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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전당대회 산책기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19-02-27 19: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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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가 산책기가 된 까닭은


자유한국당의 창당 세 번째 전당대회는 김진태 의원의 후원회 행사를 방불하게 했다. 어딜 가나 김진태였다.

미세먼지 자욱한 날이었다. 자유한국당의 3차 전당대회가 치러진 경기도 고양시 한국국제전시장(KINTEX) 주변의 탁하고 답답한 날씨는 대한민국 제1야당의 미래가 극히 불량한 시계(視界) 상태에 놓여있음을 상징적으로 웅변하는 듯했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취재하는 일에 실패했다. 태극기부대의 과격한 돌출행동이 두려운 탓이었는지, 또는 당대표 선거에까지 출마한 김진태 의원을 비롯한 몇몇 자유한국당 소속 정치인들의 광주 5‧18 민중항쟁 모독 망언이 불러온 후폭풍이 신경에 쓰인 이유에서였는지, 행사를 주관한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 측에서 사전에 등록된 언론사와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 이외의 일반 국민들의 출입을 엄중하고 삼엄하게 통제했기 때문이다.


한 시민이 "자유한국당 해체!"를 외치고 있다. (본인 동의하에 촬영)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의 하노이 조미(朝美) 정상회담의 직격탄을 맞고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는 가뜩이나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터였다. 그들만의 리그에 추가해 ‘무관중 경기’까지 진행하겠다는데, 감히 누가 자유한국당의 저 거침없는 무한도전을 제어할 수 있으랴?


나는 킨텍스 행사장 내부로의 잠입 아닌 잠입을 일찌감치 마음 편히 포기하고 행사장 앞마당을 가볍게 산책하는 행위로 취재활동을 갈음했다. 2010년 5월 24일, 적지인 일본 사이타마 구장에서 개최된 한일 국가대표 축구경기에서 선제득점을 기록한 박지성 선수가 선보였던 산책 세리머니를 필자 역시 자유한국당을 일본 대표팀이라고 발칙하게 상정하며 은밀히 재연하고 싶었다. 


필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주요 정당들의 전당대회를 둘러봤다. 순수한 구경꾼 자격으로 가보기도 하고, 취재진 신분으로 참석하기도 하고, 컨설턴트 역할로 조용히 참전하기도 해봤다.


전당대회를 참관할 적마다 변함없이 확인하는 사실이 있다. 민주당 계열의 정당들은 참 의연하다. 20년 전에 20~30대였던 구성원들이 여전히 전당대회의 주축이다. 한나라당을 거쳐 새누리당을 지나 자유한국당에 이른 보수 계통의 정당들은 정말 유구하다. 20년 전쯤에 40~50대였던 선수들과 관중들이 아직껏 그 물이 그 물인 채로 그냥 고스란히 나이만 먹었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3종 세트


김진태는 자유한국당판 최고의 아이돌 스타였다.2019년 2월 27일 수요일 오후의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장 주위는 탑골공원을 그대로 옮겨온 풍경이었다.


간간이 청장년들의 모습이 목격되기는 했으나 그들은 거의 전부가 목에 이런저런 명찰을 건 행사 관계자들이었다.


2019년 2월 27일의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는 김진태 의원의 팬클럽 대규모 번개 모임이었다.


개표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김진태는 자유한국당의 총아이자 영웅이었다. 이른바 ‘당대포’ 정청래가 더불어민주당의 무관의 제왕이라면, 김진태는 자유한국당의 무관의 제왕이었다. 필자와 같은 순전한 관찰자 입장에서는 김진태에게 구태여 당대표라는 거추장스러운 공식 직함이 과연 필요할까란 생각조차 들 지경이었다. 김진태는 자유한국당의 ‘기층대중’을 완벽히 접수했다.


2019년 2월 27일의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는 자유한국당이 갈라파고스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면서 불가역적으로 뿌리내린 순간이었다.


열혈 지지자들은 광주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의 명단을 낱낱이 공개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들은 광주항쟁 폄하 발언에 항의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빨갱이라는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열성 지지자들에게 세 번째 북미 정상회담은 욕할 가치마저 없는 남의 나라 얘기일 따름이었다. 여성과 청년 등 대다수 평범한 국민들이 몹시 궁금해 하는 민생과 복지, 노동과 생명안전, 경제와 교육은 자유한국당 열성 지지자들에게는 문재인 대통령 열혈 지지층한테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우중의 한심한 밥투정에 지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이 노인의 당이 되고, 소위 수구꼴통의 당이 되고, 이구아나의 정당이 돼버린 참담한 사건을 더불어민주당이 그럼에도 마냥 웃으며 바라봐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자유한국당은 늘 더불어민주당의 선도정당이었다. 흥성하는 길은 달랐으되, 몰락하는 길은 같았던 것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질기고 질긴 인연이고 당사(黨史)였다.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자리한 절해고도와 매한가지인 갈라파고스 섬에 서식하는 대형 파충류의 일종인 이구아나 무리에서 어떤 이구아나가 대장으로 선출되든 이구아나는 이구아나일 뿐이다. 자유한국당이 목숨 걸고 해답 찾기를 고민할 문제는 어느 도마뱀을 무리의 대장으로 뽑을 것인가가 아니다. 어떻게 갈라파고스에서 탈출할 것인지에 관해서이다.


허나 자유한국당이 갈라파고스 제도로부터 드넓은 대륙으로 기적적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별로, 아니 전혀 포착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은 도마뱀을 사람으로 만들 특출한 능력은 없어도, 사람을 도마뱀으로 퇴화시키는 희한한 재주는 있는 당이기 때문이다. 비유적 맥락에서 딱 한 가지 임상사례만 들자. 심재철 의원도 한때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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