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이준석도 없고, 유승민도 없고
오는 7월 23일 화요일 치러질 예정인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전의 대진표가 확정됐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에 나타난 지지율 순서대로 후보자를 소개하면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윤상현 의원 네 사람이 하나뿐인 여당 당수 자리를 놓고서 각축전을 벌이게 되었다. 거취가 주목돼온 유승민 전 의원은 예상대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번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의 관전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한동훈 전 법무장관이 과연 당대표로 무사히 선출될 수 있느냐이다. 두 번째는 한 전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실질적이고 명실상부한 차별화에 과연 성공할 수 있느냐이다.
어대한, 즉 “어차피 당대표는 한동훈”이란 얘기가 호사가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될 정도로 한동훈의 손쉬운 승리가 애당초 전망된 터였다. 그러나 중대 변수가 돌출했다. 한동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반감과 친윤세력의 견제가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점이다.
한 전 장관은 검찰에서 한솥밥을 먹던 시절로부터 이어져온 자신과 윤 대통령의 오랜 인연을 기회가 닿을 적마다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두 사람의 인간적 유대가 현재 한동훈 측에 의해서만 부각된다는 데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 전 장관에 관해 가타부타 말이 없기 때문이다. 작금의 전당대회 국면에서는 일단은 윤석열을 향한 한동훈의 일방적인 짝사랑만 보이는 셈이다.
한동훈에 대한 윤석열의 솔직한 심정이 어떤지는 윤 대통령 주변인들을 통해 대략적이나마 유추해볼 수가 있겠다.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는 한 라디오 방송 시사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한동훈을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로봇에 빗대어 따뜻한 인간미가 풍기지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윤석열 대통령을 과도하다 싶을 만큼 무조건 두둔해온 전여옥 전 의원은 한동훈 전 장관이 10초면 될 말을 30분이나 걸려서 하는 광경을 보니 전당대회에서 3등은 할 것 같다고 노골적으로 야유를 퍼부었다.
친윤석열 이데올로그로 활동해온 신평과 전여옥이 외곽에서 노련하게 입으로 한동훈을 때리고 있다면, 당내의 친윤계는 안에서 조직적으로 한 전 장관을 압박하는 실력 행사에 착수한 형국이다. 한동훈이 부산시 사상구에 소재한 장제원 전 의원의 예전 지역구 당원협의회 사무실을 방문하려다 무산된 일이 대표적 사례다. 장 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을 뜻하는 윤핵관 그룹의 우두머리 역할을 해온 인사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물론이고 이철우 경북지사마저 한 전 장관과의 면담을 사실상 싸늘하게 거부했다. 홍 시장은 윤 대통령의 호감과 신뢰를 얻으려 최근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지사는 정권 최고존엄의 의중에 알아서 코드를 맞추는 인물이다. 한국 보수진영의 전통적 아성인 TK 지역의 두 광역자치단체장 모두가 용산 대통령실과의 암묵적 교감 하에 한동훈을 매정하게 퇴짜놓았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동훈 역시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고 있다. 그가 ‘이조 심판’을 벼르고 있다는 소식은 이제 비밀 아닌 비밀이다. 여기에서의 이조는 야권의 두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혁신당 대표를 가리키지 않는다. 여권의 이철규 의원과 조정훈 의원을 의미한다.
이철규는 윤석열의 복심이고, 조정훈은 요즘 용산 대통령실과 밀접하게 주파수를 맞춰왔다. 한동훈은 이들과 요란하게 격돌하는 방식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간접적으로 도전장을 던진 모양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일극 체제로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권과 대권의 분리 원칙까지도 무너졌다. 야당과 달리 여당은 현행 당헌당규 아래에서는 당대표가 대선으로 직행하기가 불가능하다. 박두한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사람이 자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입후보하려면 아무리 늦어도 내년 9월 즈음에는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한동훈의 치명적이고 운명적인 딜레마가 발생한다. 당대표 경선에서 무난하게 이기려면 김기현 전 대표 같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 납작 엎드려야 한다. 반대로, 차기 대선에서의 승산을 끌어올리려면 이준석 전 대표처럼 윤석열 세력과의 정면대결을 불사해야 한다.
