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고계현④ “시민단체는 정치인 양성소가 아니다” - 시민운동은 정치권과의 선긋기로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아야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19-12-15 17:14:21
기사수정
박수칠 때 떠나라고 했다. 그러나 박수소리와 상관없이 떠날 경우가 있다. 첫째는 연인과 헤어질 때이다. 둘째는 시민운동가들이 정치인으로 변신할 때이다.

시민운동 출신 정치인들은 자신이 먹던 우물에 침을 뱉는 몰염치한 짓은 웬만해서는 저지르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자신이 먹던 우물에 양수기를 대고는 우물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신나게 물을 펑펑 빼간다. 그로 인해 시민운동이라는, 한때 풍부한 수량을 자랑했던 맑은 우물은 이제는 자욱한 먼지만 풀풀 풍기는 마른 우물이 되다시피 했을 지경이다.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정치인 양성소처럼 자리매김한 작금의 현실에 단호히 문제를 제기하며, 시민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고갈된 신뢰를 회복시키는 방안으로 시민운동이 기성 정치권과의 명확한 선긋기에 과감하게 나설 것을 제언했다.

시민단체 출신 정치인들, 대화와 소통에 서툴러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은 정치인은 시민운동가와는 다른 존재임을 강조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고계현(이하 고) : 대한민국의 최종적 의사결정권은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결정자들이 쥐고 있습니다. 시민운동의 근본적 역할과 목적은 관료와 정치인들에게 바람직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이들이 올바른 정책을 만들도록 추동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민사회단체에 계신 분들이 책임성의 측면에서 조금은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희준(이하 공) : 시민단체가 국가를 향해 뭔가를 촉구하거나 혹은 대안을 제시하기는 해도 나라를 직접 다스리지는 않으니까요.


고 : 촉구에 화답할 것인지, 대안을 수용할 것인지는 궁극적으로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와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특정한 국가정책의 실패와 관련해 시민단체에 그 책임을 지우기는 어려운 까닭입니다. 그러나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해온 인사가 국회에 진출하거나 정부에 참여하게 되면 얘기가 전연 달라집니다. 그때부터는 국가 전반을 시야에 넣고서 생각하고 일해야만 합니다. 자신과 이념이 일치하는 계층만을 염두에 두지 말고, 어떤 선택이 진정으로 국민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며 나라 전체에 도움이 되는지를 종합적이고 총체적 관점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 : 문재인 정부에 등용된 시민운동 출신 인사들 가운데 그러한 균형감과 책임감을 보여준 사람은 아직껏 별로 없었습니다.


고 : 저는 그분들이 시민운동을 벌이면서 몸에 배인 선입관과 고정관념으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시민운동은 경우에 따라서 국민들보다 몇 발자국 더 앞서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반면에 정치는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일입니다. 몸은 정치로 갔으면서도 마음은 시민운동의 틀에 머물러 있으면 과도한 정파성에 금세 함몰되고 맙니다. 국민들의 엇갈리는 이해와 요구를 수용하는 통합‧조정하는 데에서 미숙함을 드러내기가 쉽습니다. 그런 분들은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 자세가 덜 갖춰줬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본인이 진보 성향의 시민운동에 장기간 투신해왔다면 철학과 소신에서 진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에 참여했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관을 포기하자는 건 아닙니다. 관건은 공직자는 최종적 의사결정을 하는 책임자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진보진영의 의견은 물론 보수세력의 입장도 들어봐야 합니다. 국정은 방향과 동시에 속도도 살피는 일입니다. 현재의 조건과 상황에서 50km로 달려야 할지, 100km로 주행해야 할지를 신중하고 면밀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노선과 가치를 달리하는 계층과 집단의 목소리를 꼼꼼하게 경청하며 그들과 진정성 있는 토론을 이어나가야 합니다.


시민단체에 계셨던 분들이 이와 같은 방면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태가 빚어지겠습니까? 자기가 시민운동을 하면서 품어온 견해와 신념을 각계각층 국민들과의 충분한 대화와 소통 없이 마구 밀어붙이다가 정책의 본래 긍정적 의도마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 결과 시민운동 출신들은 무능하다는 국민들의 인식만 도리어 강화시키곤 합니다.


위기에 빠진 시민운동을 구하려면


고계현 총장은 시민단체 활동가로 경력을 시작해 경력을 마감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사진 김한주)

인터뷰가 결론 단계에 들어서면서 대화는 시민운동의 향후 진로와 과제에 관한 내용으로 그 중심이 옮겨갔다.


