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 교수
지금 정부와 의사들 사이에 의대(의사) 정원에 대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정부와 일부 지지자들은 고령화에 따라 의료 서비스의 증가가 급속할 것이고 그래서 의사 수를 늘려야 하니 의대 정원을 크게 늘린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의사의 수가 다른 나라들(OECD 국가)에 비해 너무 적다는 근거를 내세우고 있다.
한편 정부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쪽은 인구 감소가 급속 진행 중이고, 지금도 사업이 어려운 병의원이 많고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지금의 필수 의료 회피 문제는 개선될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한다. 그 원인이 의사의 부족이 아니라 수가의 왜곡에 의한 공급 시장의 왜곡이라는 점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 점은 글쓴이도 동의하면서 정부의 가격 통제가 시장 왜곡의 주요 원인이고 정부의 의사 정원 확대와 함께 발표한 다른 정책들이 의사의 공급 시장의 왜곡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페이스북의 글을 올린 바 있다.
왜 의대 정원의 논쟁이 피상적이고 별 의미가 없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인구당 또는 고령화에 따라 적정 의사 수를 우리가 확정할 수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1) 의사 통계의 문제점
그림 1은 2022년 OECD 국가들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의 통계다. 한국이 31개국 중에 29위로 의사 수가 뒤에서 세 번째로 의사 수가 적다. 일견 정부의 주장이 옳을 것처럼 보인다.
우선 의사들이 하는 의료 서비스가 나라마다 많이 다르다. 한국에는 중국과 대만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에 없는 한의사라는 의료 공급자들이 있다. 2020년 기준 면허 한의사 수(사망자 및 행정처분 대상자 제외)는 2만6096명이다. 의사의 수가 10만명이 조금 넘으니 거의 26%의 추가 의료 공급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한의사가 의사들의 일에 대해 얼마나 분담하느냐는 계량이 어려울 것이다. 또 나라마다 간호사, 간호보조사, 응급구조사, 요양사 등 많은 수의 의사가 아닌 의료 인력들과 의사의 역할 분담이 다르다. OECD 국가에서 유일하게 한의사라는 독특한 제도를 갖고 1차 의료 기관이 하는 일들의 상당수를 명확한 구분도 없이 행하는 한의사들이 존재하는 한국의 의사 수 통계는 다른 나라와 비교가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금도 피부과와 성형외과의 일부 치료는 의사 외의 인력들이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 산후조리원과 같은 서비스도 크게는 의료 서비스의 일종이다.
일부는 고령화의 추세에 따라 의료 인력의 공급이 크게 문제가 되어 의사의 공급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계를 보면 우리와 일본의 의사 수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일본은 한의사 제도도 없다.
2019년 기준으로 65세 이상의 인구 비중은 일본이 28.4%, 한국이 14.9%로 일본은 우리의 고령인구의 비중의 두 배이다. 하지만 일본이 우리와 비슷한 의사수를 갖고 고령 인구의 의료 서비스가 우리보다 큰 문제가 없다면 고령화 대책으로 의사수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주장이다.
(2) 의사 면허 소지자가 다 치료하는 의사 아니다.
우리가 의사 수의 통계에서 또 하나 고려해야 하는 것은 면허를 갖고 있는 의사가 다 현직에서 치료를 하는 의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20-40%의 의사들이 은퇴를 하지 않았거나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65세 이하에서 조기 은퇴하는 의사들과 베이비 붐머들이 대거 은퇴하게 됨에 따라 의사의 수가 많이 부족할 것이라는 것이 미국의 걱정이다.
우리나라의 의사들의 실질적인 은퇴 나이와 활동을 하지 않는 의사의 통계는 잘 없지만 2020년 의사 협회의 고령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은퇴 후에도 60% 이상이 일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한다. 특히 외국과 달리 개업의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은퇴 의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3) 의료 수요는 가격 정책과 의료 관련 법제도에 따라 다르다.
