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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시간이냐, 이재명의 시대이냐 - 재판을 준비하는 사람과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19-09-11 1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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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돌아오지 못한다


이재명 지사가 전통시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지금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지 않을까? (사진 김한주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정치생명이 경각에 달렸다. 이재명 지사가 항소심인 고등법원 재판에서 3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탓이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유죄가 인정된 부분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 혐의다. 이 지사 측의 상고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에서마저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된다면 이재명은 도지사직을 자동적으로 상실하게 된다. 더욱이 선거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최종심 판결 후 5년 동안 이재명 지사는 피선거권 역시 잃게 된다. 향후 5년간 모든 형태의 공직선거 출마가 원천봉쇄되는 셈이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후에 집권여당 소속의 세 명의 전‧현직 도지사가 연달아 수모를 당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여성 수행비서에게 몹쓸짓을 저지른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수인 생활을 계속해야만 할 처지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법원에서 보석 신청이 허가되어 도백 업무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다종다양한 층위의 인신공격과 고소고발에 시달리다가 고등법원에서 충격의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정치적으로 판단이 난처한 사안은 국민들의 평균적 인식에서 모범답안을 구하면 된다. 평범한 인민대중의 생각에서 안희정과 이재명은 문재인 대통령의 편이 아니다. 반대로 김경수는 문 대통령 진영에 속한다. 대중은 현 정권 아래에서 이들 3인의 운명이 어떻게 갈릴지 본능적으로 짐작하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이재명 지사는 생환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입장이다.


더욱이 하급심에서 300만 원의 벌금형을 때렸으면 상급심에서 무죄를 선고하거나 100만 원 밑으로 벌금을 깎아주기는 힘들다. 필자가 법에는 문외한임에도 대법원은 법리만을 따진다는 기초 법률지식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다. 대법원은 웬만해서는 선고된 벌금의 액수를 늘이거나 줄이지는 않는다.


5년 후에도 여전히 젊다


나는 이재명 지사가 고등법원에서 3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는 속보가 전해지자마자 그의 나이를 다시금 확인해봤다. 1964년생이다. 우리 나이로 56세. 일반인으로선 적은 나이가 아니겠으나, 정치인으로서는 많은 나이라 평가하기 어렵다.


안희정 전 충청남도 도지사와 이재명 경기도 도지사가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경쟁자인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웠을 적에 국민들은 이들 두 사람을 나중에 기다리는 운명이 어떤 것일지 대략 감을 잡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이재명 지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 씨를 걸고넘어진 일은 그야말로 루비콘 강을 건넌 이판사판 결정과 진배없었다.


전문가의 촉은 빗나가도, 국민의 감은 어긋나지 않기 마련이다. 안희정의 몰락에는 자기 관리가 부실한 탓이 컸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재명의 수난의 경우에는 실제 억울한 구석이 많을지도 모른다. 허나 문재인 정권 밑에서 겪은 억울한 사연만 따지자면 이재명보다도 더 큰 억울함을 느낄 사람들의 숫자가 적어도 강남 로또 아파트의 모델 하우스에 몰려든 인파만큼은 되리라.


이재명 지사의 지지자들에게는 아주 불쾌하고 기분 나쁜 예언이겠지만 문재인 정권에서의 이재명 지사의 명운은 고등법원 판결로 이미 명확히 결판난 듯싶다. 지금부터의 법정 투쟁은 영화 끝난 다음의 엔딩 크레디트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재명 지사와 그의 지지자들은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가 없다. 이재명은 지금 죽는 게 영원히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의 총체적 실패가 기정사실화된 현재, 이재명이 문 정권의 과오와 전혀 무관하다는 알리바이를 확보한 덕분이다. 이재명에게 장기적으로 필요한 알리바이는 친형의 정신병원 강제입원과 관계가 없다는 부재증명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권의 실패와 무관하다는 면죄부였다.


문재인과 황교안의 한계는 이재명의 한계


문재인 정권에서 ‘이재명의 시간’은 당연히 없다. 그렇다면 이재명 경기지사와 그 지지자들은 멀리 내다보며 ‘이재명의 시대’를 준비하는 게 오히려 지혜로울 것이다. (사진 김한주 기자)문재인 정권이 어영부영 임기를 다 채우고 허망하게 퇴장하면 이재명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존재할 전망이다. 첫째는 무리수를 쓰더라도 사면복권을 받는 길이다. 둘째는 진득하게 5년을 기다리는 길이다.


한국정치는 586 세대가 권력의 상층부를 차지한 사태를 계기로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완전히 사그라지고 말았다. 그 대신 고령의 노인들이 국가권력을 쥐락펴락하는 노인정치(Gerontocracy)로 향하는 경로에 불가역적으로 접어들었다. 이를테면 임종석과 이인영과 우상호가 자기들 얼굴에 검버섯 가득할 때까지 정치일선에 현역 정치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10년 후의 이재명에게 나이 먹었으니 물러가라고 종용할 인물도, 세력도 없을 것이다. 똑같이 늙어가는 주제에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하겠는가?


문재인 정권에서는 조국의 시간도 있고, 유시민의 시간도 있고, 윤석열의 시간도 있을지언정 이재명의 시간은 없다. 그러므로 이재명이 추구해야만 할 건 문재인 정권 동안의 이재명의 시간이 아니라, 문재인 정권 이후의 이재명의 시대라고 하겠다.


100년을 갈 정당을, 1000년을 갈 나라를 만들고 싶으면 최소한 10년은 준비해야 한다. 물론 지금의 이재명은 문재인 정권에서는 결코 오지 않을 이재명의 시간을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라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테라공처럼 하염없이 마냥 기다리면서 상고심을 준비할 태세다.


준비된 지도자는 목전에 닥친 공판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다. 미래를 멀리 내다보며 언젠가는 반드시 오고야 말 자신의 시대를 차분하고 담대하게 준비하는 인간이다. 이는 현직 대통령으로부터 제1야당 대표에 이르기까지 편협하고 근시안적 안목의 옹졸하고 지질한 법조인 출신들만 즐비한 오늘날의 남한사회에서는 차마 기대하지 못할 웅대하고 진취적인 인간상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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