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안철수, 나경원보다 더 빨리 눕다
안철수가 무릎을 꿇었다.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안철수 의원이 용산 대통령실 참모들과 윤핵관 정치인들이 합작해 자행한 집단린치가 시작되자마자 사실상 백기투항한 것이다. 보름 가까이 외곽을 돌면서 저항을 이어간 나경원 전 의원과 달리 안철수 의원은 윤석열 일행의 협박과 강압에 단 하루 만에 꼬리를 내렸다. 정치인 안철수의 고질병인 약한 맷집이 그의 발목을 다시금 잡은 셈이다.
안철수의 맷집이 허약한 이유에 관해선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 분석이 제기된 터이다. 수동적 성격,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친화력 부족, 돌발적 외부변수들에 취약하기 마련인 안랩 주가. 여기에 더해 작년 대선 국면에서 벌어진 선거유세 차량에서의 불의의 인명사고는 안철수에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한 사법 리스크로 여전히 부담스럽게 남아 있다.
여당 당대표직을 노리고 출사표를 던졌다가 서류심사 단계에서 중도탈락한 강신업 변호사는 유세차 사고와 관련해 안 의원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해놓은 상태다. 현재의 검찰조직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체제 아래에서 윤석열 정권에 완벽히 장악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안철수로서는 은근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안철수가 일생일대의 결정적 호기를 또다시 놓친 일이 마냥 아쉽기만 하다.
정치인의 리더십은 두 가지 상황에서 검증되고 확보되기 마련이다. 첫째는 사회적 약자들을 헌신적으로 보듬을 때이다. 둘째는 강자의 부당한 횡포에 분연히 항거할 때이다.
한반도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숙명을 안고 있다. 더욱이 휴전선 북쪽에서는 북한 김정은 정권이 핵무력 강화를 저들의 헌법에 명시하면서까지 대한민국의 안보와 존립을 집요하게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강자의 행패에 단호히 맞설 수 있는 결기와 배짱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꿈꾸는 인물이라면 반드시 갖춰야만 할 필수 덕목이다.
윤석열 일행의 폭력적 행태는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 정국에서 대다수 국민들의 인내심의 한계를 완전히 넘어서고 말았다. 수십 명의 초선 국회의원들을 마치 온몸이 흉측한 문신으로 덕지덕지한 조폭 행동대원처럼 동원해 나경원을 겁박한 사태는 대통령 윤석열의 품성과 인격 자체에 대한 민중의 환멸과 혐오감을 한껏 불러일으켰다. 지금부터 40여 전 한국사회를 통째로 꽁꽁 얼어붙게 만든 전두환 신군부의 야만성과 무도함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지금 이곳은 조지 오웰의 유명한 디스토피아 풍자소설 「1984」에 등장하는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가 아니다. ‘개헌’이라는 단어만 입 밖에 꺼내도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흠씬 두들겨 맞은 다음 영장도 없이 감옥에 갇히는 박정희의 유신독재 체제가 횡행하던 1970년대도 아니다.
윤석열 일행은 ‘윤핵관’과 ‘윤안연대’란 특정한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국민의힘 사람들에게 계엄령을 발동하는 시대착오적이다 못해 괴기스럽기까지 한 폭정을 천연덕스럽게 펼치고 있다. 민심과 이른바 윤심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선량한 시민들과 기득권에 찌든 구태 정치인들이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맞부딪히는 구도가 시나브로 형성됐다.
빛과 어둠이 싸우는 순간, 정의와 불의가 대결하는 순간 위대한 정치지도자들은 조금의 망설임과 주저함도 없이 빛의 편에 섰다. 정의의 손을 들어줬다. 김대중이 ‘행동하는 양심’을 역설한 까닭이고, 김영삼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기염을 토한 배경이었다. 그 덕분에 김영삼과 김대중은 차례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직에 선출될 수가 있었다.