적정 의사수가 있는 것처럼 가정하고 다투고 있는 지금의 논쟁이 표피적이고 비논리적인 이유는 의료 수요가 인구 수에만 의존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는 가격 정책과 품질에 좌우하고 규제에 제한을 받는다. 의료 수가가 싸고 자신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수요는 급증한다. 그것이 사회주의 의료의 문제다. 의료를 세금에서 공공 서비스로 제공하는 영국, 캐나다 등이 병원에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 죽은 인원이 많고 서비스의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이유다. 서비스 수혜와 소비자의 비용이 연동되지 않기 때문에 수요는 크게 증가한다. 하지만 정부는 재정적 압박을 받게되고 그래서 의사들의 처우가 미국 등에 비에 매우 낮다. 그 결과 의사의 공급이 크게 제한되고 있고 영국은 이코노미스트 지의 분석에 따르면 연간 25만명이 제때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해 조기에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또한 고령층 (65세 이상)을 위한 연방정부의 의료 보험 Medicare와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 복지 프로그램 Medicaid가 공공 서비스로 존재하고, 미국은 의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 헌법상 기본권으로 되어있어서 수요자의 재정적 능력과 무관하게 의료 서비스를 거부할 수 없다. 그 결과 미국의 평균 의료 비용의 60% 이상이 죽기 6개월 이내에 발생한다. 즉 고칠 수 없는 노환에도 과반 이상의 의료 수요가 발생하고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의 의료 서비스의 문제의 핵심에도 사회주의 의료의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의료 비용(의료 보험비 + 자비 지출)이 의료 수혜자와 크게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이름은 의료 '보험'으로 되어 있으나 사실상 누진 소득세나 재산세로 징수된다. 고소득 층과 기업, 고자산가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높은 의료 보험료를 지불한다. 건강하고 젊은 직장인들과 기업이 저소득층의 의료비를 막대한 비중으로 보조하는 사회주의 의료의 모습을 갖고 있다. 그리고 정부가 의료 수가와 약값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독점 권한을 갖고 있다. 비용의 부담이 적은 대다수의 국민들의 높은 수요와, 수가를 낮게 책정하고 환자를 직접 면담 치료나 진단, 상담을 해야 보상을 받는 의사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져서 OECD에서 일본과 함께 가장 병원을 자주 찾고, 가장 오랫동안 입원하는 아주 예외적인 나라를 만들어 왔다.
이것이 가격 통제에 의한 왜곡 현상이고 수없이 많은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 정부는 사회주의 의료의 비용의 문제를 독점 가격 결정권과 의료 보험료 결정 권한을 갖고 통제해왔고 그것이 지금의 필수 의료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의 문제를 만들고 있다.
의료인의 수와 의료 수요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제도와 가격에 따라 전혀 다르다는 것은 OECD 국가 중에 의사의 수가 가장 많은 호주에서도 엄청난 수의 의사 부족을 걱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의사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2031년까지 10,600명의 일반의의 부족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보고하고 있다 (보고서, The general practice workforce: why the neglect must end, Australia Medical Association).
의사 수가 가장 많다는 호주가 의사 부족 현상을 걱정하는 것처럼, 사실 정보를 검색해보면 인구당 의사 수에 상관없이 의사가 초과 공급되고 있다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모든 나라에서 의사의 부족을 걱정한다. 그런데 그 공급을 늘리지 못하는 것은 결국 누가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의 문제다.
의료 서비스는 고령화에 의해서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의료 서비스는 소득이 늘면 크게 늘어나는 우등재의 속성을 갖는다. 우리가 건강하고 장수하고 싶은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격과 비용 분담의 제도의 차이를 무시하고 의사수를 논의하는 것은 큰 의미도 정책의 방향성도 시사하지 못하는 논쟁이다. 의료의 공급과 수요는 일반 재화와는 다르게 매우 복잡한 것인데 이러한 하나의 통계로 강변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매우 무책임한 짓이다.
