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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②, “로스쿨은 서민들도 법조인 될 수 있는 제도” - 돈 없는 사람에게 불리한 선발시스템은 로스쿨이 아닌 사법시험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20-12-31 16: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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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신화’는 코리안 드림의 압권이자 백미였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남부럽지 않게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입에 침을 튀기며 떠드는 까닭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몇몇 프로스포츠 분야를 제외하면 고등학교 졸업장만 갖고서도 사회에서 성공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영역은 이제 대한민국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심지어 본인이 고졸 학력으로 떼돈을 번 프로스포츠 선수들도 정작 결혼 상대자는 내로라하는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을 가운데 선택한다. 고졸 신화의 주인공들이 오히려 고졸을 기피하는 웃기고도 슬픈 블랙코미디가 한반도 남쪽에서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펼쳐지는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세칭 로스쿨)은 코리안 드림의 화룡점정으로 통해온 고졸 신화에 종지부를 찍은 원흉으로 단정되어 도입 초부터 격렬한 반감과 비판을 사왔다. 김정욱 변호사는 진정으로 고졸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무대는 사법시험이 아닌 로스쿨 시스템이라는 매우 도발적이고 전복적인 견해를 대담하게 피력하고 있었다.

공희준(이하 공) : 법학전문대학원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안으로 사법시험을 부활해야만 한다는 의견이 아직도 들끓는 상황입니다. 사법시험 부활은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그리고 사법시험 부활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현재의 로스쿨 제도의 미진하고 미흡한 부분들을 보완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법시험 폐지는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결론


김정욱 변호사는 사법시험 폐지가 여야 간 충분한 합의로 이뤄진 일임을 지적했다. (사진=최인호 기자)

김정욱(이하 김) : 저는 사법시험을 다시 실시하려면 사법시험 제도를 부활시킬 필요성이 정말 있는지, 사법시험을 부활시켜서 얻을 수 있는 공익적 가치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사법시험을 부활시키자는 주장이 어떠한 객관성과 합리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엄밀한 검증과 평가가 이에 앞서서 선행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법시험 부활을 외치는 분들이 늘 제일 먼저 펼치는 논리가 사회경제적 계층상승을 도와줄 기회의 사다리와 공정한 경쟁의 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분들은 그러면서 로스쿨을 돈스쿨 또는 음서제로 매도해왔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2015년 연말 무렵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즉 법사위에서 진행된 사법시험 제도의 유지 여부와 관련된 공청회에서 로스쿨 출신 변호사로서 한국법조인협회를 대표해 사시 부활 주장이 왜 타당하지 않은지 자세하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법사위에서 활동하는 현역 여야 국회의원들이 제가 거론한 내용이 처음 듣는 얘기라는 반응을 일제히 보였습니다. 왜냐면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에게는 그전에는 국민들과 여러 언론사들의 이목이 집중된 공간에서 자신들의 의견과 입장을 공개적으로 피력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사위에서는 해당 상임위원회 산하에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그곳에서 도출된 결론에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법시험 존치 논의에는 다양한 조직과 인사들이 참여했습니다. 대한변협 소속의 변호사들을 비롯해 법무부와 교육부 등의 행정기관과 법원 관계자들이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저 또한 자문위원회에 합류해 로스쿨 제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시각을 바로잡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19대 국회 말기에 개시된 이 논의는 20대 국회가 출범한 때쯤까지 대략 반년 동안 계속 이어졌는데, 장기간에 걸쳐 심도 있는 논의를 벌이는 과정에서 사법시험 부활이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됐습니다. 그 결과 사법시험을 존치시킬 필요가 없다는 방향으로 자문위원 자격으로 논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돈 없어도 법학전문대학원 다닐 수 있다

 

공 : 그럼에도 개천에서도 용이 나게 하려면 사법시험 폐지 방침을 철회해야만 한다는 소리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김 : 저는 사법시험이 우리 사회에서 소득이나 자산이 적은 계층에 속하는 분들에게 진실로 유리한 제도인지 진지하게 따져보고 싶습니다. 사법시험은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회구성원들이 준비하기에는 굉장히 힘든 시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시에는 돈이 없는 응시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혜택이 완전히 부재했습니다. 그렇다고 은행에서 사법시험 수험생들에게 대출을 잘해줬냐면 그것 역시 아니었습니다. 대출을 신청하면 직업 없는 무직자로 분류해 번번이 퇴짜를 놓기 일쑤였습니다.

