의 돌팔매를 맞기 딱 좋은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을 만드는 사람 자신이 공정하지 않다면
조정흔(이하 조) :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었던 부분을 콕 집어 질문해주셨네요. 저희 감정평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들께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굉장히 쉽고 빠르게, 아주 편리하고 저렴하게 보유자산에 대한 감정평가액을 알아볼 수 있는데, 왜 감정평가사들이 AI 도입과 활용을 반대하느냐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 : AI를 사용하면 대단히 공정한 결과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요즘 프로야구를 필두로 다양한 운동 종목들에서 로봇 심판에게 판정을 책임지게 하려는 본질적 동기도 경기의 공정성에 대한 스포츠팬들의 뜨거운 여망을 수렴하려는 데 있습니다.
조 : 저는 인공지능을 감정평가 업무에 아예 들여놓지 말자는 건 아닙니다. 사실 한국감정원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감정평가 업무를 기계에 맡기려는 사업을 준비하고 추진해왔습니다. 한국평가원이 많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과 다수의 AI 전문가들을 고용한 연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동산 전산화 작업과 연동시키겠다는 목표도 있고요.
AI가 감정평가의 도구로 당연히 활용될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AI를 업무의 신속성과 정확도를 제고하는 이외의 의도와 목적으로 사용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입니다. AI를 내세운 장막 뒤쪽에서 어떠한 기준과 원칙에 입각해 감정평가 결과를 산출하고 있는지 그 과정과 내용과 계산방식을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전문가임을 자부해온 저희 감정평가들도 알 방법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공희준 작가님께서 가지고 계신 땅이 평당 100만 원에 평가됐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필자는 태어나서 단 하루도 내 명의의 부동산이라고는 파뿌리는커녕 압정 하나 꽂을 땅을 소유해본 적이 있다.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현직 감정평가사가 비록 상상 속에서나마 내가 가진 땅을 예로 드니 왠지 갑자기 엄청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이런 기분 처음이었다.
땅주인 입장에서는 왜 자기 땅의 땅값이 100만 원이 됐는지 몹시 궁금해 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행정기관에 물어봤더니 “AI에 넣고 돌렸더니 그렇게 됐다”는 차가운 기계적 답변만 돌아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어느 부동산 소유주가 “예, 알겠습니다”하며 순순히 고분고분 얌전하게 결과에 승복하겠습니까?
공 : 생명 없는 AI는 공정할 수 없어도, 그 AI의 개발을 담당했거나 개발을 의뢰한 인간은 공정할 수가 없다는 취지의 말씀이네요?
조 : (강한 긍정의 목소리로) 예, 그렇죠! 부동산 가격은 몹시 주관적입니다. 겉보기에는 아주 공정한 잣대와 대단히 객관적 시선에 밑바탕을 두고서 땅값이 결정되는 듯싶지만, 실상은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가 서울 노원구에 지어진 총 5천 세대 규모의 대단위 아파트의 지난 10년간의 시가와 임대료를 예전에 평가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부동산 때문에 개인 간에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임대료에 준거해 평가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5천 가구가 거주하는 대단지 아파트는 보통은 다양한 평수의 주택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단지 전체로 평균을 도출하는지, 혹은 특정한 평수대의 집들에 국한해 평균치를 계산하는지, 아니면 평수 위주가 아니라 거래기간을 중심으로 계산에 들어가는지에 따라서 금액이 천차만별이 됩니다. 가격의 최고치와 최저치를 어디로 설정하고서 모형을 만들어내는지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합니다. 땅값과 임대료를 불문하고 자료를 선택하고 분류하고 정리하는 모든 단계들마다 인간의 판단이 자연스럽게 개재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부동산 가격에는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고 다양한 요소들이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AI가 도입되면 인간의 자의적 판단과 변덕스러운 선택이 수시로 개입하는 이 모든 작업 과정을 그냥 기계가 전부 다 처리했다고 둘러대며 교묘히 가리고 숨길 수가 있습니다.
공 : AI가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신기술의 미명 아래 은폐를 주도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조 : 예, 그렇습니다.
