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편집위원
공희준(이하 공) : 먼저 「김대중 전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김대중 전집」은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몇 되지 않는 한 정치인의 체계적 선집입니다. 「김대중 전집」은 학문적으로, 그리고 정치사적으로 어떠한 의의와 위상을 갖고 있나요?
「김대중 전집」은 ‘DJ 시대’를 읽는 기본 텍스트
장신기(이하 장) : 한국 현대사에 대한 연구 작업은 아직까지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솔직한 현실입니다. 그 근본적 원인은 자료의 불충분함에 있습니다. 저는 역사 연구의 백미는 인물 연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인물 연구 역시 다른 유형의 한국 현대사 연구와 마찬가지로 자료가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기존 자료들도 왜곡과 편향이 잦기 일쑤입니다.
이러한 바람직하지 않은 경향은 회고록과 자서전에서 특히 심합니다. 그래서 자서전과 회고록을 살펴보면 사료적 가치로서는 기준에 미흡한 책들이 꽤 많습니다. 이러한 책들은 다른 자료들과의 교차확인이 전제되지 않으면 사실검증이 매우 어렵습니다. 내용의 진위를 판단하기가 힘든 탓입니다. 이런 요인들이 지금까지의 인물 연구에서 적잖은 한계로 작용해왔습니다.
저는 「김대중 전집」이 이와 같은 종래의 고질적 한계점과 부족함을 극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김대중 전집」은 김대중 대통령 개인에 관한 연구는 물론이고 그분이 생존하고 활동했던 시대의 모습과 구조를 연구하는 데 아주 귀중하고 유용한 텍스트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대중 전집」의 완성은 하나의 기적
「김대중 전집」은 두 가지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매우 방대한 분량이라는 점입니다. 「김대중 전집」이 완성된 건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일지 모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험난한 정치여정을 헤쳐 나와야 했던 인물입니다. 그가 문서로 된 자료를 남기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선택이었습니다. 김 대통령의 주변 인사들, 특히 상대적으로 신변이 안전한 해외에 머물고 있는 지인들이 다행히 많은 귀중한 자료들을 오랫동안 잘 보관해왔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와 전두환 정권의 국가안전기획부 입장에서 야당 정치인들이 작성한 각종 문서와 문건은 가장 탐스런 먹잇감이었다. 그러므로 DJ는 탄압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공안기관에 압수당해도 되는 수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저울질하며 문서화된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풍부한 자료의 원천이자 보고는 김대중 대통령이 현역 국회의원으로 일하던 시기의 자료들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본격적 의정 활동은 1963년 제6대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한 다음부터 시작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6, 7, 8대 국회에서 맹활약했습니다. 그의 의정활동은 1972년 가을, 10월 유신 체제가 선포됨으로써 아쉽게도 강제종료당하고 말았습니다.
길다고 길고,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김대중 대통령은 괴력을 발휘했다고 평가되어도 괜찮을 만큼 국회 단상에서 굉장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전집 제작 작업을 진행한 제가 오히려 질릴 정도로 국회의원 김대중은 한국정치사에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될 주옥같은 화두와 발언을 쉴 새 없이 남겼습니다.
그 무렵의 국회 시스템은 국회의원들의 효과적 의정활동에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이 지금과는 달리 충분하게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당장 비서진만 보아도 몇 명 되지가 않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와 같은 미흡한 의정활동 지원체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최초로 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이를테면 국회도서관의 부실함을 지적하며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확실한 지원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의회는 대의민주주의의 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회가 제 구실을 못하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없다면서 의원들의 충실한 의정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역설했습니다.
저는 국회 속기록을 일일이 살펴보면서 부실하고 불충분한 의정활동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현역 국회의원으로서 얼마나 커다란 성과를 창출했는지를 확인하며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대중 전집」의 두 번째 의미는 이 저작집에 실린 내용들에 담긴 높은 사료적 가치에 있습니다.
저를 특히 놀라게 한 자료는 1950년대에 생산된 콘텐츠였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폐간된 여러 매체들에 김대중 대통령이 기고했던 기명 칼럼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50년대까지는 이름난 유명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인터뷰 요청을 받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에 본인이 시사평론가 자격으로 직접 쓴 글들이 상당수 현존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여러 신문과 잡지 등에 실린 자신의 글들을 하나하나 스크랩해 갈무리했습니다.
공 : 칼럼니스트 김대중의 원조는 조선일보의 김대중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에 활동했던 자유기고가 김대중이었네요.
장 : 김대중 대통령은 잡지 「사상계」에 ‘한국 노동운동의 진로’라는 제목의 아주 유명한 기고문을 보냈습니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에도 본인 명의의 칼럼을 투고했습니다. 잡지를 비롯해 일간지와 월간지에다 수십 개의 글을 썼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 글들을 철해두지 않았다면 매체들이 문을 닫으면서 그의 글들도 함께 영원히 사라졌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대목입니다.
공 : 당시에는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었으니 현재로서는 검색조차 여의치 않을 것 같습니다.
장 : 김대중 대통령이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며 직접 집필한 1950년대의 글들은 「김대중 전집」의 1권에 수록돼 있습니다. 1950년대의 한국사회는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일은 언감생심인 몹시 척박한 곳이었습니다. 김대중이라는 새내기 시사평론가의 글들을 남들이 꼼꼼하게 정리해 보관해줄 리도 없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은 그가 정치인으로 두각을 나나내기 한참 전에 벌써 형성된 듯했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 이제는 객관적 자료에 기초해야
김대중 대통령은 영욕과 굴곡으로 점철된 20세기 후반의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가 큰 역할을 수행해했음은 김대중 대통령을 부정적 시선으로 폄하하려는 사람들조차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김대중 전집」은 김대중 대통령의 활동상을 일부 평자들의 주관적 주장이나 일방적 억측이 아닌, 객관적이고 구체적 자료에 근거해 분석하고 조명했습니다. 학술적 차원에서 「김대중 전집」이 매우 큰 의의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정치사적 관점에서 조망해도 「김대중 전집」의 가치와 의미는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정치는 개인의 호오의 감정이 공적 인물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해왔습니다. 「김대중 전집」은 특정한 정치인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이제부터는 대단히 객관적이고 정밀하게 이뤄질 필요성이 있음을 강력하게 웅변하고 증명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현재는 생존해 계신 분이 아닙니다. 역사의 일부분으로 승화된 사람입니다. 「김대중 전집」은 현실에서 역사로 옮겨간 인물인 김대중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데 훌륭하고 믿음직한 나침반 역할을 해줄 걸로 기대됩니다. (②편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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