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하극상(下剋上)의 사전적 의미는 “계급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 예의나 규율을 무시하고 윗사람에게 도전해 이기는 사건”을 뜻한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단연 유명한 하극상 사태는 국민의정부 시절인 2000년 12월 3일, 여당 총재를 겸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열린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만찬 석상에서 정동영 최고위원이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 후퇴를 주장했던 일이다.
권노갑은 김 대통령(DJ)의 분신 같은 존재였다. 더욱이 그는 DJ를 대신해 공천을 비롯한 집권당의 중요한 당무 전반을 사실상 총괄해 운영해온 터였다. 권노갑을 겨냥한 2선 후퇴 촉구는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 당에서 손을 떼라고 다그치는 것과 마찬가지일 일종의 선상반란 행위로 여겨졌다. 방금 언급한 바대로 그 자리에는 DJ 역시 참석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만찬장에서의 권노갑 2선 퇴진 요구는 천신정 트리오 즉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3인방이 중심이 된 소장파 주도의 정풍운동이 여권에서 촉발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 정풍운동은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출발점인 국민경선 도입으로 이어졌고, 종국에는 새천년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귀결됐다.
권노갑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지금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14년 봄에 동아일보에 구술 형태로 기고한 회고록에 의하면 2선 후퇴를 요구한 이틀 뒤에 정동영(DY)이 그의 집으로 찾아와 정중히 사과했다고 한다. 권 전 고문의 회고록이 나올 무렵에는 권노갑은 정계를 완전히 은퇴한 것과 다름없는 야인 처지였고, DY는 야당 안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이리 채이고 저리 차이는 힘없는 비주류 신세로 내몰린 입장이었다. 필자에게 권 고문의 때늦은 후일담 공개가 허무하고 애처로운 정신승리법처럼 생각된 연유였다.
동교동계의 맏형으로서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을 자임하며 권노갑은 군부독재 치하에서 오랜 세월 감히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핍박과 고초를 직접 겪었다. 그런 권노갑을 경찰 고위 간부 출신에 더해 부유한 지역 유지인 이철규 새누리당 의원과 동일선상에서 견주는 일은 권 전 고문에게 무척이나 불쾌하고 어이없는 상황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이철규 의원의 여당 원내대표 출마를 반대하는 형태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항명한 행동이,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과거에 권노갑 고문의 2선 후퇴를 촉구하는 모양새를 빌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당정분리를 요구했던 일과 어쩔 수 없이 자꾸만 겹쳐 보인다. 두 사건 전부 집권세력 내에서 중차대한 권력 이동(Power Shift)이 진행되고 있음을 공공연히 시사했기 때문이다.
배현진 의원은 두 가지 측면에서 독보적 인물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 긍정적 의미의 독보성이다. 대한민국 공중파 방송사가 내보내는 간판 뉴스 프로그램의 정규 여성 앵커 자리는 시쳇말로 방송계의 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한국 사회 전체를 통틀어 프리마돈나 위상을 점유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배현진 의원은 경기도 안산시의 평범한 자영업자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이른바 스카이로 불리는 소위 메이저 대학 졸업생도 아니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가정적 배경에, 보통에서 조금 나은 정도의 학벌을 지닌 ‘안산의 딸 배현진’이 강남 부잣집 동네에 거주하는 내로라하는 집안 여식들도 쉽게 이루기 어려운 꿈인 공중파 뉴스의 메인 앵커가 된 일은 그야말로 코리안 드림을 실현한 입지전적 스토리라 하겠다.
둘째는 부정적 의미의 독보성이다. 배현진 의원이 방송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과정은 썩 매끄럽지 않은 것으로 평가돼왔다. 그는 MBC 문화방송 노동조합이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를 규탄하며 파업에 돌입했을 때 노조의 투쟁 대오에서 전격 이탈한 데 대한 반대급부로 8시 뉴스데스크 진행자로 발탁됐다는 비판에 아직껏 시달리고 있다. 권력의 줄을 탔다는 취지의 비난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여파로 그는 정든 방송국을 떠나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그는 입당과 거의 동시에 보수의 텃밭인 강남권에서 당원협의회 위원장 자리를 차지했다. 배현진의 노른자위 당협위원장 선임에는 홍준표 대표의 전폭적 후견과 지원이 있었다는 추측과 소문이 파다했다. 배현진이 홍준표의 개인 유튜브 채널 방송인 「TV 홍카콜라」의 진행을 맡았던 경우에서 엿보이듯 양인은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상당 기간 유지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며 배현진은 홍준표의 사람에서 윤석열의 측근으로 시나브로 변신했다. 친윤석열계의 핵심 인사로 맹활약하던 배현진 의원이 당 지도부 회의 개의를 앞두고 먼저 악수를 건네자 용산 대통령실의 당대표 축출 움직임에 분격한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배 의원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는 모습은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교체를 5년 만에 이뤄낸 선거동맹이 급속도로 와해했음을 가리키는 상징적 장면으로 이제까지 남아 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차츰차츰 하락하는 현상과 비례해 배현진은 용산 대통령실과 차츰차츰 거리를 두더니 급기야 올해 22대 국회의원 총선거 국면에서는 본인의 8쪽짜리 책자형 선거공보물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이름은 물론이고 사진까지 아예 빼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배현진은 자신의 대표적 경력의 하나로 제20대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직을 역임했다고 소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제20대 대통령’으로 절묘하게 모자이크 처리한 셈이다.
이와 같은 윤석열 지우기 전략과는 대조적으로, 공보물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배현진 의원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함께 박수를 치면서 다정하게 나란히 앉아 있는 천연색 사진이 커다랗게 실려 있었다. 하필이면 필자가 배 의원 지역구인 송파 을 선거구 유권자라 명확하게 증언할 수 있는 내용이다. (②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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