조정흔 감정평가사의 날카롭고 통찰력 넘치는 지적처럼 인공지능은 거짓말을 못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움직이는 ‘자연지능’ 또는 ‘천연지능’인 인간은 자신의 이익과 바람이 요구하는 일이라면 언제 어느 때나 천연덕스럽게 거짓을 얘기할 수가 있다. 인간과 기계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은 인류가 돌도끼로 들짐승의 정수리를 내리치던 선사시대로부터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을 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르기까지 명쾌하게 풀리지 않아온 화두이자 수수께끼이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인공지능을 제어하고 조종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만들어내길 바라는 가격을 변수 하나를 임의로 은밀하게 조작해 얻어낼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국민들은 인공지능의 결과물로 관료들이나 기술자들이 들이대는 감정평가 가격을 웬만해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해하기 힘들면 반대와 반박과 저항도 힘든 법이다. 조지 오웰이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묘사해놓은 걸작 정치소설인 「1984년」을 보면 대중의 눈에 잘 띄지 형태로 군림하는 무시무시한 독재자가 과학적 신어(New Speak)를 권장한다는 구실로 사람들이 이제껏 알고 있는 상식적인 단어의 의미와 용어의 개념을 뒤죽박죽으로 뒤섞어버린다. 그 후과로 전쟁(War)은 평화(Peace)가 되고, 평화는 전쟁이 된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증거인멸 시도를 증거보존 행위라고 강변한 사건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정권의 검찰장악 기도를 검찰개혁 추진으로 정당화하는 사태도 조지 오웰이 그의 소설에서 신랄하게 풍자한 대중세뇌용 신어창조 음모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하겠다.
땅값은 사회적 관계의 산물
공 : 나중에 민원인들이 세무서나 등기소로 찾아와 감정평가가 이상하다고 항의하면 담당 공무원들이 “AI가 한 거니 입 닥치세요!”라는 식으로 국민들을 향해 되레 호통을 칠 수도 있겠네요. AI가 착오 없이 계산했다는데 권력 없는 국민들이 꼼짝할 수가 없지요.
조 : 인공지능을 구동시키는 복잡하고 미묘한 모형과 산식을 일반 국민들이 무슨 수로 투명하게 알아내겠어요.
공 : 투명하고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려면 돈과 시간이 듭니다. 결국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은 AI로 중무장한 공무원들과 재벌들 발아래 전부 무릎을 꿇어야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왠지 우울하네요.
조 : 현재의 공시지가조차 감정평가사들이나 한국감정원에서 제대로 설명을 해주는 경우가 드뭅니다. 땅값은 인간이 구축한 사회적 관계망 위에서 정해져왔습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나오고, 사람과 부동산과의 관계에서도 나오고, 부동산과 부동산의 관계에서도 나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마주하는 지금도 그 가격을 자세히 설명해주지를 않는데, 기계가 사람을 상대하는 시스템으로 패러다임이 전면적으로 변화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지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AI를 개발한 엔지니어와, AI에 투입될 변수들을 골라낸 공무원들이 국민들에게 직접 친절하게 알려줄 리도 없고요.
공 : 평가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제가 갑작스럽게 궁금해진 부분이 한 가지 있습니다. 개별적인 감정평가사들과 한국감정원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나요?
조 : 한국감정원과 한국감정평가사협회는 별개의 조직입니다. 예전에는 이 두 단체가 비슷한 업무를 취급했었습니다.
공 : 감정평가사 시험은 그러면 한국감정원에서 주관하나요?
조 : 감정평가사 자격증은 중앙정부부처인 국토교통부에서 발급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대한변호사협회의 회원으로 가입해 변호사 업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필요하면 법무법인도 설립할 수가 있습니다. 변호사업계에 비유한다면 한국감정원은 정부가 주도해 창업한 법무법인의 성격에 가깝습니다. 한국감정원에 소속된 사람들이 일반 감정평가사들이 하는 일과 비슷한 업무를 수행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일반 감정평가사들과 한국감정평가원의 업무가 분장이 됐습니다. (⑥편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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