지금의 한동훈은 이와 같은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직면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동훈이 순직한 해병대 채 상병 특검은 찬성하고, 영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특별검사에는 반대하는 이솝 우화 속의 이도 저도 아닌 박쥐스러운 기회주의적 행보를 걷게 된 까닭이다.
한동훈은 ‘강남의 김기현’이 되려는가
한동훈의 여당 당대표 출마 결정이 아직은 성급한 판단이라는 비판이 무성했다. 그럼에도 그가 과감히 출사표를 던질 수 있었던 명분과 배경은 집권당인 국민의힘을 22대 총선에서 궤멸적 참패로 이끈 일차적 책임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윤석열이 A급 전범이었던 데 비해 한동훈은 B급 전범에 지나지 않았다.
선거에는 두 종류의 선거가 있다. 하나는 불법만 아니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반드시 이겨야만 할 선거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설령 지더라도 본인의 확실한 캐릭터와 메시지와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각인시켜야만 하는 선거이다. 국민의힘의 7ㆍ23 전당대회는 본질적으로 어떠한 유형의 선거에 속할까? 당연히 후자에 해당한다. 다음번 대권을 노리는 한동훈이 상처뿐인 승리를 거둘 필요도, 이유도 없는 선거이다.
한동훈은 ‘삼반일친’의 웃지못할 희비극을 연출하는 중이다. 그는 삼일 동안은 반윤으로 행세하며 윤석열 대통령과의 차별화 작업을 열심히 펼친다. 그러다 하루는 돌연 친윤 모드로 변신해 윤 대통령을 쓸데없이 옹호함으로써 앞선 사흘간의 노력이 헛된 공염불이 되고 만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회고록인 「대한민국은 무엇을 축적해왔는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 방송들이 유포하는 무분별한 음모론에 심취해 있다고 주장하자 한동훈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즉각 강력하게 반박했다.
필자도 윤 대통령이 겨우 극우 유튜브 따위에나 휘둘리지는 않는 진중하고 믿음직한 통치자였으면 정말 좋겠다. 그런데 현실에서 돌아가는 분위기는 완전 딴판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와 방향이 편향되고 부정확한 극우 유튜브 방송에서 떠들어대는 허접한 내용대로 치달은 경우가 너무나 빈번한 탓이다.
이 와중에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눈치 없이 어느 극우 유튜브 채널에 패널로 출연하기로 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극단적 성향의 유튜브들에 질색하는 성격이었다면 윤석열 의중에 충실한 황 우여가 하필이면 이 시점에 감히 그곳 초대 손님으로 간 크게 나섰겠는가?
한동훈은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든 안 되든 한동훈이다. 관건은 어떤 한동훈이 되느냐는 데 달렸다. 김기현 전 대표는 국민의힘 당대표에서 물러나자마자 그저 그런 구태 정치인의 한 명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반면, 용산의 힘을 빌리면서까지 국민의힘 당대표로 당선되느니, 차라리 소신 있게 자기 목소리 내며 민심을 대변하다가 경선에서 미역국을 마신다고 하여 한동훈이 썰렁한 아재 개그 식으로 표현한다면 두동훈이나 세동훈으로 위상이 강등되지는 않는다.
한동훈은 윤석열로부터 핍박받는 모습을 보일 때 정치적 자산을 축적했다. 윤 대통령과 어영부영 타협을 꾀할 때 미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확확 날려 먹었다. 권력에 비굴하게 영합해서라도 당대표만 되면 장땡이라는 낡고 칙칙한 구시대적 생각은 나경원과 원희룡의 머릿속에 머물러 있어야지, 73년생 한동훈의 뇌리에서마저 꿈틀거려선 곤란하다. 지금 이 순간 한동훈에게 진정 필요한 건 비루하고 구질구질한 승리가 아닌, 깔끔하고 아름다운 패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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