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자영업자 집회에 더불어민주당만 안 나와
공 : 사장님께서는 지난 8월 29일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소상공인들이 주도적으로 개최한 ‘자영업자 최저임금 불복종 시위’에 나가셨습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장사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견해를 피력하셨는데, 그 집회에는 왜 동참하셨나요? 사장님의 반응이 조금은 모순적으로 느껴집니다.
심 : 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저와 같은 소상공인들에게 과중한 부담이 된다고 판단해서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최저임금 때문에 장사 안 된다”는 식의 단순논리에 동조해서 참석했던 건 아닙니다. 사람들은 어느 한 가지 원인 때문에 나머지도 다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향한 비판적 시선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게 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다”라는 투로 한 군데로 몰아가거든요. 저는 그러한 단선적이고 일차원적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더 드리고 싶습니다.
공 : 저도 자영업자들의 집회를 구경하고 싶었는데 그때는 마침 제가 한 정보통신 회사에서 평범한 월급쟁이로 지내던 상황인 탓에 아쉽게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최저임금 불복종 집회에 참여한 자영업자 분들의 정치적 성향은 대체로 어땠나요? 지지하는 정당에 관계없이 나오셨나요?
심 : 예. 자유한국당이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의 시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측면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유한국당에 우호적인 집회였다고 함부로 단정해서는 곤란합니다. 바른미래당 사람들도, 평화민주당 사람들도, 정의당 사람들도 그날 다 왔었기 때문입니다.
공 : 그렇다면 현재의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소속된 정치인들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거네요?
심 : 더불어민주당만 불참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머지 정당들은 전부 참석했습니다.
공 : 제가 그 부분이 수수께끼처럼 의아하게 여겨집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을 영도하던 시절부터 우리나라에서 민주당 계열의 정당들은 전통적으로 영세 자영업자 계층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왔습니다. 더군다나 수도권 지역에서 자그만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분들 가운데에는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상당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소상공인의 정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지금은 영세 자영업자와 가장 적대적 관계에 놓인 정당으로 변모하고 말았습니다.
심 :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저는 그렇지 생각하지 않지만, 지금 대다수 자영업자들은 자기들이 어려워진 주요한 이유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게다가 새 정부의 출범에 수반되기 마련인 기대심리도 충족되지 않았고요.
공 : 정리하자면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 판국에, 문재인 정부가 결과적으로 자영업자들이 비용만 더 지출하게끔 만들어놓은 셈이네요?
심 : 그런 일들이 겹치면서 자영업자들의 민심이 정부여당에 등을 돌리게 됐다고 봐야죠. 그렇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비단 문재인 정부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작년의 대통령 선거 당시에 자유한국당에사 출마한 홍준표 후보와 바른미래당이 공천한 안철수 후보 모두가 속도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주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가 정권을 잡았든 최저임금은 크게 상승했을 겁니다. 최저임금 인상에서 비롯된 후폭풍을 문재인 정부가 운 없이 몽땅 뒤집어쓴 격이죠.
공 : 저도 대통령이 누가 됐건 간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말미암은 사회적 갈등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 힘센 노조에는 약하고 영세 자영업자에게는 강해
심 :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의 잘못 또한 큽니다. 우선은 노조들의 눈치를 지나치게 봤습니다. 노동계에게 무기력하게 휘달리다 보니 밀리시다시피 해서 최저임금을 올려놓은 것이죠. 이 지점에서 정부여당의 판단이 너무나 안일하고 타성적이었습니다. 자영업자들이 예전처럼 고분고분하게 순종하리라고 예견한 것이죠.
공 :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자영업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목소리가 없는 계층이었기 때문입니다. 노동계와는 다르게 조직화도 되어 있지 않고요. 그런 이유들로 인해서 자영업자들의 민심은 여론조사에서도 잘 포착되지 않아왔습니다.
심 : 노동조합은 조금만 자기들에게 불리한 정책이 나와도 즉각 조직적으로 반발에 나섭니다. 그러니 정부에서도 노동계부터 먼저 배려해주곤 하죠.
공 : 노조원들이 실상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우리니라가 노조 조직률이 높은 국가가 절대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소위 ‘조직된 노동’이 자기네를 실제 숫자보다 훨씬 더 많아 보이도록 포장하는 데는 달인이고 선수들입니다.
