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동영상보다 센 김건희의 문자 메시지
“텍스트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는 의외로 역사가 유구하다. 19세기가 저물 무렵 최초의 무성영화가 상영됐을 때도, 20세기 중엽에 이르러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이 차례로 대중화됐을 때도, 2010년대에 접어들어 전 세계적인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 채널이 한국인을 비롯한 인류의 삶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을 때도 글자로 의사를 주고받는 행위는 인간 생활에서 더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않을 것이란 분석과 전망이 대세를 이뤘다.
이러한 전망과 예측은 여타의 분야와 영역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대한민국 현실정치에서는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미완의 명제로 남아 있다. 사람을 찍어내는 수단, 즉 경쟁자를 몰아내고 반대파를 숙청하는 도구로는 변함없이 텍스트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연유에서이다.
일례로,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올해 1월에 여당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던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에게 발송했다는 다섯 통의 문자 메시지는 국민의힘 대표실에 손쉽게 무혈입성할 예상됐던 한동훈의 앞길에 고춧가루를 뿌려도 아주 맵고 독하게 뿌렸다.
길지 않은 문장들로 구성되는 연판장은 특정한 목표를 관철하려는 의도 아래 여러 사람이 집단적으로 서명한 문서를 뜻한다. 일본의 전국시대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 연판장은 주동자가 누구인지 식별되지 않도록 단체로 이름을 올린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사발통문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연판장은 본디 약자들이 강자에게 항거하는 수단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당권을 장악한 주류가 당무에서 소외된 비주류를 핍박하는 용도로 변질하고 말았다.
국민의힘에서는 작년 봄 실시된 당대표 경선에 나경원 의원의 출마를 저지하는 데 연판장이 동원됐다. 연판장 배후에는 용산 대통령실의 입김이 개입됐음은 물론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지난 연말에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신당 창당 추진 작업을 성토하는 내용의 연판장이 이재명 대표에게 충성하는 친명계 초선 국회의원들에 의해 급하게 작성ㆍ회람됐다.
최근에는 한동훈 전 법무장관의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직 사퇴를 촉구하는 연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 맹종하는 친윤 성향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들을 중심으로 탄생할 뻔했다.
어디를 봐도 예쁘고 아름다운 구석이라곤 하나 없는 한국 정치권의 연판장 문화가 내심 부러웠던 것일까?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첫 TV 생방송 토론회에서 어이없는 졸전을 펼치자 대선 후보 교체를 요구하는 연판장이 미국 민주당 일각에서 고려되고 있다는 외신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세계로 뻗어가는 K-연판장 현상에 국민은 씁쓸한 마음으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꽃으로는 때려도 연판장으론 때리지 마라
약자의 정당하고 불가피한 저항 수단이던 연판장이 강자의 기득권을 확대재생산하는 폭력적 도구로 악용되는 한편에서는, 소수의 권력자들이 반드시 제거해야만 할 정적들의 명단을 음습한 밀실에서 적어놓은 살생부가 평범한 시민들의 손으로 완성되고 있었다.
벌써 20년도 훌쩍 넘게 지나간 일이다.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마무리되자마자 이른바 강성 노빠를 스스럼없이 자처하는 몇몇 노사모 회원들이 살생부를 만들어 익명으로 인터넷 공간에 뿌렸다. 자당의 대선 후보를 돕기는커녕 되레 흔들기에 광분한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을 혼쭐내야 한다며 주요 응징 대상이 된 인사들의 성명을 일일이 열거해놓은 글이었다.
서너 개의 살생부들이 돌고 돌아 그 가운데 가장 극렬하고 수위 높은 버전이 필자가 편집장 자격으로 활동하던 인터넷 정치 커뮤니티의 자유게시판에 게재됐다. 당시에는 나도 남부럽지 않은 강성 노무현 지지자였던 터라 문제의 살생부를 삭제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티다 경찰서에 소환돼 조사까지 받고 왔었다. 익명으로 올라온 까닭에 웹사이트의 관리자가 총대를 메고서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살생부의 원저자는 내가 조사를 받고 난 얼마 후 자진해 나타난 걸로 기억된다.
지금 돌이켜보면 살생부를 만들어 올린 일도, 그걸 좋다고 공개적으로 방치한 일도 생각 짧고 어리석은 짓이었다?
