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미디어는 메시지다.”
캐나다 태생의 미디어 연구가 마셜 매클루언이 생전에 남겼던 이러한 명제가 맥락에 정확히 와 닿는 순간이었다. 임기 2년 차에 접어든 윤석열 대통령이 앞으로 어떠한 방향과 기조로 국정을 운영해나갈지에 관한 메시지가 그의 신년인터뷰가 게재된 매체, 곧 미디어의 제호에 고스란히 반영됐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새해 포부와 계획이 담긴 신년인터뷰는 이른바 ‘대한민국 1등신문’을 자처해온 조선일보에 올라갔다. 1등만 기억하는 약육강식의 살벌한 사회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명분 아래 만들어갈 작정임을 윤 대통령은 조선일보와의 협업을 통해 공공연히 선포한 셈이다.
1등만 기억하는 약육강식의 살벌한 세상에 재빨리 올라타자는 주장을 제일 먼저 제기한 인물은 지금은 고인이 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었다. 이 전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현 삼성전자 회장을 박영수 특검팀 검사 시절의 윤석열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으로 사법처리해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감옥에 보낸 일을 고려하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간의 운명인 듯싶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편집국장과 정치부장을 위시한 조선일보의 간부급 기자들이 대거 출동한 신년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숙청 사태를 계기로 현 정권이 본격적으로 밟기 시작한 우경화 행보를 2023년 계묘년에도 꾸준히 이어갈 방침임을 피력했다. 야당 지지층은 물론이고 중도층 유권자의 민심을 잡는 일까지도 철저히 방기한 채 오로지 보수 성향 집토끼들의 여론만을 의식하는 현재의 갈라치기 작전이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을 가져왔다는 게 윤석열 본인의 판단이자 주변 책사들의 정세인식인 터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변함없이 고집스런 ‘마이 웨이’ 노선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핵관들에 대한 신임을 재확인한 데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내각과 참모진의 일부를 개편할 계획이 있는지에 관한 질문에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장관과 비서들 가운데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은 없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관료들과 참모들을 당장에 지체 없이 바꿔야 한다는 대다수 일반 국민들의 인적 쇄신 여론을 사실상 대놓고 무시ㆍ능멸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10ㆍ29 할로윈 데이 참사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이상민 행안장관의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정치공학적 조언으로 폄하하는 독선과 오만마저 가감 없이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가 새롭게 체득한 유체이탈 화법 기술을 조선일보와의 이번 신년인터뷰에서 현란하게 선보였다. 그는 국민의힘이 기득권 구태 정치인들의 부패하고 부도덕한 이권추구의 장으로 무서운 속도로 퇴행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의도적으로 모르쇠로 일관했다. 윤석열의 새로운 필살기로 평가돼도 전연 과장이 아닐 정신분열적 유체이탈 화법은 윤심도 없고, 윤핵관도 없다는 윤 대통령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답변에서 절정을 이뤘다.
윤석열 대통령의 언급대로 윤심도, 윤핵관도 모두가 존재하지 않는 허깨비일 뿐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열린 만찬 회동에 부부동반 형식으로 일제히 집합시킨 권성동, 윤한홍, 이철규, 장제원 네 사람은 귀신 또는 유령이란 말인가? 윤 대통령과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평소에 천공 스승이나 건진 법사 등의 불건전한 무속인들을 지나치게 가까이하다 보니 이제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구분되지 않는 가공할 신기(神氣) 폭발의 단계에 도달하기라고 했단 말인가?
윤 대통령은 노동개혁, 교육개혁, 연금개혁의 3대 개혁을 최근 들어 빈번히 강조하고 있다. 허나 개혁 중의 개혁이며, 모든 개혁의 출발점인 정치개혁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청사진을 여전히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정치개혁의 시동이 본격적으로 걸릴 경우 그가 애지중지하는 윤핵관 부류의 낡은 지방토호형 정치꾼들이 최우선적 개혁대상으로 떠오를 것이란 걱정과 시름이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정치개혁을 지향하려는 일체의 의욕과 동기를 박탈해간 탓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회심의 카드는 현행 소선거구 제도를 일부 지역에 국한해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자는 방안이었다. 나는 모든 선거제도에는 나름의 장단점이 병존한다고 확신한다. 그건 소선거구제와 중대선거구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확실히 단언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도시에서의 내년 총선 전망에 별로 자신감도, 기대감도 없다는 점을….
윤석열 대통령이 신뢰하고 총애하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은 수도권 지역에서 출마할 계획도, 능력도 없는 지방토호들 일색이다. 이들에게 총선 승패의 열쇠가 달린 수도권 선거에서의 집권여당의 승리를 위한 대책과 해법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일까? 용산 대통령실은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2등까지 당선이 가능한 중대선거구제로의 변경을 제 딴에는 묘수로 궁리해낸 기색이다. 수도권에서는 윤석열 이름으로는 선거운동을 벌이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니 2위 후보도 금배지를 달 수 있도록 비장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얄팍한 꼼수이다. 국민들에게는 1등이 되기를 강요하면서, 정치인들은 2등이 되어도 괜찮다는 양두구육의 극치요, 내로남불의 작렬이라고 하겠다.
강고한 지역주의가 아직도 맹위를 떨치는 지방과는 달리 수도권에서는 젊고 참신한 후보를 출마시키는 개혁공천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선거에서 좋은 결과물을 일궈낼 수 있다. 그런데 실성하지 않고서야 어느 참신하고 개혁적인 후보자가 국민의힘의 공천을 받으려고 전형적인 구시대 정치인인 윤핵관들에게 비굴하게 줄을 서겠는가? 더군다나 태극기부대의 아이돌이 돼버린 윤석열 대통령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선거홍보물에 어떻게 떡하니 실을 수가 있겠는가?
여태껏 역대 대통령들은 최소한 립서비스나마 정치개혁의 의지와 신념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필자가 기억하는 범위 안에서는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이래 정치개혁을 포기한 사상 최초의 대통령이다. 정치개혁이 사라진 자리에는 ‘상민수호’와 ‘핵관사수’의 앙상한 깃발들만이 부끄럽게 나부끼고 있다. 정개포‘ 즉 정치개혁을 포기한 초유의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의 무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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