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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은 나의 힘 : 파비우스 (4) - 파비우스, 한니발을 드디어 독 안에 가두다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20-01-06 12: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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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우스는 강력한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멍청한 아군과의 싸움에서 먼저 이겨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지는 파비우스의 얼굴이 새겨진 로마의 동전한니발은 파비우스를 싸움터로 끌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때로는 꾀로 유인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힘으로 거칠게 밀어붙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파비우스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어떤 술책과 속임수도 파비우스를 전장으로 불러내지 못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불리한 쪽은 보충되지 않을 병력과 식량과 자금을 하염없이 축내기만 하고 있는 카르타고군 측이었다.


한니발에게도 친구는 있었다. 로마의 기병대장 미누키우스였다. 그는 한니발과 빨리 싸워 공을 세우기 바랐고,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친구와 애인을 만나고 싶어 안달이 난 젊은 병사들 또한 파비우스를 한니발의 가정교사라고 조롱하며 지체 없이 적군과 결판을 내자고 성화를 부렸다.


고대 로마사회에서 가정교사 역할은 노예가 담당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군심을 등에 업은 이 조급한 성격의 기병대장은 파비우스가 기습에 나선 적 기병대의 칼끝으로부터 안전한 고지대에 진영을 설치한 일을 수시로 거론하곤 하면서 “대장께서는 병사들과 함께 하늘 위로 도망가실 모양입니다”라고 비꼬기 일쑤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독재관의 친구들은 파비우스에게 더 이상의 수모와 망신을 당하기 싫으면 어서 적군과 전투를 벌이라고 채근했다. 그러자 파비우스는 이렇게 대꾸했다.


“나라를 위해 보이는 부끄러움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네. 진짜로 부끄러워야만 할 것은 어리석의 자들의 악의 가득한 두려움에 겁먹는 짓이라네.”


피로는 뜻밖의 실수를 불러오는 법이다. 한니발은 카시눔 지방으로 향했다. 그곳은 군마들을 먹일 넓은 목초지가 있을뿐더러 로마군의 습격으로부터도 안전한 장소였다. 그런데 외국인인 한니발의 발음을 부정확하게 알아들은 현지 주민들이 그를 비슷한 지명인 카실리눔으로 인도하고 말았다.


카실리눔은 캄파니아 지방 가장자리에 위치한 도시로서 주변이 높은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지형에 밝은 파비우스는 4천 명의 중장보병들로 하여금 한니발을 우회해 협곡의 출구를 봉쇄하도록 한 다음, 스스로는 발 빠른 경무장 보병들로 적의 후방을 기습해 800명가량의 적병들을 참살시켰다.


한니발은 길안내를 잘못한 토박이들을 교수형에 처하는 것 외에는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었다. 협곡의 출구가 적의 손에 넘어간 탓에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전 병력이 우왕좌왕하다가 몰살당할 위험성이 컸기 때문이다. 불패의 신화가 꺾인 데다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졌음을 깨달은 카르타고 병사들의 사기는 이미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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