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프로듀서 이수만이 떠나보낸 가수 이수만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한국 최고의 연예기획사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해온 SM 엔터테인먼트와 마침내 헤어질 결심을 했다. 이수만이 기존에 보유해온 회사 주식을 또 다른 대형 연예기획사인 하이브 엔터테인먼트에 전량 매각했기 때문이다.
하이브는 7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키워낸 작곡가 방시혁이 창업한 대중문화산업 기업이다. 한류의 아버지가 BTS의 아버지에게 자신의 분신과 같은 회사를 물려준 셈이다. 이번 상속은 피상속인이 상속인으로부터 돈을 오히려 받는 대물림이었다는 점에서 여느 통상적 상속과는 차별화된 아주 특이한 승계였다. 하이브는 이수만이 종전에 갖고 있던 SM 지분을 무려 4,228억 140만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액수의 거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취득했다는 소식이다.
SM 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은 SM 기획이다. 이름에서 능히 짐작할 수 있듯이 이수만의 이름에서 비롯된 회사였다. SM 기획이 첫 번째로 야심 차게 데뷔시킨 가수는 토끼춤의 달인 현진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는 공식적 기록일 뿐이다. 이수만이 최초로 공들여 세상에 내놓은 가수는 바로 이수만 본인이었다. 가수 이수만이 1988년에 선보인 이건우 작사, 홍종화 작곡의 「사랑하고 만 거야」는 프로듀서 이수만이 만만찮은 비용은 당연하고 시쳇말로 영혼까지 갈아 넣어 탄생시킨 노래였다. 한국영화 「지옥의 링」의 삽입곡이기도 한 해당 가요는 실제로 유심히 들어보면 상당히 괜찮은 느낌의 감미롭고 서정적인 발라드곡이다.
그러나 망했다. 망해도 아주 처절하고 철저하게 망했다. 이문세와 이선희, 이승철과 변진섭 등 쟁쟁하고 내로라하는 실력파 명품 가수들이 발라드의 왕좌를 놓고서 치열히 다투던 시기에 상대적으로 가창력이 달리는 이수만이 가인(歌人)으로 낄 자리는 더는 없었던 탓이다. 필자가 방금 언급한 곡이 수록된 10집 음반 「뉴에이지」를 마지막으로 이수만은 가수 생활을 미련 없이 접었다. 가수 생활을 깔끔히 청산한 그는 기획자로서의 새로운 삶, 즉 New Age에 과감히 발을 들여놓았다.
프로듀서로 강제개업을 당한 이준석
프로듀서 이수만은 걸 그룹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소녀시대와 S.E.S.다. H.O.T.부터 엑소까지 보이 그룹으로 명성을 떨쳤다. 솔로 가수 제작자로도 진가를 발휘했다. 다름 아닌 보아이다.
이 천하의 이수만조차 끝내 히트작을 달성하지 못한 영역이 있다. 남자와 여자가 팀의 구성원으로 한솥밥을 먹는 혼성 그룹이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에 이르는 피 끓는 젊은 남녀들을 한 울타리 안에 무탈하고 조화롭게 묶어 빈틈없는 조직력을 꾸준히 유지ㆍ발휘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방증이리라.
한류의 아버지이자 K-POP의 대부로 군림해온 이수만마저 별다른 성과를 창출하지 못한 남녀 혼성 그룹을 현재 기준으로 무난하게 발진시킴으로써 새롭게 각광을 받는 인물이 대한민국 정치권에 출현했다. 남자 셋, 여자 하나로 이뤄진 4인조 혼성 그룹 ‘천아용인’을 집권여당의 3월 8일 전당대회 무대에 전격 데뷔시켜 차트 진입에 성공한, 곧 네 명 전부 예비경선을 통과시킨 신예 프로듀서 이준석이 전 국민의힘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수만과 이준석의 프로듀서 역할은 100퍼센트 순전히 자의로 선택한 보직이 아니었다는 데 공통분모가 있다. 이수만은 가수로서의 한계를 절감한 까닭에, 이준석은 당대표직에서 강제로 숙청된 연유로 기획자로 나섰다.