왜 생각 짧고 어리석은 짓이었을까? 살생부가 결과적으로 정치개혁에 터럭도 기여하지 못한 탓이었다. 정치인들끼리의 내부 권력투쟁과 밥그릇 싸움에 나를 포함한 젊고 혈기왕성했던 누리꾼들이 결국 무보수 용병 역할을 자원한 셈이었다.
경선에 불복해 자기 당의 대통령 선거 입후보자를 사사건건 발목 잡은 인물들은 온라인상에서의 조리돌림이나 인민재판이 아닌 머잖아 치러질 총선의 예비 단계인 당내 경선 과정에서 충분히 걸러낼 수 있었다. 공당의 민주적 절차를 훼손한 구태 정치꾼들에 대한 최고의 명분 있고 효과적인 제재는 공당의 민주적 절차에 근거해 그들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경쟁에서 탈락시키는 것이었다.
대선 승리의 흥분에 도취한 정치인들과 그들의 열혈 추종자들은 정당의 민주적 절차를 훼손한 자들에게 정당의 민주적 절차를 건너뛰어 복수하는 악수를 두었다. 이러한 조급함과 안일함은 참여정부의 실패와 열린우리당의 몰락을 초래하는 무시할 수 없는 원인으로 종국에는 구실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나름 핑계는 있었다. 우리는 순수했다는 점이었다. 권력의 직접적 사주와 지시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이와는 정반대로, 오늘날의 윤핵관들이 걸핏하면 전가의 보도로 꺼내 드는 연판장은 순수성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정권 수뇌부의 명령과 청부를 받은 흔적이 역력해도 너무나 역력하다. 나경원을 저격했던 1차 연판장이, 한동훈을 정조준한 2차 연판장이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윤석열 정부를 구하려고 집권당 소장파 의원들이 충정과 선의에만 입각해 자발적으로 거사한 일이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노릇이리라.
강자에는 약하고, 약자에는 강한 남한 제도권 정치인들의 비루한 기회주의적 근성은 거의 불치병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이 불치병으로부터는 보수우파의 이념을 표방하는 진영도, 진보좌파의 깃발을 내건 세력도 공통적으로 자유롭지가 않다.
이쯤에서 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한 유승민 전 의원이 다시금 야속하게 느껴진다. 아니, 야속하다 못해 아예 원망스럽다.
좌파 경제학자인 우석훈 박사는 필자가 공저자로 참여한 정치비평서인 「이준석이 나갑니다(부제 : 이준석 전후사의 인식)」에서 30대 청년 이준석 의원이 국민의힘 당대표에 선출된 사건을 드디어 멀쩡한 보수가 출현한 일로 극찬했다. 이준석이 빼어나게 개혁적이거나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그가 우리나라 보수정치권에서는 매우 드물게 비교적 멀쩡한 인간으로 여겨지는지라 적잖은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우석훈 박사가 이와 같은 견해를 아직도 계속 유지하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유승민이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다면 그는 단지 멀쩡하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다수의 국민들에게 희망과 안도감을 선사할 수 있었으리라. 유 전 의원과 당수직을 놓고 경합했을 다른 네 명의 출마자들이 워낙 비정상적 캐릭터로 국민에게 인지돼온 덕분이다.
현재의 한국의 거대 기성 정당들, 무엇보다도 특히나 보수 계열 정당은 당 안의 경쟁자에서 경선에서 이길 생각을 하지 않고 연판장으로 지저분하게 찍어낼 궁리에나 골몰할 만큼 망가져도 심각하게 망가져 있는 상태이다. 유승민은 본인의 경쟁자들에게 선거를 통하여 정정당당히 이기려 해왔지, 연판장을 돌리거나 윤리위를 가동해 그들을 제압하려는 꼼수를 부리지는 않았다.
경선에 승복하지 않은 정치인은 예외 없이 비참하게 망했다. 반면, 살생부와 연판장의 희생양이 된 정치인들의 대부분은 머잖아 건재하게 복귀했다. 내가 이미 20년도 더 전에 경험해봐서 잘 안다. 이러한 자명한 이치를 세 번째 연판장을 물밑에서 준비하고 있을지 모를 용산 대통령실 사람들은 늦기 전에 깨닫기 바란다. 작금의 정부여당 돌아가는 모양새를 감안하면 늦어도 진즉에 늦은 분위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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