 

공 : 아직 합격도 하지 않은 그야말로 일개 수험생에게 대출을 해주는 건 대출실무를 책임진 은행직원에게는 극히 위험한 선택일 테니까요.

 

김 : 예, 그렇습니다. 경제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사법시험 응시자들은 돈벌이와 시험준비를 동시에 병행해야만 했습니다. 사법시험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시험입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이 도전하기에는 통과가 거의 불가능한 관문이었습니다. 가난한 수험생들은 직접 돈벌이에 나서느라 학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기간이 한없이 길어지면서 인생이 황폐해지는 일이 신림동 고시촌에서 자주 발생했습니다. 반면에 풍부한 재정적 뒷받침을 받을 수 있는 수험생들은 가난한 응시생들과 비교해 훨씬 더 유리한 환경과 여건에서 시험에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로스쿨 제도에는 사법시험과 다르게 경제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습니다. 전체 로스쿨 신입생의 10프로 정도를 저소득층에서 우선적으로 선발하도록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특별전형 형식으로 더 많은 기회를 주도록 설계된 제도가 다름 아닌 로스쿨 제도입니다. 로스쿨 제도는 경제력이 있고 없음에 따르는 유ㆍ불리를 입학 단계에서부터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입학 단계뿐만이 아닙니다. 집안이 어려운 재학생들이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게끔 돕는 지원체계는 입학 이후에도 변함없이 작동합니다. 제가 최근에 읽어본 언론보도에 의하면 1040명의 로스쿨 학생이 전액 장학생으로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전국 전체 로스쿨 정원인 6천 명의 20퍼센트가 학비를 한 푼도 부담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 어떤 학생들이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로스쿨에서 법조인의 꿈을 키우고 있느냐? 차상위계층에 속하는 학생들입니다. 소득구간이 1분위에서 3분위까지에 해당하는 학생들입니다. 돈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학비를 면제해주는 곳이 로스쿨입니다.

 

그렇지만 명목상의 소득과 재산은 많아도 실제적으로는 경제적 여력이 없는 사람들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연령대의 인구집단은 부모님이 돈이 있는 것이지, 본인에게 돈이 많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학생들을 위해서 국가에서는 연이율 2프로대의 학자금을 10년 거치로 대출해주고 있습니다. 대출받은 학자금을 10년 후에는 상환하기 시작해야만 하는데, 한 달에 몇 십만 원만 갚으면 되기에 그때쯤에는 이미 법조인으로 변신해 있을 로스쿨 학생들에게 그리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에는 아무리 돈이 없어도 학비를 전액 지원받으면서 생활비를 낮은 이자의 학자금 대출로 충당한다면 로스쿨 졸업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더욱이 로스쿨 재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신용대출도 받을 수 있고요. 그러한 제반사항을 고려한다면 우리 사회의 경제적 약자들에게는 사법시험이 아닌 로스쿨이 더 나은 제도가 될 수가 있습니다.


로스쿨이 법조계의 스카이 캐슬 무너뜨려

 

김정욱 변호사는 로스쿨이 서울대와 연고대의 법조계 독점에 균열을 낸 점을 강조했다. (사진=최인호 기자)

로스쿨에서는 가정이 부자인 학생이든, 부자가 아닌 학생이든 동일한 과정과 내용의 교육을 공평하게 받습니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사법시험과 견주어 오히려 더 평등지향적 시스템이 로스쿨인 이유입니다.

