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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이준석의 한계와 단점은 - 김대중이 숲을 볼 때 이준석은 나무를 본다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4-05-30 21: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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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40대 기수론을 제창하며 제시한 공약들은 나무를 보고 만든 공약보다는 숲을 보고서 만든 공약이었다. 사진은 선거유세 중인 젊은 시절의 김 전 대통령의 모습 (사진 출처 : 민주연구원 홈페이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의 공통분모가 있다. 4수 끝에 꿈을 이뤘다는 점이다. 김 전 대통령은 네 차례 대선에 출마했다. 이 의원은 보궐선거를 포함해 통틀어 네 번에 걸쳐 국회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도전 횟수만 같을 뿐 김대중은 7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 책상 앞에 앉을 수가 있었다. 이준석은 만으로 39세 2개월에 금배지를 달았다. DJ는 역대 최고령으로 대통령에 취임했고, 22대 총선의 당선인 평균 연령이 만으로 평균 56.7살임을 감안하면 이준석은 대단히 이른 나이에 원내에 입성했다.

 

김대중(DJ)은 권력의지가 강한 정치인이었지, 선거기술이 빼어났던 인물로 평가되기는 어렵다. 일례로, 직선제가 부활한 이래 최초로 치러진 대선인 1987년의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DJ가 야심 차게 꺼내든 회심의 승부수일 ‘4자 필승론’은 그를 노태우와 김영삼에 뒤이은 3위 후보로 내려 앉히는 희대의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김대중은 강준만과 황태연 같은, 당시까지는 아직 소장파 학자였던 젊은 책사들이 직간접적으로 제안한 전략전술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연후에야 비로소 대통령직에 당선될 수 있었다.

 

반면, 이준석 의원은 선거기술의 측면에서는 김대중과 견주어 나으면 나았지, 모자라지는 않다. 그는 나름의 정교한 사전 조사와 면밀한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친 다음 수도권인 경기도 남부의 동탄 신도시를 지역구로 골랐다.

 

단적으로, 이준석에게 통쾌하고 극적인 역전승을 안겨준 동탄 을 선거구는 범보수 성향의 영남 태생 유권자가, 선거 막판에는 민주당 계열 정당으로 표를 몰아주곤 하는 호남 출신 유권자보다 더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준석은 이러한 미세한 지점과 요소마저 허투루 놓치지 않았던 셈이다. 생전의 DJ는 이준석이 과시한 정도의 섬세함과 치밀함으로 무장해 선거전에 임하지 못했다. 선거기술자로서의 김대중은 종종 어이없을 만큼 주먹구구식으로 허술하게 일을 처리하기 일쑤였다.

 

출신 배경도 다르고, 활동 시기 또한 판이한 김대중과 이준석을 기왕 비교하기 시작한 김에 조금 더 나아가보자. 만약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준석 의원이 MBC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 유형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민희진 어도어 사장의 기자회견 발언을 잠깐 빌리자면 그야말로 맞다이로 입심 대결과 논리 싸움을 벌인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승리할까? 김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불쾌한 노릇이겠으나 필자는 이준석이 김대중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거라고 감히 확신하는 바이다.

 

왜냐? 이준석은 미국식 ‘논쟁(Debate)’의 무대들을 통해 정치적 근육을 길러왔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김대중은 그에게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강요했던 피눈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의 최전선에서 정치인으로서의 내공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1985년생 이준석에게 정치가 주로 말로 하는 일이라면, 1924년생 김대중에게 정치는 경우에 따라선 심각한 신체적 위험마저 감수하며 목숨 걸고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토론 실력과 논쟁 솜씨에서야 이준석이 김대중을 당연히 압도하지 않겠는가?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은 책략가로서는 장량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장수로서는 한신은 물론이고 경쟁자인 초패왕 항우에게조차 비비기 버거웠다. 그러나 역사의 여신, 즉 당대의 민심은 소싯적에 일개 동네 건달에 불과했던 유방을 선택했다. 까닭은 자명하다. 수백 년간의 전란에 지친 백성들이 요구하는 게 뭐였는지를, 진나라가 무너진 이후의 고대 중국사회의 시대정신이 무엇이었는지를 유방만이 체험 반, 본능 반으로 정확히 아는 데 있었다.