고 :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심각한 위기국면에 봉착해 있습니다.


공 : 시민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최근에는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믿음과 비교해 크게 낫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총장님께서 말씀하신 시민운동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요? 이를테면 참여연대가 자유총연맹 같은 관변단체와 아무 차이가 없다는 생각은, 민주노총은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만을 대변하는 속물적인 이익단체에 불과하다는 느낌은 저 혼자만의 생각과 느낌은 분명 아닐 테니까요.


고 : 현재의 시민운동은 마치 정치권에 진출하려는 예비 출마자들의 모임처럼 국민들에게 비쳐지고 있습니다. 이런 지나친 정치 지향성 하나만이 시민운동의 신뢰도를 훼손해온 건 아닙니다. 더욱 본질적인 위기의 원인은 시민운동의 지속가능성에 커다란 의문부호가 찍히고 있는 사실에 있습니다.


공 : 시민운동도 막내가 40살인가요?


고 : 예. 후세대 양성 작업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조직의 유지와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차세대 활동가와 전문가를 찾는 데 적잖은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남한 청년들의 로망이 교사와 공무원이 된 지는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는 단지 안정된 수입과 정년이 보장된다는 이유만으로 노량진의 공무원시험 학원들로 몰려들었던 1세대 청년들의 나이가 지금 벌써 4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미래지향적 부가가치를 전혀 창출하지 못하는 대표적 기생직종인 교직과 공직에 20년 넘게 청년들이 달려든 후과로 한국사회의 수많은 분야와 영역들에서 대가 끊기는 세대단절 현상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단종(斷種)의 비운을 맞이하기는 시민운동 부문 또한 예외가 아닌 듯싶었다.


고 : 한국도 이제는 정부와 비정부기구(NGO)가 확실하게 구분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평생 시민운동에만 매진하며 자기의 존엄성을 확보하고, 자신만의 일가를 이룬 인물이 출현해야 합니다. 그렇게 귀감(Role Model)이 될 만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해야 젊은 세대들이 시민운동을 일생을 바쳐 해나갈 가치가 있는 천직으로 여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표정으로)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현대적 유형의 시민운동이 본격화된 이래로 초기의 선도적 활동가들이든, 이후 참여한 중진급 활동가이든 그처럼 일가를 이루고 귀감이 된 사람들이 매우 드뭅니다. 전부들 정치권으로 가버렸습니다. 국민들이 시민운동을 예비 정치인들의 집합소 내지 국회의원 양성소로 여기니 시민단체의 신뢰도가 높게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독립성과 자발성이 견지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은 더 늦게 전에 새로운 출발을 선언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 일차적 전제조건은 시민운동과 정치권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재설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재정립 과정의 대상과 주체에서는 시민운동에서 쌓은 인지도에 힘입어 제도권 정치인으로 변신한 인물들 역시 당연히 포함됩니다. 지금은 모두가 초심으로 돌아가야만 할 때입니다. 엄정한 비판과 합리적 대안 제시라는 시민운동 본연의 사명에 충실해야만 할 시점입니다. 따라서 시민운동 출신 인사들의 무분별한 정치 참여에도 강력한 제동이 걸려야 합니다.


시민운동은 국민들의 신뢰 위에서만 지속가능한 활동입니다. 현재 시민운동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습니다. (단호한 어조로) 시민운동 경력과 간판을 앞세워 정치판을 기웃거릴 때가 아닙니다. 시민운동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편안한 정치 참여의 길을 모색하지 말고, 시민운동 자체의 역량을 어떻게 높일지를 치열하고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할 것입니다.