(4) 의사의 수요는 치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최고급의 인재들이 모여든다. 대부분은 자영업자(개업의)가 되거나 고소득의 급여를 받으며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의료(건강) 산업은 미국의 경우 제조업이 GDP의 11%인데 비해 의료 건강 산업 (Healthcare Industry)는 2021년 통계에 이하면 17%에 육박하고 매출액은 무려 5590조원 ($4.3 trillion)에 해당한다.
의료를 지원하는 IT 산업의 2024년 이익 추정액은 약 36조원 ($27.9 billion)이다. 미국 의료 소비자들의 1/3 정도가 원격 진료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의료 장비 기술 산업의 이익 추정은 $72.1 billion (94조원), 제약 산업의 이익은 $169.9 billion (221조원)으로 천문학적 수익과 고용을 창출한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은 기초연구로 신약와 치료 기구, 치료법 등을 연구하기도 하고, 새로운 의료 스타트업에 종사한다. 많은 의료 분쟁 때문에 의사들의 일부는 컨설팅 회사, 보험회사, 법무법인에 소속되어 의료 분쟁에 전문 지식을 공유하면서 살고 있다.
일부 의사들은 국민들의 예방 의학적 건강 지식을 전파하고 교육하는 일에 종사한다.
엄청난 고용 창출을 한다. 미국 성인의 14%가 의료 산업에 종사한다. 이런 거대한 의료 산업은 다른 산업에 파급된다. 의료 산업 종사자의 평균 연봉은 전체 평균에 비해 30% 가량 높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의료가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산업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다.
의사 수의 논쟁에서 의료산업 육성이라는 개념이 실종된 채로 진행되는 것은 매우 우매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이 제조업 중심의 수출 주도의 경제성장을 했고 지금도 그 비중이 크지만 앞으로 좋은 일자리를 어디서 만들까에 대한 심각한 고려를 한다면 의사 면허수가 병의원의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 수, 그것도 자영업자인 개인 병원의 공급 부족이냐 과잉이냐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사들이 일할 수 있는 산업과 진료가 아닌 기초연구나 새로운 의료 서비스 모델을 만드는데 한국의 최우수 인재들이 기여할 수 있을 때 포스트 제조업의 한국이 살아갈 방향이라는 점이다.
(5) 의대 정원이 의사 연간 정원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소비자의 입장에서 법률전문대학원(Law School)이나 의대(Medical School)의 정원의 확대를 의심해야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정원의 확대는 자질이 떨어지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들 전문 대학에 입학은 곧바로 의사와 변호사의 면허를 의미한다는 데 있다.
즉 의대를 나오고 의사 시험에 낙방하거나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낙방하는 경우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이는 이들 기관들이 품질관리의 기능이 없다는 뜻이다. 공급이 늘어나면 품질경쟁을 통해 낙오자가 생겨야 시장의 평균 품질이 증가한다. 하지만 이들 특권적 면허제도는 경쟁에 의한 낙오라는 가장 믿을 수 있는 품질 보장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시장이다.
인터넷에 의한 소비자의 평판과 품질 감시가 늘어나곤 하지만 정원 확대가 소비자들에게 바람직하다는 일반 경제 이론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존재한다. 경영전략 이론의 대가인 Michael Porter는 미국 의료 개혁의 방향성에 대한 그의 저서에서 컨설팅이나 법률 시장과 달리, 의료 분야가 서비스의 품질과 가격이 연동되지 않는 동일 (유사) 가격의 시장이기에 품질 경쟁 대신 원가를 누구에게 전가할 것인가 하는 로비 경쟁만 존재한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의사 정원의 적정성을 주장하는 쪽은 기본적으로 계획(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착각에 집착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가 시장 전체의 수요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부는 그러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미제스(Ludwig von Mises)에 의해 '경제 계산의 문제'(ECP, Economic Calculation Problem)로 1920년에 주장되었고, 하이에크(Friedrich Hayek)에 의해 사회의 지식의 문제로 잘 설명된 것이다. 정부나 의사협회가 적정 공급량을 결정하겠다는 것은 구 쏘련의 국가주의적이고 계획경제의 망상일 뿐이다.
<출처>이병태의 자유주의 대한민국/경제지식네트워크(FEN)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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