둘 사이에 뚜렷이 차별화되는 부분도 물론 엄존한다. 이수만은 프로듀서를 시작하며 공연장에서 스스로 가수로서 마이크를 잡을 욕심을 완전히 버렸다. 반면, 이준석은 자기 자신이 무대에 올라 화려한 공연을 펼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측면에서 가수 반, 프로듀서 반 비중으로 겸업해 활동하던 JYP 엔터테인먼트 설립 초기의 박진영과 여러모로 유사하다.
영어단어 ‘Produce’는 “생산한다”는 뜻을 주로 담고 있다. 과거에 딴따라로 천대받던 연예 분야가 대중매체 숫자의 폭발적 증가와 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만인이 선망하는 직종으로 변모하면서 문화상품의 창작과 생산 과정 전반을 주관하는 Producer의 의미 또한 크게 바뀌었다. 생산자(Maker)에서 지도자(Leader)로 그 함의가 확대ㆍ승화되었다. 이수만도, 박진영도, 방시혁도, 심지어 최근 몇 년 동안 불미스러운 사건들에 잇달아 휘말리며 이미지가 치명적으로 실추된 양현석까지 사장(CEO)보다는 프로듀서(Producer)로 호명되길 희망하는 연유이다.
이준석은 정당의 공민권인 당원권이 정지돼 있다. 운동선수의 사례에 빗대자면 모든 공식경기 출장이 금지된 상황이고, 연예인의 처지에 대입하면 일체의 방송 출연이 불허된 형편이다. 한국식 나이로 겨우 39세에 불과한 이준석이 일찌감치 후진 양성에 착수하게 된 불가피한 배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준석에게 내린 징계 조치가 언제 철회될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후에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미숙하고 불안정한 작금의 심리상태를 고려하면 이는 당사자인 윤 대통령마저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사안이다. 경우에 따라선 이준석에 대한 출장금지 명령이 하염없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필자는 이준석 전 대표의 위상과 정체성이 지금은 유명인과 지도자의 중간쯤 되는 위치에 경계인처럼 서 있다고 생각한다.
각종 방송프로그램들에 패널로 등장해 무차별적 말폭탄을 터뜨리는 이준석의 행동은 이를테면 패리스 힐튼처럼 세인의 관심과 시선에 목말라하는 영락없는 셀럽의 행태이다. 천하람과 허은아와 김용태와 이기인을 국민의힘 지도부로 무사히 입성시키려 안간힘을 쓰는 이준석의 모습은 자당의 총선 출마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당선시키고자 부족한 수면시간을 자동차 안에서의 쪽잠으로 메워가며 전국의 수많은 선거유세 현장들을 부지런히 뛰어다니던 야당 총재 시절의 김대중과 김영삼 같은 책임감 투철한 위대한 정치지도자들을 연상시키는 광경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오래 가려면 여럿이 가라”는 아프리카 전통속담이 있다. 이수만도, 이준석도 애초에는 홀로 신나고 자유롭게 질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미국의 케이블방송인 MTV로 대변되는 영상시대를 맞이한 대중문화 패러다임의 급격한 지각변동은 이수만을, 구태 기득권세력의 화신 윤핵관들에게 장악된 윤석열 정권이 거칠게 시동을 건 한국정치의 폭력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역주행 현상은 이준석을 여럿이 함께 가야만 하는 운명으로 각각 밀어 넣었다.
이수만이 현진영을 발굴해 대중음악 프로듀서로 명함을 팠을 무렵은 세는 나이로 서른아홉 살 때였다. 이준석이 천하용인을 결성하면서 정치 프로듀서로 거듭난 시점도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아홉에 들어선 때이다. 이수만이 타의에 의해 프로듀싱에서 손을 떼게 된 것과 같은 해인 2023년에 이준석 역시 타의에 의해서 프로듀싱 작업에 손을 대게 되었다.
프로듀서 데뷔작인 현진영은 이수만에게 성공의 단맛과 실패의 쓴맛을 골고루 안겼다. 첫 프로듀싱 작품인 천하용인은 새내기 기획자 이준석에게 과연 어떠한 결과물을 수확해줄 것인가? 3월 8일이 더더욱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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