공 : 죽비소리 같은 시원한 말씀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 : 진지하게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은 1965년에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나 대학과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상근자로 들어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는 정책실장과 사무처장을 거쳐 만으로 6년을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axnews.co.kr/news/view.php?idx=28277
  • 기사등록 2019-12-15 17:14:21
많이 본 기사더보기
  1. 윤석열, 유승민과 조국을 들었다 놨다 하다 여당에게 4월 10일에 닥칠 것이 유력시되는 패배의 강도와 범위는 통상적인 위기관리 매뉴얼을 가동해선 대처와 극복이 불가능하다. 세간에서 예상하는 바대로 야권이 200석 안팎의 원내 절대 다수 의석을 석권하면 윤 대통령이 임기를 과연 제대로 채울지 수 있을지 불투명해지는 탓이다
  2. 윤석열과 조국의 복수혈전 윤석열은 야당을 상대로는 시행령 통치를 선보이고, 여권 내부와 관련해서는 이준석이 최재형 혁신위로 막 시작에 나서려던 공천개혁 작업을 무산시킨 게 전부였다. 그는 선거법 개정에도 관심이 없었고, 현행 헌법의 개헌에도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3. 윤석열의 72시간 침묵에 담긴 의미는 윤석열 각본, 윤석열 연출, 윤석열 주연의 엽기적인 부조리극의 발단과 결말 사이에 굴곡과 요동이 있었다면 도입부에서 텔리그램 메신저 프로그램의 앙증맞은 체리따봉 이미지로 등장했던 주인공이 마지막 대단원 부분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우울한 표정과 무뚝뚝한 육성을 관객들을 향해 생생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4. 홍준표의 실패는 현재진행형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윤석열은 홍준표를 후계자로 낙점할까? 홍준표는 윤석열의 신임을 받아낼 수완은 차고도 넘친다. 그러나 폭넓은 국민의 지지를 확보할 역량은 빈곤하고 부실하다. 선수로서는 특급이되 지도자로선 이른바 폐급인 모순되고 역설적인 모습은 생계형 정치인의 최종 진화형인 생존형 정치인의 치명적 한계로 평가될 수...
  5. 윤석열, 이제야 정치인이 되려는가 전쟁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상대방과 총탄과 포화를 주고받는 일이다. 정치는 직접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는 일이다. 윤석열은 야권이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을 노려볼 만한 원내 의석을 확보한 연후에야 정상적 의미의 정치를 비로소 하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의 검사에서 정치인으로의 때늦고 마지못한 변신이 그 ...
  6. 국민의힘, 이제는 분당할 때다 정진석의 가히 기행에 가까운 윤 대통령을 향한 과잉충성 행각은 이쯤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며칠 전 지적한 바대로 당심 100퍼센트의 전당대회 경선 규칙을 급조해 공당인 국민의힘을 윤석열 대통령의 사당으로 완전히 전락시켰다. 정진석은 국민의힘을 3연패의 나락으로 빠뜨린 비민주적인 수직적 당정관계를 설...
  7. 영수회담 당일, 지금 국민의힘에서는 여야가 영수회담을 내부 결속용 용도로 똑같이 활용하고 있다면 민심의 시선에 더 한가하고 하릴없는 인물로 비칠 사람은 윤석열과 이재명 가운데 누구일까? 당연히 전자, 곧 윤 대통령일 터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붕에서 비가 한두 방울 똑똑 세는 정도의 처지라면, 국민의힘은 당장 건물 전체가 통째로 폭삭 무너져 내려도 전연 이상하지...
  8. 3월 주택 매매거래량 작년 12월부터 증가세...악성 미분양 8개월 연속 증가 국토교통부는 30일 ’24년 3월 기준 주택 통계를 발표했다.이날 발표에 따르면, 3월 기준 전국의 주택 인허가, 착공, 준공은 전월 대비 증가했고, 분양은 청약홈 시스템 개편으로 전월 대비 감소했다.3월 기준 주택 매매거래량(신고일 기준)은 총 52,816건으로 전월 대비 21.4% 증가해 작년 12월부터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24.3월 기준 ...
  9.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개막 앞두고 ‘자치구 정원 페스티벌` 열려 5월에는 서울 곳곳이 매력적인 정원으로 가득해질 전망이다. 오는 16일(목) 개막을 앞둔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이하 ‘정원박람회’)’와 연계해 자치구가 각 지역에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 경쟁을 벌인다.서울시는 25개 자치구와 협업하여 ‘자치구 정원 페스티벌’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구별로 정원을 조성하고 행...
  10. 위험천만한 배달은 `이제 그만`...안전한 배달 위해 민·관이 손 잡았다 배달종사자의 교통법규 준수를 유도하여 사고를 감축하고, 안전한 배달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자 민·관이 협력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30일(화) 오후 2시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8개 배달플랫폼, 배달서비스공제조합, 손해보험협회와 함께 배달종사자 교통안전 문화 조성을 위한 협약(이하 협약)을 체결하였다.협약에 참가한 8개 배...
최신기사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