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겸 원내대표는 21대 총선과 22대 총선에서 두 번 연속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남다른 수완과 재주를 과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행사를 보이콧한 상태로 올해 9월 2일에야 느지막이 개원식을 진행한 현재의 제22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재선에 성공한 경우는 용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소속 김예지 의원이 유이하다. 두 사람 모두 비례대표로 재선되는 과정에서 정치권 안팎의 적잖은 빈축을 샀음은 물론이다.
지역구에서 출마하지 않고 전국구로 불린 비례대표로만 연달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던 재주꾼과 수완가들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2002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나만 이과네요”라는 발언으로 유명해진 이상희 전 과학기술처(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4선 가운데 3선을 비례대표로 기록했다.
영원한 비대위원장으로 통하는 김종인 전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은 한 술 더 떠 5선 국회의원의 위업 전부를 비례대표로만 이뤄냈다. 김 전 위원장에 견주면 보수의 텃밭 영남권에서 그나마 한 번은 지역구로 선출된 이상희 전 장관이 성실한 동네 일꾼으로 여겨질 지경이다.
실명으로 소개하는 건 여기에서 멈춰야 할 듯하다. 당사자가 알면 무척이나 불쾌해할 수 있는 까닭에서이다. 고로 이 부분과 관련해선 익명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갈 참이다.
예전에 비례대표로만 3선 고지에 오른 어느 여성 중진 국회의원이 있었다. 문제의 여성 정치인을 둘러싸고 주로 당내에서 여러 가지 설왕설래가 오갔는데, 개중에는 존재감 없는 재선으로 그칠 뻔했던 그가 3선까지 승승장구한 원동력은 당대표의 배우자를 부지런히 수행한 데 있다는 얘기도 보태져 있었다. ‘사모 TO’로 공천을 받았다는 수군거림이었다. 사모는 영부인이 되는 데는 결국은 실패했고 당대표 배우자를 열심히 따라다닌다는 소문이 당내에 자자했던 해당 여성 정치인은 3선 의원에 만족하며 정치를 접어야만 했다.
그러나 사모가 당의 공천 작업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불미스러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해당 정당에서 당대표 배우자의 후견 덕분에 공천을 받았다는 풍문에 휩싸인 정치인은 사모의 수행비서 역할을 기꺼이 자임한 비례대표 3선 중진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대 대선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이 이재명 후보의 아내인 김혜경 여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맡았던 직책인 이른바 「배우자 실장」의 비공식적 원조였던 셈이다.
한국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하는 사회이다. 이와 동시에 남편의 지위와 위세가 아내의 지위와 위세로 고스란히 이어지는 사회다. 남편이 사단장이면 부인도 사단장이고, 남편이 최고경영자면 부인도 최고경영자며, 남편이 대학교수면 부인도 대학교수다. 따라서 남편이 대통령이면 부인도 대통령이고, 남편이 총재 또는 당대표면 부인도 자동으로 총재 혹은 당대표가 된다.
그럼에도 대통령 부인이나 당수 배우자가 이 악물고 관여를 최대한 자제해온 일이 전통적으로 딱 하나 있다. 바로 당의 공천이다. 그들은 자신이 꼭 챙겨줘야만 할 한두 인사 정도를 영부인은 집권당 지도부에, 야당 당수의 배우자는 공천심사 관계자들에게 각각 은밀히 부탁하는 선에서 멈추었다. 누구를 밀어준다는 것은 누구를 떨어뜨린다는 뜻이고, 공천에서 나를 낙천시킨 인간들에 대한 원한은 부모님을 죽인 원수들을 향해 품는 복수심에 필적하는 탓이었다.
공천에 깊숙이 개입ㆍ관여하면 나중에 반드시 탈이 생긴다는 지혜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지도 않는다. 정치인과 배우자들이 각종 선거 현장에서 오랫동안 산전수전 겪으며 자연스럽게 학습ㆍ터득하게 되는 암묵지이다. 배우자가 설치는 바람에 말썽이 빚어진 정당이나 물의가 발생한 선거 캠프를 가보면 십중팔구 공천권자나 후보자가 초짜 정치인이기 마련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이번 총선에서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 부부와의 완전한 절연 없이는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에 도달할 때쯤 밝혀질 전망이다. 당연히 그때쯤이면 지금의 보수 여당의 재집권은 사실상 이미 불가능해진 상황일 터이겠으나.
나는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 소식을 접하고 지극히 윤보선 전 대통령스러운 반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었던지라 별로 충격적이지도,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공천에 지나치게 밀접하게 관여하면 미구에 크게 다친다는 정치권의 보편적 진리를 체화하기에는 윤석열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나 정치 경험과 선거 이력이 너무 적고 짧았다.
단 한 번의 공직선거 출마에서 무려 대통령에 당선된 이들 부부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가득 채우고 있을 저 도저한 자신감과 초긍정적, 즉 원영적 사고 앞에서 영부인이 당의 공천에 무분별하고 부주의하게 관여하고 개입하는 불장난을 저지를 시에 필연적으로 뒤따를 엄청난 위험성과 무시무시한 후과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지 모른다. 게다가 윤 대통령과 김 여사에게 그런 후과와 위험성을 사전에 간곡하게 경고해줄 만큼의 용기와 소신을 갖춘 인물들은 국민의힘 수뇌부와 용산 대통령실 안에서 진즉에 씨가 말랐을 테고.
가수 이상은은 「언젠가는」이란 곡목을 지닌 불후의 발라드 명곡에서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고 처연하게 노래했다. 힘이 있는 날엔 힘이 없어질 날을 모르고, 권력을 휘두를 땐 권력을 휘두르지 못할 때가 보이지 않는 법이다. 권력은 한 아름 있었어도 절제력은 턱없이 모자랐던 윤 대통령 부부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반향 없을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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