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을 동반하지 못했던 정권교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야당이 승리하고 여당이 패배하는 총선이 될 것으로 대다수의 정치 전문가들과 여론조사 분석가들이 예측하는 분위기이다. 단지, 집권당이 어느 정도 의석수 차이로 질 것이냐는 데 대한 의견에 약간씩 차이가 있을 뿐이다.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했듯이 선거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관건은 오늘 상대방이 범했던 졸전의 원인이, 내일 나에게 닥칠 패전의 빌미가 되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이래로 등장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평균적 수준과 비교해 엄청나게 무능했거나 특별하게 부패했다고 평가되지는 않는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와 같은 민생경제의 대참사를 아직은 초래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아내인 영부인 김건희 여사와 장모 최은순 씨를 둘러싼 권력형 부패 의혹은 이전의 초대형 비리 사건들과 견주어 액수 측면에서 여전히 소소(?)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시작 2년 만에 레임덕 상태에 빠지기 일보 직전이다. 여기에는 대략 세 가지 요소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다.
첫 번째로, 그는 직언 즉 쓴소리를 지극히 싫어한다. 특히 정권 안에서 제기되는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에 가까운 거부 반응을 일으켜왔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내부총질이나 일삼는 당대표로 규정해 사실상 숙청한 사건은 윤석열의 이러한 속 좁은 성정이 낮은 결과물이었다.
두 번째로, 너무나 손쉽게 대통령이 된 탓에 민심의 무게를 가볍게 생각했다. 윤석열 하면 연관검색어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세 개의 단어일 오만과 불통과 독선은 단 한 차례의 공직선거 출마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놀라운 기적에 은밀히 따라붙은 승자의 저주일지도 모른다. 단 한 번의 공직선거 출마에서 최고의 선출직 공직자, 곧 대통령에 단숨에 도약한 후보자는 윤석열 이전에는 없었거니와 이후에도 없을 테다.
세 번째가 핵심일 터이다. 13대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19대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직선제로 권좌에 오른 역대 대통령들은 그들 나름의 정치개혁을 그들 나름의 동기와 방법으로 추진했다. 이를테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도모한 정치개혁은 새천년민주당 분당에 뒤이은 열린우리당 창당이었다. 심지어 탄핵으로 불명예스럽게 중도 퇴진한 박근혜 전 대통령마저 통합진보당 해산을 밀어붙이는 것으로 박근혜표 정치개혁에 나선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 어떠한 뚜렷하고 구체적인 정치개혁도 가시적으로 시도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매우 이례적이면서도 독보적인 사례에 속한다.
윤석열 정권의 출현은 정권재창출이 아닌 정권교체에 해당하는 경우였다. 따라서 강도 높고 광범위한 정치개혁에 착수하는 게 일반적 상식이었다. 더욱이 그는 극단적 여소여대의 구도에서 대통령에 취임했다. 강렬한 정치개혁의 충동과 욕구를 느껴야 정상이다.
실제로는 딴판이었다. 윤석열은 야당을 상대로는 시행령 통치를 선보이고, 여권 내부와 관련해서는 이준석이 최재형 혁신위로 막 시작에 나서려던 공천개혁 작업을 무산시킨 게 전부였다. 그는 선거법 개정에도 관심이 없었고, 현행 헌법의 개헌에도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는 정치개혁의 일차적 대상이어야 할 인물들의 약진과 승승장구였다. 윤핵관으로 불린 지방의 다선 중진 의원들의 기득권이 강화됐다. 나경원 전 의원을 조리돌림하는 연판장에 서명한 초선 의원들의 기회주의적 행태가 기승을 부렸다. 윤석열 정권은 정치개혁이 동반되지 않는 정권교체가 역사의 시곗바늘을 얼마나 거칠고 빠르게 거꾸로 돌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반면교사 역할을 해내고 말았다.
정치개혁으로 나아가지 못할 정권심판
모든 개혁은 정치개혁으로 출발해 경제개혁으로 완성된다. 윤석열 정권이 표방한 3대 구조 개혁인 노동 개혁, 교육 개혁, 연금 개혁 전부 경제개혁의 중요한 구성 부분들이다.
정치개혁을 건너뛰거나 또는 회피하니 국정과제인 3대 개혁이 제대로 진전될 리 만무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비핵개방 3000’을 비판했을 때 사용한 어법을 필자 임의로 잠시 빌려온다면 윤석열 정부는 정치개혁이라는 1층도 짓지 않은 채 곧바로 2층을, 3층을, 그리고 4층을 올리려고 한 격이었다. 필로티 건물도 알고 보면 1층에 기둥은 세우건만 윤석열 정권은 기둥조차 없는 공중정원을 지으려 한 셈이었다.
윤석열 정권의 때 이른 몰락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중차대한 교훈은 무엇일까? 정치개혁이 없는 정권교체는 조선왕조에서 지루하게 반복되어온 사화와 환국이 금세기에 들어와 모습을 약간 달리해 되풀이될 따름이라는 데 있다.
사회가 벌어져 사림세력이 일제히 멸문지화를 당하든, 환국이 일어나 남인이 쫓겨난 자리에 서인이 들어서든 민중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권이 심판당해 윤석열 정권이 탄생한 다음에도 서민과 중산층의 복리는 별달리 증진된 게 없다. 보수적 특권계급과 진보적 특권계급 사이의 살풍경한 진영싸움만 지겹도록 계속될 뿐이다.
이를테면 윤석열 정권이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를 먼지털이 하듯 탈탈 털은 데 대한 보복으로 야당은 벌써 3개월 넘게 칩거 중인 김건희 역사를 강제로 언박싱(Unboxing) 하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정치개혁 없는 정권교체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실패한 정권교체는 당연히 이전 집권세력의 부활과 소생으로 귀착되기 마련이다. 이재명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의 강세와 조국 대표가 이끄는 조국혁신당의 상승세는 정권교체와 정치개혁을 이산시켰던 윤석열 정권의 실패가 낳은 필연적 낙진이요 부산물이라 하겠다.
정치개혁 없는 정권교체가 실패한 이때 정치개혁 없는 정권심판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윤석열이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와 열정 없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면, 조국과 이재명은 정치개혁을 향한 특별한 노력과 청사진 없이 정권심판에 당장은 성공할 기세이다.
정권은 교체됐는데 정치는 개혁되지 않는 상황은 전면적 민심 이반으로 이어졌다. 정권은 심판을 당했는데 정치는 개혁되지 않는 현실은 유권자들에게 만족감과 효능감을 선사할 수 있을까? 윤석열이 너무 쉽게 정권교체에 성공했듯, 지금 조국과 이재명은 지나칠 정도로 수월하게 정권심판에 성공하고 있다. 쉬운 성공은 모래밭 외에 지은 거대한 성채와 같은 법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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