심 : 저는 노조의 입김이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데 강력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그러자 자영업자들이 “노조만 대한민국 국민이냐?”라며 마침내 들고 일어난 것이지요.
공 : 최저임금 문제에 대한 사장님의 개인적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심 : 저도 올리는 데는 원칙적으로 찬성합니다. 당연히 올려야죠. 대신에 자영업자들에게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치밀하게 마련해놓은 다음에 올려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후약방문일 뿐입니다. 병 주고 약주는 꼴입니다. 자영업자들의 반발 여론이 정부가 예상했던 것보다 극심하니까 그제야 이런저런 대책들을 급하게 부랴부랴 내놓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대책들이 모두 세금 쏟아 붓는 걸로 귀결된다는 점입니다.
공 : 공무원들이 자기들 적금 깨고 주식 팔아서 정부 예산을 편성하지는 않으니까요. 남의 돈으로야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심 : 그 세금도 자영업자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겁니다. 세금 갖고 대책 세우는 일은 저라도 시켜주면 할 수 있겠어요.
공 : 그거면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웃음)
‘저녁이 있는 삶’은 자영업자에게는 쓸데없는 소리
공 : 최저임금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여전히 뜨겁게 불붙은 상태에서 또 다른 현안이 점화되었습니다. 주 52시간 근무제입니다. 심춘보 사장님처럼 가족 이외의 사람들까지 종업원으로 고용해 영업을 하고 계시는 자영업자들에게 이 제도가 미치는 영향력은 얼마나 될 걸로 예측하고 계십니까?
심 : 주 52시간 근무제는 적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 2021년 7월 1일부터 전면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다른 업종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일반적으로 음식점들의 경우에는 하루 12시간 근무 형태가 대부분입니다. 일주일에 6일 근무를 기준으로 삼으면 주당 72시간을 일하는 것이죠.
공 : 벌써 20시간이 초과됐습니다.
심 :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이른바 ‘시간 쪼개기 근무’가 성행하기 마련입니다. 나머지 20시간은 업주의 식구들이 벌충하게 돼는 거죠. 정부에서는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취지에서 이 제도를 도입했겠지만, 실상은 일자리는 그대로인데 기존 피고용자들의 수입만 줄어들 가능성이 큽니다. 대기업이나 300인 이상이 근무하는 대형 사업장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소규모 업종들에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입니다. 저 같은 자영업자들이 보기에는 주당 노동시간이 72시간으로부터 52시간으로 단축된다고 해서 사람을 더 쓸 이유는 없는 것이죠. 식당들은 어차피 하루에 12시간은 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맞아야 합니다. 사람 고용 안 하고 주인이 하는 게 차라리 낫지요.
공 :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직이 존재할만한 대형 사업장이 아닌 바에는 소규모 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좋을 것이 없겠네요?
심 : 무엇보다도 수입이 줄어들 테니까요. 더 받게 되는 사람이야 아주 없지는 않겠죠. 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직원을 추가로 고용하는 업소들도 있을 수 있고요. 그러나 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은 쓸데없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공 :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에 대한 파문선고로 들립니다. 손 대표님이 자랑하는 정치적 작품이 ‘저녁이 있는 삶이’이거든요. 저희 집에 그 구호 담긴 노래 CD도 있습니다. (웃음)
심 : 주 52시간 근무제가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삶의 질을 제고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거꾸로 생각해보세요. 52시간 이상을 일해서라도 돈을 더 벌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이 제도는 어처구니없는 악법일 수가 있습니다.
공 : 고용자들이야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할 수 있겠지만, 사장님께서 지금 지적해주신 내용처럼 피고용자 즉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대비책이 없겠네요.
심 :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은 더는 아무데도 갈 데가 없을 때,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오는 곳입니다. 마지막으로. (잠시 착잡한 표정을 지은 다음) 그런데 여기에서마저 내 맘대로 일을 못하게 한다? 이를테면 하루에 12시간을 일해서라도 자신의 가족을 부양해야만 하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이 있습니다. 법으로 이 사람을 일주일에 52시간만 일하도록 강제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족한 노동 시간을 다른 어디에선가 보충해야만 하는데 그걸 어디서 찾을 수가 있겠어요? 어디에서!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 식당 같은 아주 작은 일터들인데 말이에요!
