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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70주년, 한반도 문제를 생각한다 - 남북한의 체제경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3-07-28 22: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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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재평가’를 재평가한다


한반도 문제가 한국화가 아닌 국제화될 때마다 남북한 사이에는 긴장이 고조되었다. 사진은 정전 70주년을 맞이해 6ㆍ25 전쟁에 참전했던 유엔군 노병들에게 인사말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 (출처 : 대통령실 누리집)

6ㆍ25 전쟁의 포성이 멎은 후 만으로 정확히 70년이 지났다. 2023년 7월 27일이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을 정식 명칭으로 하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맺어진 휴전협정문에서 한국군, 곧 대한민국 국군은 협정의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한편에는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군이, 다른 한편에는 조선인민군 즉 북한군과 중국 인민해방군이 이름만 살짝 바꿔 달은 중국 인민지원군이 협정에 조인한 당사자로 명기돼 있다. 북진통일을 주장해온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정전에 반대하며 협정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탓이다.

 

나는 그때 정전협정을 보이콧한 이승만의 선택이 현명했는지 아니면 어리석었는지 이 자리에서 그와 관련된 평가를 구체적으로 시도할 마음이 없다. 맹목적 진영논리로 말미암아 보수와 진보가, 여당과 야당이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처럼 사사건건 적대하고 충돌하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 이승만 정권의 공과에 관해 보편적 결론을 도출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노릇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매우 뼈아픈 대목은 엄존한다. 한국이 정전협정의 주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한반도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북한이 남한을 배제하려는 유용한 핑곗거리로 작용해왔다는 점이다. 이승만 정부의 휴전협정 거부 결정은 북한이 한국을 무대 뒤편으로 밀어내고 미국과의 직거래를 꾀할 적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동원해온 ‘통미봉남’ 논리에 결과적으로 먹잇감을 주어온 셈이다.

 

우리 민족은 남한과 북한을 막론하고 ‘한반도 문제의 한국화’에 주력해왔다. 그 대표적 징표이자 성과물이 1972년 7월 4일 발표된 7ㆍ4 남북공동성명이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원칙을 천명한 해당 성명은 분단 이래 남북한 정부 사이에 최초로 공식합의된 성명으로. 그 후 남북한 간에 합의ㆍ발표된 1991년 12월의 남북기본합의서와 2000년 6월의 6ㆍ15 공동선언, 2007년 10월의 10ㆍ4 남북공동선언과 2018년 4월의 판문점 선언 전부 7ㆍ4 공동성명에 담긴 정신과 이념에 토대를 두었음은 물론이다.

 

남북한의 모골 송연한 데드크로스

 

올해 7월 27일이 유난히 우울했던 이유는 언제 전쟁의 첨화가 재발할지 모를 불안정한 정전체제가 종전협정에 기초한 항구적 평화체제로 전환되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공들여 다져온 한반도 문제의 한국화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위기의식이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번영을 염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휘감은 탓이었다.

 

한반도 문제가 한국화될 때 한반도에는 화해와 해빙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와 반대로 한반도 문제가 국제화될 경우 한반도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른바 전승절 기념행사의 초대 손님 자격으로 방북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에게 각종 무기류를 보여주며 북한판 K-방산 마케팅에 박차를 가했다. 김 위원장이 국제무기상을 부정적으로 지칭하는 ‘죽음의 장사꾼’으로 직접 발 벗고 나선 형국이다. 우크라이나를 희생양으로 삼아 잔인무도한 침략전쟁을 수행 중인 러시아의 푸틴 정권이 북한제 무기의 수입대금을 식량과 원유만으로 결제할까? 북한의 핵심적 국책사업인 핵병기 고도화 작업에 필요한 첨단기술을 무기 수입의 대가로 북한 측에 제공할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

 

한반도 남쪽에서도 무력시위의 경연장이 펼쳐졌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즈음해 북한을 겨냥한 거칠고 날선 발언을 잇달아 쏟아 냈다. 윤 대통령의 대북강경 행보는 부산에 기항한 미국 해군의 전략 핵추진 잠수함 켄터키 함 안팎을 영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둘러본 데서 절정을 이뤘다.

 

한반도가 세계의 화약고로 통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존에 비축된 화약을 멀리 치워버려도 모자랄 판국에 현재는 남북한 스스로의 손으로 더 높이 화약을 쌓고 있다. 한국이 차례차례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찬란한 신화도, 북한이 지향하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의 장밋빛 꿈도 언제 폭발할지 모를 거대한 화약 더미 위에 위태롭게 올려져 있는 백척간두의 정세이다.

 

혹자는 남한이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고 말한다. 그런데 체제경쟁의 종착점이 2020년 기준으로 남한의 출산율이 북한 평균 출산율의 절반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우리가 진정으로 북한을 상대로 냉전에서 이겼다고 자평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패전이 목전에 다다른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독일처럼 젊은 남성 인구가 턱없이 부족해 이제는 급기야 여성 징병제까지 일각에서 공공연히 논의되는 판국이다. 나는 30살 이하의 청년층 숫자에서 남북한의 우열이 역전되는 또 다른 맥락의 ‘데드크로스’의 도래가 머지않았다고 생각하니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 폭염이 시작된 지금 이 순간 돌연 등골이 서늘해진다.

 

정부가 통일부의 규모를 축소할 방침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이명박 정부에서 얘기만 무성했지,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던 통일부 폐지가 부쩍 가시화된 느낌이다. 남북의 공존과 협력을 목표로 구실하지 않는, 대화와 교류를 목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통일부가 과연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있을까? 더욱이 통일부는 한반도 문제의 한국화에 진력해온 유일한 정부 기구이다. 전시작전권이 결핍된 군대를 통솔하는 국방부도, 한미동맹의 유지ㆍ관리에 조직이 보유한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쏟아붓는 외교부도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를 본능적으로 선호하기 마련이다.

 

그 어떠한 개인도 다른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간섭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 어느 집안도 자기 가족의 대소사에 남의 식구가 끼어들어 결정권을 행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는 한국인의 운명과 미래가 한국인의 손에서 멀찌감치 벗어남을 뜻한다. 그 황당하고 부당한 사태를 적잖은 이들이 너무도 쉽사리 당연시하고 있다.

 

그러한 게으르고 무책임한 당연시가 미국의 이득은 될 수 있어도, 중국의 이득은 될 수 있어도, 일본과 러시아와 유럽연합(EU)의 이득은 될 수 있어도, 대한민국 영토로 현행 헌법에 규정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 거주하면서 생명을 이어가고 생계를 영위하는 8천여만 명의 이익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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