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포기를 전제한다. 칭기즈칸은 양치기 노릇을 포기했기에 위대한 정복자가 될 수 있었다. 이순신은 문신으로 입신양명하는 꿈을 포기했기에 불세출의 수군 지휘관이 될 수 있었다. 김대중은 사업가의 길을 포기했기에 현대 한국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정치가가 될 수 있었다. 마이클 조던은 야구로의 외도를 포기했기에 미국 프로농구협회 NBA의 우승 트로피를 세 차례 더 들어 올릴 수가 있었다. 방금 차례로 열거된 업적들은 이들 네 사람이 포기를 아는 남자들이었기에 쌓을 수 있는 금자탑이자, 달성할 수 있는 위업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포기를 모르는 개인과 집단은 비참하게 몰락했다. 우크라이나의 밀도 차지하고 싶고, 캅카스의 석유도 손에 넣고 싶었던 히틀러의 과욕이 수십만 명에 달하는 독일군 장병들을 한겨울 스탈린그라드의 차가운 주검들로 만들었다. 미드웨이 제도도 점령하고 싶고, 미 해군의 항공모함들도 격파하고 싶었던 연합함대 수뇌부의 무리한 욕심이 일본제국이 자랑하던 네 척의 막강한 기동부대 소속 항모들을 함선에 탑승했던 수천의 숙련된 승조원들과 함께 북태평양 한가운데의 깊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가라앉혔다.
어디 그뿐이랴? 항공사로도 계속 승승장구하고 싶고, 건설업계에서도 최정상급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싶었던 금호그룹 경영진의 지나친 양적이고 외형적인 팽창 욕구가 매출액 기준으로 우리나라 재계 10위권 안에 들어가던 굴지의 대기업을 사실상 해체로 이끌고 말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이대로는 당연히 가능성이 전무하다. 한동훈이 대선에서 이길 방법은 지금으로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야권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야당 지지층의 표가 이 두 유력 대권주자 사이에서 엇비슷하게 갈리는 게 유일하다. 한동훈 자력으로 당선될 방법은 없는 셈이다. 선택과 집중과는 담을 쌓은 채 포기를 모르는 남자로 고집스레 남아 있는 지금 이대로라면….
오타니 쇼헤이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단일 시즌 50 홈런, 50 도루의 미증유의 대기록을 일궈낸 호타준족의 대명사이다. 그는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는 ‘이도류’로도 유명하다. 오타니의 예를 들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있다면 참으로 근시안적 단견이라 하겠다.
왜냐? 탁월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을 지닌 천하의 오타니조차 두세 가지 종목에서 동시에 운동선수로 활동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타니는 일본에서 최근 들어와 야구 못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농구나 축구를 일찌감치 과감하게 포기했기에 일본과 미국 양국 전부에서 잇달아 초엘리트 야구선수로 꾸준히 맹활약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동훈은 무엇을 포기해야 윤석열 대통령과 동반 침몰로 치닫는 중인 현재의 암울한 정치적 전망에 획기적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한동훈 대표는 포기해야 할 게 남들과 비교해 많다. 이는 여간한 독한 의지와 결기가 아니면 한동훈에게 회생의 기회가 주어지기 힘들다는 뜻이다.
한동훈은 첫째로 윤석열과의 보수 적통 경쟁을 포기해야만 한다.
남한의 보수 세력은 국가의 법통을 중시하지 않는다. 임시정부를 서슴없이 부정한 게 그 생생한 증거다. 저들은 민족의 정통성에도 관심이 없다. 윤석열 정권의 외교 안보 정책을 좌지우지해온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며 그의 정신적 조국이 대한민국이 아님을 스스럼없이 인정했다.
이런 국적 불명의 사대주의 뉴라이트 보수 세력의 맹주 지위를 놓고서 윤석열과 경쟁해 이긴들 한동훈의 수중에 남는 것은 피로스 왕이 거뒀던 상처뿐인 승리에 불과하다. 보수 적통 확보와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은 모순이다.
한동훈은 둘째로 이준석과의 말발 과시 경쟁을 포기해야만 한다.
유창한 언변으로 유명인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현란한 말발에만 의존해 지도자가 될 수는 없다. 이준석이 셀럽에서 리더로의 발전적 도약을 좀처럼 성취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가 말하는 능력에 견주어 듣는 역량이 대단히 취약한 탓에 있다.
한동훈은 이준석보다 더 유명해지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민중으로부터 더 큰 지지와 신뢰를 받기 원하는가? 목표가 후자라면 한동훈은 이준석과의 말발 과시 경쟁을 당장 접어야 마땅하다. 화려한 달변과 믿음직한 리더십은 모순이다.
한동훈은 셋째로 조국과의 강남파 브랜드 경쟁을 포기해야만 한다.
강남은 경제적으로는 흥했으되 정치적으로는 망한 상표이다. 강남은 부를 탐하는 인간들이 거주하는 곳이기는 할지언정 집권을 노리는 인물들이 삶의 터전을 잡을 만한 공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강남 브랜드를 억척스레 부여잡고 있다면 어차피 대통령은 되지 못할 테니 강남에 있는 삶의 근거지나마 유지하자는 패배주의적 발상을 스스로 드러내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약 필자가 한동훈이 수시로 자문하는 컨설턴트 입장이었다면 즉시 타워팰리스를 나와 가족들을 데리고 강북에 소재한 구축 아파트로 이사하라고 조언했을 터다. 서민의 벗이 되는 일과 강남에 사는 짓은 모순이다.
한동훈은 위에서 언급된 쓸데없고 무익한, 어쩌면 자해적이기까지 할 무의미한 경쟁의 장에서 용기 있게 손을 털고 빠져나올 수 있을까?
한동훈 본인 입으로 공언했던 제3자 추천의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 발의를 요리조리 미루고 피하는 강남 8학군스런 얍삽하고 영악한 모습을 고려하면 그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로 조금 더 머물다가, 제도정치권을 인생 이모작 무대로 삼으려 시도했다 무산된 서울 법대 출신의 내로라하는 선배 판검사들의 전철을 따라 조용히 여의도를 떠나 서초동 법조 타운으로 돌아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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