이 대목에서 심춘보 사장은 답답한 심정을 여과없이 토로했다. 사실 더 답답해야만 할 사람은 그처럼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게에 고용된 사람들일 것이다.
공 : 더 이상은 갈 데가 없죠. 다른 가게들도 사람을 쓰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심 : 경우에 따라선 사람을 더 쓰는 가게도 있겠죠. 문제는 그런 가게가 가뭄에 콩 나듯 한다는 점입니다. 그럼 하루에 12시간을 일해야 하는 사람이 어디로 가겠어요? 집으로 가야지!
공 : 집에 가야죠. 여기가 세상의 끝인데.
심 : 집에 가야지. 그런데 집에 가서 뭘 해요? 할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게 무슨 저녁이 있는 삶이야?
공 : 인력시장이 최종 종착지인데, 인력시장마저 문을 닫으면 이제 모든 희망이 다 셔텨 내린 거죠.
심 : 저는 정부에서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주 52시간 근무제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까지도 급기야 꺼내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가 시행해도 별 볼일 없을 겁니다. 어느 누가 대통령을 하든, 어떤 인물이 경제사령탑에 임명되건. 그만큼 현재 우리 사회가 암울하다는 뜻이에요.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먹고사는 일이 너무나 팍팍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강북과 강남은 서로 다른 나라
공 : 이왕 운을 뗐으니 우울한 질문 한 가지만 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표님, 혹시 강남에서 살아보신 적은 있나요?
심 : 살아본 적은 없고 마트를 운영해본 경험은 있습니다.
공 : 어디에서 하셨죠?
심 : 개포동이요.
공 : 개포동, 좋은 데서 하셨네요. (웃음)
공 : 개포동은 개포동이되 휘황찬란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개포동 주공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상점을 개업했는데, 명색이 강남임에도 장사가 너무나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하도 답답해 하니까 어느 분이 저한테 개포동에 왜 왔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공 : 당연히 돈 벌러 가셨죠. (웃음)
심 : 그분이 개포동은 “개도 포기한 동네”라면서 빨리 점포를 빼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공 : 그 “개도 포기했던 동네”가 오늘날은 아파트 한 채에 수십억 원을 호가합니다.
심 : 개도 포기한 동네일망정 거기도 강남은 강남이잖아요. 제가 그전에는 강북 지역에서만 장사를 해왔었습니다. 강남은 구매력이 더 클 거라고 내심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똑같기는커녕 장사가 도리어 더 안 되는 거였습니다.
공 : 이 동네가 구의 명칭마저 ‘강북구’인 사실에서 확인되듯이, 서울 강북의 전형적인 서민층 생활공간이고 주거지역입니다. 강남권에서 한 달 사이에 집값이 몇 억씩 폭등했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주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으로 분노를 폭발시킬 것 같은데요.
심 : 저뿐만 아니라 저희 가게 오시는 손님들도 강남에 관련된 뉴스만 나오면 아예 쳐다보지를 않습니다. 그냐 자동으로 고개를 돌려요.
공 : 그건 좋게 말해서 달관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포기입니다.
심 : 체념한 거죠. 저기는 우리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다른 나라 얘기라고 치부하는 겁니다. 강북구에서는 아무리 좋고 큰 집도 집값이 10억 원 언저리입니다. 강남에서는 18평짜리 아파트조차 20억이 훌쩍 넘더라고요. (격앙된 목소리로) 그게 어떻게 우리나라야?
공 : 그런데 그 남의 나라 사시는 분들이 강북구민의 삶과 직결된 정책들을 좌지우지하지 않습니까? 최저임금도, 주 52시간 근무제도 죄다 그 남의 나라인 강남 사는 사람들 머릿속에서 나온 발상이고 방안입니다. 강북구에 거주하는 분들이 결정한 게 아니잖아요.
심 : 우리나라 정책을 우리나라 사람이 만들고 집행해야 하는데 그걸 남의 나라 사람들이 주무르니 자꾸만 탈이 나는 것이죠.
공 : 그러니까 “강북은 강남의 식민지”라는 탄식이 도처에서 쏟아지는 겁니다.
심 :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정책을 결정하는데 잘될 턱이 있겠어요? 어렸을 때 배고팠던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배고픈 것이 진짜 배고픈 거요.