 

전문가는 깊고 좁게 보는 인간이다. 지도자는 멀리 넓게 보는 사람이다. 전문가가 현미경을 들고 다닐 때 지도자는 망원경을 휴대하고 다니는 이유다.

 

선거기술에서 이준석은 장량급이다. 토론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능력에서 그는 대장군 한신이 재림한 듯한 모습이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고 성에 차지를 않는다. 이준석이 미시적으로 파고드는 데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되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일에선 또래의 여느 직업 정치인들과 확실히 차별화된 변별력을 아직은 좀처럼 보여주지 못해온 탓이다.

 

이준석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을 부지런히 비판해왔다. 이준석이 윤석열을 집요하게 공박하는 부분은 대개가 윤석열의 스타일과 연관된 것이었다. 과도한 미일 편중 외교와 지나친 ‘선기업-후서민’ 경제정책 등 윤 정권의 중차대한 국정운영 기조와 관련해서는 이준석은 근본적 문제제기를 시도하지 않았다.

 

이준석은 식물학자로 생각될 지경으로 나무에 집요하게 천착한다. 대신 나무가 뿌리를 박고 있는 산에는 여간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한국이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했다는 게 현재까지 드러난 이준석의 대북관의 전부이다. 체제경쟁에서 패배했다는 북한이 기침을 하면 오히려 남한이 몸살에 걸려 드러눕는 오늘날의 모순적 상황을 이준석은 어떻게 설명할 작정인가?

 

북한을 후진국이라 비난하고 곧바로 입을 다무는 이준석의 제한되고 단선적인 일면적 대북관은 평양 주석궁으로 국군 탱크를 몰고 가야 한다고 왕년에 기염을 토했던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를 비롯한 강경 우파 원로들이 이준석 의원의 장외 멘토를 자임함으로써 가일층 고착될 전망이다.

 

중국에 관한 이준석의 행보는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 행동과 중국산 저가 공산품의 직구를 금지하려던 윤석열 정부의 시책을 맹공한 것 이외에는 없다. 정치인 이준석의 신념과 철학은 미국에 대해선 더더욱 모호하고 빈곤하다. 이준석의 대표 경력이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내로라하는 학력이다. 미국통을 자임하고도 남을 이준석이 작금의 경색된 남북한 관계에 커다란 파장과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한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 대해서는 평소의 다변과 달변이 무색하게 언급량이 적다. 이준석에게 미합중국은 함부로 거론해서는 안 될 성역이자 금기인 걸까?

 

한국은 “경제가 안보이고, 안보가 경제”인 나라다. 이준석이 내놓은 안보 관련 입장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는 지속적인 출산율 저하로 말미암아 부족해진 병역 자원을 채우려면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외쳤다. 수백만 명의 남북한 젊은이들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서 서로 대치하며 귀중한 청춘을 낭비하도록 이끌어온 분단구조의 종식과 냉전체제의 해체는 이준석에게는 아예 관심권 바깥의 사안인 모양이다.

 

김대중이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를 궁극적으로 염두에 두고서 향토예비군 제도 폐지를 역설했다면, 이준석은 자신의 주요한 지지기반일 2030 남성층의 박탈감과 좌절감을 달래고자 여성들도 군복무를 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양상이다. 군대를 의무적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국가를 후세대를 위해 언젠가는 만들고야 말겠다는 원대한 포부와 위대한 이상이 자리할 공간이 이준석의 가슴에는 없는 것일까? 김대중은 이준석과 비슷한 나이 때부터 이미 숲을 먼저 바라봤는데….

 

필자는 이토록 다양하게 열거한 한계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준석을 향한 기대감을 여전히 짙게 품고 있다. 이준석 의원이 지금처럼 거의 매사를 기술적 차원에서 미시적으로만 계속 재단한다면 그에 대한 기대감은 차츰차츰 옅어져 모조리 휘발될 게 뻔하다. 이준석이 동탄에서의 작은 성공에 도취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리지 말고 8천만 한민족의 운명과 16억 동아시아인의 미래를 두루 헤아리는 통 큰 정치인으로 쉬지 않고 성장ㆍ발전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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