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로마,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다 - 소심은 나의 힘 : 파비우스 (2)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19-12-24 15:56:23
기사수정

한니발 때문에 궁지에 몰린 로마는 로마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는 수장에 해당할 독재관에 파비우스를 앉혔다. 사진은 2016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사실상의 독재관으로 군림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출처 : 김종인 페이스북)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불같은 성미의 야심가인 또 다른 공동집정관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역시 한니발을 대단찮게 여겼던 것이다. 사단은 파비우스는 카르타고군의 구조적 한계와 전략적 취약성을 간파하고서 궁극적 승리를 확신한 데 비해, 플라미니우스는 이전에 갈리아인들을 상대로 거둔 승전에 도취해 한니발쯤이야 별것 아니라고 경솔하게 속단했다는 점이었다.


플라미니우스는 적과의 전투를 서두르는 동기로 카밀루스의 사례를 꺼내들었다. 과거 이 전설적인 로마의 구세주는 수도와 가급적 먼 곳에서 싸움을 벌이려 시도했었다. 에트루리아를 지나 북상한 플라미니우스의 로마군은 트라쉬메네 호반에서 한니발의 군사들과 맞붙었다. 한창 교전 중에 커다란 지진이 일어났음에도 어느 쪽 장병들도 이를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그는 한니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1만 5천 명의 로마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전사자들보다 더 많은 숫자의 병사들이 포로로 잡혔다. 한니발은 죽은 로마 집정관의 용맹함을 기리며 그를 정중하게 묻어주려고 했으나 시신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켜켜이 쌓인 수많은 이름 없는 시체더미 속에 이미 깊숙이 묻혔던 탓이리라.


트레비아에서의 패배는 잠깐의 실수일 수 있었다. 트라쉬메네에서의 패전은 명백한 실력이었다. 민회가 소집되었고 행정관 포비우스는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할 것을 시민들에게 호소하였다. 곧이어 이심전심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조치가 필요하고, 그 비상한 조치란 당연히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독재관을 임명하는 일이었다.


누가 독재관에 선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길고 복잡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능가할 적임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과단성이 있되 품격 또한 있으며, 용기와 분별력이 조화를 이루고, 신중한 판단력과 신속한 행동력을 아울러 갖춘 인물이었다. 더욱이 파비우스는 전쟁이 지우는 육체적 피로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젊었으면서도 헛된 공명심에 휘둘리지 않을 연령대에 도달한 터였다.


독재관에 선출된 파비우스는 마르쿠스 미누키우스를 기병대장 자리에 앉혔다. 전례 없이 상궤를 벗어난 파격적 행동은 따로 있었다. 그가 말을 타고서 부대를 통솔하겠다고 원로원에 통보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독재관은 보병의 일원으로 참전해왔다. 로마의 주력은 보병이고, 아무리 독재관이라도 말까지 타게 되면 폭군처럼 보인다는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파비우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독재관은 명실상부한 독재자처럼 보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말은 물론이고 파스케스도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가 거리에 나설 때마다 24명의 수행원들에게 고위 관리의 행차를 알리는 이 표식을 들고 따라오도록 지시한 까닭이다. 파비우스는 독재권의 권위를 한층 더 돋보이게끔 하려는 목적에서 다른 집정관이 그를 찾아올 경우 부관 없이 혼자 개인 자격으로 방문하도록 명령했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axnews.co.kr/news/view.php?idx=28284
  • 기사등록 2019-12-24 15:56:23
많이 본 기사더보기
  1. 윤석열의 72시간 침묵에 담긴 의미는 윤석열 각본, 윤석열 연출, 윤석열 주연의 엽기적인 부조리극의 발단과 결말 사이에 굴곡과 요동이 있었다면 도입부에서 텔리그램 메신저 프로그램의 앙증맞은 체리따봉 이미지로 등장했던 주인공이 마지막 대단원 부분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우울한 표정과 무뚝뚝한 육성을 관객들을 향해 생생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2. 홍준표의 실패는 현재진행형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윤석열은 홍준표를 후계자로 낙점할까? 홍준표는 윤석열의 신임을 받아낼 수완은 차고도 넘친다. 그러나 폭넓은 국민의 지지를 확보할 역량은 빈곤하고 부실하다. 선수로서는 특급이되 지도자로선 이른바 폐급인 모순되고 역설적인 모습은 생계형 정치인의 최종 진화형인 생존형 정치인의 치명적 한계로 평가될 수...
  3. 윤석열, 이제야 정치인이 되려는가 전쟁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상대방과 총탄과 포화를 주고받는 일이다. 정치는 직접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는 일이다. 윤석열은 야권이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을 노려볼 만한 원내 의석을 확보한 연후에야 정상적 의미의 정치를 비로소 하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의 검사에서 정치인으로의 때늦고 마지못한 변신이 그 ...
  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개막 앞두고 ‘자치구 정원 페스티벌` 열려 5월에는 서울 곳곳이 매력적인 정원으로 가득해질 전망이다. 오는 16일(목) 개막을 앞둔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이하 ‘정원박람회’)’와 연계해 자치구가 각 지역에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 경쟁을 벌인다.서울시는 25개 자치구와 협업하여 ‘자치구 정원 페스티벌’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구별로 정원을 조성하고 행...
  5. 위험천만한 배달은 `이제 그만`...안전한 배달 위해 민·관이 손 잡았다 배달종사자의 교통법규 준수를 유도하여 사고를 감축하고, 안전한 배달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자 민·관이 협력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30일(화) 오후 2시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8개 배달플랫폼, 배달서비스공제조합, 손해보험협회와 함께 배달종사자 교통안전 문화 조성을 위한 협약(이하 협약)을 체결하였다.협약에 참가한 8개 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