우리 사회에는 과거 한때의 고초와 고생을 구실로 현재의 기득권과 무임승차를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이 출세하고 성공했다는 인사들 가운데 특히나 많다. 심춘보 사장은 이솝이 어느 허풍선이에게 일갈햇듯이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봐라!”라고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에게 대차게 촉구하고 있었다.
공 :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심 : 힘들게 자식 키워온 사람들이 정책을 만들고 나라를 다스려야 바람직하건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적나라하게 말씀드리자면 배에 기름기 낀 인물들이, 서민들의 고충을 모르는 인사들이 정책을 입안하고 국정을 운영하니 나라꼴이 정상일 리가 없죠. 서민들의 애환은 산동네에서 연탄 나르는 쇼한다고, 시장통에서 어묵 사먹는 쇼한다고, 양로원 같은 데에서 조끼 입고 김치 담그는 쇼한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쇼가 전부인 사람들이 권력을 틀어쥐고 있어요.
공 : 제가 오늘 가리봉동에서 미아사거리로 지하철을 몇 번이나 환승해가며 왔습니다. 가리봉동과 미아서기라 모두 대한민국 사회에서 뉴스의 주무대로 등장하는 공간은 아닙니다. 기자들도, 정치인들도, 관료들도, 언론인과 지식인들도 행동반경이 허구한 날 여의도, 광화문, 그리고 강남을 좀체 벗어나지 못합니다. 제가 맥락을 고려해 유추하자면 사장님처럼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강남도, 여의도도, 광화문도 전부가 남의 나라이겠네요?
심 : (단호한 음성으로) 남의 나라죠. 우리가 보기에는 남의 나라입니다. 거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공 : 굳이 현해탄과 태평양을 건너야 남의 나라가 나오는 게 아니네요. 지하철 타고서도 외국으로 출국할 수 있는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입니다.
심춘보 심촌정육식당 사장은 자식 농사에 탁월한 성공을 거뒀다. 내가 그 비결을 묻자 그는 “노 코멘트!”라고 딱 잘라 이야기하며 답변을 거부했다. 나는 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심춘보 사장의 가족과 관련된 더 이상의 직접적 질문은 삼가기로 했다. 대신에 일반론적 물음으로 대담의 운동장을 기울였다.
자영업은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직업
공 : 자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가장 큰 고민이 아이들 양육과 교육 문제일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나라는 남편과 아내 모두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함께 가게를 지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자영업자들의 아이들에 대한 걱정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심 : 따지고 보면 이것 역시 사회적 문제입니다. 개인적 고민으로 환원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의 제 옛 경험과, 제가 현재 알고 있는 자영업 종사자들이 사례에 비추어보면 아이들이 유치원이 끝난 다음에는 보통은 가게에서 놀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달리 없는 탓입니다. 그러니 교육이 제대로 되기가 어렵죠.
공 : 아이들이 가게에서 놀면 부모님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따르나요?
필자도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 인쇄 노동자들을 상대로 허름한 튀김집을 차렸던 적이 있다. 그때 가게 주변에서 거친 욕설을 수반한 싸움판을 자주 목격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당연히, 철부지 동심에 이로운 환경일 리가 없었다.
심 : 이를테면 음식점에는 다양한 유형이 손님들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고상한 얘기, 지적인 얘기, 건전한 얘기만 나누게 되지는 않습니다. 상스러운 욕설에, 듣기에 민망한 음담패설에, 남들에 대한 뒷담화까지 온갖 거북한 얘기들이 수시로 오가곤 합니다.
공 : 제가 아주 이따금씩 소위 배웠다는 분들과 음식점에 같이 가서 함께 식사를 하는데, 그곳 밥상머리에 앉아 고상하고 지적이고 건전한 얘기를 나눈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원초적 본능에 충실한 방향으로 대화의 내용과 주제가 흐르기 일쑤입니다.
심 : 그 상황에서 술 한 전 걸친다고 생각해보세요. 시시껄렁한 불평불만의 토로는 양반입니다. 어른이 들어도 당장 집에 달려가서 귀를 씻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천지사방으로 난무합니다. 거기에 애들이 그대로 노출되는 겁니다. 그럼 애들이 어떻게 되느냐? 부모가 고생하는 광경을 가까이서 목격하고서 철이 일찍 든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대조적으로 속된 말로 개차반이 되는 애들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자산가를 예로 들게요. 그분이 정말 매일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한 덕분에 수천억 원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해요? 자식들 중 한 명은 미국에 유학을 보낸 다음 매달 수천만 원을 송금해줬는데도 결국에는 사람이 안 되더라고요. 부모가 장사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자식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공 : 가슴 아픈 사연들입니다.