 

로스쿨 제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에 서민이나 저소득층 자녀들의 법조계 진출이 두드러지게 증가해왔습니다. 예전에 사법시험 제도가 존재하던 시절에는 법조인 가운데 이른바 스카이 출신 비율이 과도하게 높았습니다. 그런데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자리를 잡으며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나오지 않은 신규 법조인의 비율이 기존의 두 배로 확 늘었습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보다 다양한 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법조인이 될 수가 있다는 통계적 증거라 하겠습니다. 법조인을 배출한 학교들의 숫자가 많아진 배경입니다.

 

일례로 어느 학교의 경우에는 지난 30년 동안 한 해에 1~2명의 변호사만 줄곧 나오다가 로스쿨이 등장한 다음에는 연간 3~5명을 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로스쿨이 작게는 소수의 몇몇 학교들이 법조계를 싹쓸이해온 독과점 구조에 균열을 내면서, 크게는 법률가들의 계층적 다양성을 획기적으로 신장시켰음을 구체적 데이터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로스쿨을 겨냥한 부당한 낙인찍기 중 하나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더는 법조인이 될 수 없다는 비난이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길이 로스쿨 탓에 원천봉쇄됐다는 것입니다.

 

사법시험이 대학을 가지 않은 분들을 위한 기회의 사다리 역할을 실질적으로 해온 게 사실일까요? (강조하는 어조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종래의 사법시험 제도에서도 일정 정도 이상의 법학 학점을 취득할 것을 요구했었습니다. 로스쿨이 그러한 학점의 기준을 조금 상향조정해놓은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법시험을 치려고 해도 학점은 필요했습니다.

 

공 : 사법시험이 있던 시절에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은 법학 학점을 어떻게 취득했나요?

 

김 : 방통대에 입학하거나 또는 독학사 과정을 밟거나, 아니면 학점은행을 이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학점 요건을 충족시켰습니다. 로스쿨은 학점 요건을 약간 올려놨을 뿐입니다. 이 부분과 연관해서는 현행 로스쿨 시스템과 과거의 사법시험 체제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점이 가로놓여 있지 않습니다. 기존의 사법시험에서 제가 방금 말씀드린 방식으로 법학 관련 학점을 취득해 변호사가 된 사람이 사시 제도가 폐지되기에 앞서서 10년 동안 딱 3명이었습니다. 10년 간 단 세 명이었어요.

 

공 : 제가 그 중 한 명을 개인적으로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김 : 로스쿨은 3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었습니다. 어느 제도가 더 많은 고졸 신화를 더 자주 낳을 수 있는 제도인지 대답은 자명하게 나온 셈입니다. 제가 아는 지인들 가운데에서도 독학사로 로스쿨에 들어와 변호사가 된 분이 여럿입니다. 저는 로스쿨을 공격하는 세력이 “고졸 출신 변호사가 나올 수 없다”는 허황된 프레임을 창조해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부당하게 탄압하고 핍박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공 :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졸 대통령 신화가 사법시험을 인생역전의 등용문으로 대중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시킨 영향이 아무래도 크지 않을까요? 그때의 잔상이 수많은 국민들의 머릿속에 아직도 뚜렷이 남아 있거든요.

 

김 : 법학 학점 이수 요건에서 로스쿨 제도가 약간 까다로워지기는 했지만 로스쿨 때문에 고졸 신화의 길이 가로막혔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낭설입니다. 결정적으로, 로스쿨은 사법시험과 달리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저당 잡혀야 할 만큼의 장시간의 준비를 강제하지 않습니다. 제 경우에는 로스쿨 입시를 석 달 준비했습니다. 물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대단히 밀도 있게 준비했습니다.


로스쿨 시험을 무턱대고 오랫동안 준비하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로스쿨은 무작정 책상에 오래 앉아만 있다고 해서 성적이 잘 나오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은 기회비용만 무조건 많이 투입해야 능사인 식의 출혈경쟁을 사람들에게 막무가내로 강요하지를 않습니다. (③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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