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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①, 지금은 제2의 명·청 교체기가 아니다” - 명동이 중국인의 거리로 변한 것은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결과물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21-05-13 17: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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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의 숫자가 격감하며 한국이 다른 나라들과 맺어온 다양한 영역과 층위의 관계들이 가진 의미와 중요성에 많은 국민들이 새롭게 눈뜨게 되었다.

김영선 대표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20년 가까이 교역에 종사하면서 양국 경제관계의 부침을 현장에서 실감 나게 체감해왔다. 586 기성세대의 전통적 반미의식과 젊은 2030 세대의 떠오르는 반중감정이 뒤섞여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가 두드러지게 배타적이 되어가는 지금,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인 한국이 어떠한 전략과 태도로 중국을 비롯한 외국과의 관계를 정립해나가야 할지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때 이른 여름 기운이 차츰차츰 느껴지던 2021년 5월 12일 수요일 정오경에 서울 신촌에 자리한 한 중식당에서 진행되었다.

공희준(이하 공) :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의 원칙은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대외적 평화를 보장하고 대내적 번영을 제공해온 정책기조였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쟁국으로 부상하면서 이와 같은 틀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른바 G2 체제로 불리는 새로운 국제질서 아래에서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의 생존방안에 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내놓고 있지만 책상물림들의 하나마나한 공리공담으로만 느껴질 뿐입니다. 반면에 실제로 현장에서 외국과 무역을 하고 사업을 하시는 분들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오랫동안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기업체를 운영해오셨습니다. 한중 관계의 악화에서 비롯된 피해가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위치에 계십니다. 경제전선에서 진짜 땀 흘리고 있는 대표님 같은 분들이 생각하시기에 지금의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과연 정상적 상태인가요? 그리고 우리가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증진할 수 있는 방책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알고 보면 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

 

김영선 대표는 중국도 한국 못잖게 미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사진=최인호 기자)

김영선(이하 김) : 저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 아니라 여전히 현실에서는 “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미국이 찍어내는 달러화가 전 세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변함없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 마찰과 무역 갈등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갑자기 불거진 일이 아닙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2003년 무렵에 시작돼 여태껏 이어져온 사태입니다. 당시 미국은 부시 대통령이, 중국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각각 나라를 이끌고 있었는데, 양국이 격돌한 쟁점은 위안화의 절상 문제였습니다.

 

공 : 대표님께서는 본격적인 사업을 목적으로 언제 중국에 들어가셨나요?

 

김 : 저는 2003년보다 1년 전인 2002년에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그 후 계속 주로 중국에 머물러 있다가 2010년도에 우리나라로 완전히 귀국했습니다. 귀국한 이후에도 저희 가족이 중국 현지에서 운영하는 사업체를 관리해야만 하는 필요성 때문에 한국과 중국을 지속적으로 왕래하고 있습니다.

 

제가 중국을 무대로 사업을 해온 지난 20년 동안 미국의 대중국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이 줄기차게 고조돼왔습니다. 현재 정작 달러를 자기들 수중에 제일 많이 갖고 있는 나라는 다름 아닌 중국입니다. 특히 미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중국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보유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 거대 양국이 서로 으르렁댈 때마다 달러가 무기로 동원되곤 합니다. 심지어 중국이 자국이 보유한 달러를 태평양 한가운데 뭉텅이로 갖다버리겠다는 엄포를 놓았다는 소문마저 돌 지경이었습니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방출하면 중국이 오히려 바보가 될지, 아니면 미국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립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드 사태를 계기로 중국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대응책 논의가 비로소 활발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야후와 구글 같은 미국 기업들은 이미 중국시장에서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서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더욱이 중국이 외국 기업들을 겁박하는 일은 저처럼 현장에서 비즈니스에 종사해온 사람들에게는 그리 낯설거나 별로 새삼스런 사건이 아닙니다.

 

경제현장에서 중국과 수출입 업무를 진행할 경우 대개는 직접 위안화로 거래에 나서지 않습니다. 먼저 달러를 구한 다음에 이를 위안화로 교환하는 게 보통입니다. 따라서 미중이 환율로 격돌하면 저희들은 머리에서 쥐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진이 발생합니다. 기축통화가 달러인 국제환경에서는 중국이 당장은 아무리 날고뛰어도 결국에는 을의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공 : 그래서 대표님께서 “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이라고 서슴없이 규정하신 거네요?