심 : 자식 둔 사람들이 자영업에 진출하는 건 자식 교육을 생각한다면 제가 권하고 싶은 일은 아닙니다. 유치원까지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고 해도 그 이후에는 부모가 아이들을 일일이 챙겨주기가 매우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공 : 주류 판매가 포함되는 업종이라면 더욱더 그렇겠네요?
심 : 설령 술을 팔지 않는 장사라고 해도 어른들이 많이 들르는 곳에는 아이들이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들이 오고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걸 통제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거의 전무합니다. 이 부분은 자영업자들에게는 단순한 애로사항 정도가 아닙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자괴감의 근원이에요.
공 : 장기적 관점에서 보자면 장사 안 되는 걱정보다 더 심각한 우환거리가 되겠네요.
심 : 그렇죠. 그런데 더 속상한 부분이 뭔지 아세요?
공 : 뭔가요?
심 :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아이들 문제를 아예 신경 쓸 겨를조차 없다는 사실입니다. 장사를 하다 보면 자식들이 가게 한 구석에서 만화책을 보는지, 휴대전화로 게임에 열중하는지 거기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허락되지가 않습니다. 당장 먹고사는 게 급선무이거든요. 절박하기 짝이 없는 먹고사는 문제에 매몰되는 보면 아이들의 정서 발달이나, 학업 성적 같은 건 저 먼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니 장사 마치고 밤 느지막이 귀가하다가 그날도 저녁에 아이들끼리 집에서 라면 끓여먹었을 거란 사실에 비로소 생각이 미치면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죠.
박원순 서울시장, 식당 알바로 한 달은 뛰어봐야
공 : 제가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밝게 유도해보자는 목적으로 가족과 관련된 질문을 드린 건데 오히려 더 우울한 기조로 가고 말았습니다.
심 : 정부에서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은 자영업자들의 이와 같은 애환과 고충은 처음부터 안중에도 두지 않습니다. 왜냐? 아예 모르니까요. 박원순 서울시장이 삼양동 옥탑방에서 서민체험을 해본들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겠어요? 집 앞에서 하얀 고무신 신고서 빗자루 들고 청소하는 게 고작이지요. 접촉하는 주민들의 범위도 제한돼 있고요. 그 정도 갖고는 서민들의 삶 속 깊숙이 들어가는 건 어림도 없습니다.
공 : 동네에서 자발적으로 쓰레기 치우고 다니는 봉사활동은 박원순 서울시장보다도 제가 훨씬 오래전부터 몸소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웃음)
심 : 박원순 시장이 서민들이 삶 속으로 진짜로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기는 합니다.
공 : 뭔가요? 제 글을 컨닝하는 분들이 정치권에 은근히 많은 터라 한번 넌지시 흘려보게요. (웃음)
심 : 식당에서 한 달 동안 알바를 해야지.
공 : 고급 아이디어입니다. 이거 순전히 제 자랑입니다만, 박 시장 쪽 인사들이 저를 수시로 컨닝하기 때문에 조만간 낚싯대에 손맛이 올 겁니다. 이 인터뷰 나가자마자 그쪽 분들 부지런히 적당한 식당 탐문하는 작업 시작할 겁니다. (웃음)
심 : 식당을 가도 어디를 가야 하느냐? 장사 잘되는 기업형 프랜차이즈 식당은 절대로 가면 안 됩니다. 젊은 30대 부부가 같이 꾸리고 있는 가게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합니다. 치킨집이든, 분식집이든 메뉴 가리지 말고요. 시장 업무 마친 다음 해당 가게로 곧장 직행해 현장의 생생한 모습과 직접 대면해봐야 비로소 제대로 된 민생체험이, 서민경험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일반 서민들의 고충과 애환이 절절하게 다가오지, 혼자 옥탑방에 덩그러니 앉아서 뭘 느끼고 배우겠어요.
공 : 서울시청 시장실에 앉아있는 박원순 시장이 지금쯤 귀가 가려울 것 같습니다. (웃음) 바쁘신 중에도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심 :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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