윤석열의 어둠이 새벽을 가로막겠다는 만용을 부리자, 불의한 윤핵관들이 현대 민주주의를 정의롭게 지탱시켜주는 본질적 요소인 당내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려고 작당하자 안철수 역시 약간의 머뭇거림조차 없었다. 문제는 ‘원칙 있는 패배’를 추구함으로써 나중에 더 큰 승리를 일궈낸 김대중과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과 달리, 안철수 의원은 원칙 없는 패배의 정반대 길을 가기로 소심하게 작심함으로써 실리도, 명분도 모두 놓치는 치명적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천하람, 윤석열의 ‘긴급조치’에 정면도전하다
윤석열 일행이 윤핵관을 더는 언급하지 말라고, 윤안연대를 더 이상 입에 올리지 말라고 협박하자 안철수는 즉각 여기에 복종했다. 윤핵관이 윤석열 대통령 주위를 에워싼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간신배 무리를 지칭함은, 윤안연대를 통한 후보 단일화가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기에 윤석열이 지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음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상식으로 정착되었다. 안철수는 벌거벗은 임금님 앞에서 벌벌 떨며 “전하, 패셔너블하십니다!”를 가련하게 연발하는 형국이다. 그와 같은 유약하고 순종적인 인사에게 5천만 국민의 미래와 8천만 한민족의 운명을 어떻게 믿고 맡길 수 있겠는가?
안철수와 그의 경선캠프 참모들은 윤석열에게 일단 숙이고 들어가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안철수의 기대와 바람이 무색하게 윤석열은 안철수의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하며 그를 더 거칠고 모질게 밀어붙일 태세다. 떡장수 할머니에게 떡 하나 더 달라고 요구하는 교활하고 배고픈 호랑이처럼.
투자자는 계산하는 인간이다. 지도자는 결단하는 사람이다. 계산하는 사람 주변에는 실리를 좇는 자들이 모여든다. 결단하는 인간 곁으로는 의리를 중시하는 이들이 몰려온다.
안철수는 결단해야만 할 바로 그 순간 계산을 했다. 안철수가 결단은 못하고 계산만 할 줄 아는 성정임을 진즉에 영악하게 간파한 윤석열은 사냥에 나선 맹수가 상처 입은 먹잇감을 더 잔인하고 맹렬하게 물고 늘어지듯 안철수의 마지막 정치적 숨통을 끊으려고 벼를 게다.
급기야 윤석열은 이철규를 내세워 안철수를 겨냥한 종북몰이까지 시도하고 있다. 수천억 원의 부유한 자산가 안철수를 종북세력으로 음해해도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 중에서 문병호 전 의원 한 명만이 윤석열 일행의 비열하고 악의적인 매카시즘적 사상검증 공세에 결연하고 의리 있게 맞장을 뜨고 있다. 오직 문병호 단 한 사람만이. 안철수 경선캠프 구성원들은 다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열심히 눈알만 굴리는 분위기이다. 비겁해도 너무나 비겁한 기회주의적 복지부동이다.
겨울이 깊은 건 역설적으로 봄이 머지않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오병상이 관료적 권위주의에 중독됐다고 점잖게 비판한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심복들에게 30대 젊은 청년 정치인이 당차고 배포 있게 전면전을 선포했다. 국민의힘 대표직에 도전장을 내민 천하람 전남 순천갑 지역 당협위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천하람은 윤석열 정권을 망치고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간신배 윤핵관들을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에서 전부 몰아내겠다고 배포 있게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윤석열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하는 안철수와 다르게, 천하람은 국민들이 듣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새로운 역동적 리더십은 낡은 금기를 깨고 음습한 성역을 타파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법이다. 윤석열 일행은 윤핵관과 윤안연대를 잇달아 금칙어로 지정했다.
그러자 천하람과 그의 동지들은 ‘윤핵관’이라고 아예 큼지막하게 적은 대형 손팻말을 들고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 나타났다. 고구려를 침략한 수양제의 30만 대군을 일거에 궤멸시킨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에 버금갈, 한일병탄의 수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의 만주 하얼빈역 거사에 버금갈 통쾌하고 속 시원한 광경이었다. 국민들의 10년 묵은 체증을 후련하게 뚫어주는 근래에 보기 드문 훌륭하고 경이로운 퍼포먼스였다.
정치인이 권력자가 귀에 착 달라붙는 말을 속삭이면 잠시 흥할 수 있다. 대신에 영원히 망한다. 권력자가 싫어하는, 허나 국민이 목말라 하는 진실과 정의를 외치면 당장은 가시밭길을 걸어도 종국에는 큰길이 눈앞에 활짝 열려 있다. 당장의 가시밭길을 감수하고서 큰길을 선택한 천하람의 건투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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