 

김 : 예, 그렇습니다.

 

공 : 그럼에도 미국을 지는 별 명나라에 빗대고, 중국을 뜨는 별 청나라에 비유하며 현재를 17세기 초ㆍ중엽의 명청 교체기의 재림으로 상정하는 기류가 우리나라 일각에 엄존하고 있습니다.

 

김 : (조금 심드렁한 말투로) 지금을 제2의 명청 교체기로 가정하는 구도는 그냥 자기들끼리 관념 속에서 만들어낸 허구적 시나리오일 뿐입니다. 산업현장이나 사업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평가한다면 중국처럼 진취적이고 실사구시적인 나라도 없습니다. 단적으로 중국은 인민의 손으로 봉건적인 전제왕조 체제를 타도한 경험을 가진 국가입니다. 한국은 요즘 들어 지나치다고 말해도 될 만큼 과거의 흘러간 역사에만 몰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우리와는 다릅니다. 그들은 한국인들의 통념과는 다르게 미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인민대중의 정서와 나라 분위기부터가 굉장히 현대적입니다.

 

한국이 명나라와 청나라 얘기를 죽기 살기로 한다면, 중국은 그 이야기를 웃고 즐기자는 차원에서 합니다. 반면에 경제적 현안에 관해서라면 중국인들처럼 유연하고 실용적인 인간들이 또 없습니다.

 

나는 한국인의 적응력을 믿는다

 

김영선 대표는 우리나라가 지금의 어려움에서 머잖아 벗어날 것이리고 낙관했다. (사진=최인호 기자)

공 :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이 몹시 이념적이고 경직된 자세로 나오기 때문에 명동거리와 동대문시장을 한떼 가득 메웠던 대륙의 관광객들이 일거에 썰물처럼 확 빠져나갔다고 여깁니다.

 

김 : 그러한 생각은 완전히 앞뒤가 뒤바뀐 판단착오입니다. 명동은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오기 전에도 한국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습니다. 장사가 잘되니 땅값도 단연 최고였습니다. 그러다가 중국인 손님들의 비중이 급속도로 증대하니까 거기에 발맞춰 우리 스스로 명동 지역경제의 구조와 체질을 변화시켰습니다. 중국인들의 눈높이에 맞추라고 누가 강제로 명령하지도 않았건만 중국인의 취향과 구미에 걸맞은 제품과 서비스 제공에 전문적으로 특화된 거리로 명동을 자발적으로 바꾸었습니다. 명동이 중국인 맞춤형 거리가 된 현상은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예전에는 명동은 당연히 우리나라 국민들이 지인을 만나고, 물건을 사가는 공간이었습니다.

 

중국이 한국에 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된 데 항의해 자국의 단체관광객들이 우리나라를 찾지 못하게끔 금지한 건 분명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국이 한국으로의 단체관광을 굳이 인위적으로 차단하지 않았더라도 중국인들 가운데 무리 지어 한국으로 관광을 올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들어온 상태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이제 미국이나 유럽으로 관광을 가는 게 확고한 대세로 정착되었습니다. 우리로 치자면 농촌의 계모임에 소속된 장년과 노년의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는 중국 방문자들의 주류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였습니다. 한국산 화장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려는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입국하는 중국인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고요.

 

공 : 중국인들에게 한국은 순수한 관광지로서는 더는 매력이 없는 곳이 돼버린 셈이네요.

 

김 : 중국은 엄청나게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지닌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을 찾는 계층도 당연히 존재합니다. 우리나라는 한국을 찾는 중국의 특정한 인구집단만 바라보면서 기존에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공 : 우리가 중국으로의 종속을 자청한 측면이 있다는 말씀이네요?

 

김 : 저는 한중 관계를 지배와 예속의 주종관계의 잣대에 의거해 비판적으로만 이해하려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민족이 지혜롭게 잘했던 일들 중 하나가 주변 환경에 신속하게 적응해온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공희준 위원님께서야 비굴한 종속이라고 질타하시겠지만, 그처럼 신속하게 주변 환경에 적응한 성과물로 대한민국은 오늘날 중국을 상대로 막대한 금전적 이득을 장기간 취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은 새로운 방향과 단계로의 적응과 진화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적응과 진화의 노력이 결국에는 성공적 결실을 거두리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단지 코로나 19 바이러스 창궐 같은 돌발변수들 때문에 더 나은 체질로의 연착륙이 잠시 원활하지 않을 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②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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