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박근혜의 고독한 결단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달리 합법적이고 민주적 선거 절차를 통해 집권했다. 더욱이 1987년에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이래 박근혜는 대선에서 과반수 득표에 성공한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서 기록한 51.6퍼센트의 득표율은 결선투표가 채택되지 않은 현행 대통령 선거제도에서는 당분간 깨지지 않을 불멸의 대기록으로 남아 있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그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낙마하는 굴욕을 겪었다. 세간에는 최순실로 더 잘 알려진 최서원 씨에게 국정운영에 불법적으로 관여할 길을 열어준 게 결정타였다. 당시의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원내대표 유승민을 권위주의적인 비민주적 방식으로 무리하게 찍어내는 과정에서 정권의 지지기반을 박근혜 본인 손으로 허물어뜨린 행동 또한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의 국정농단 못잖은 치명적 패착으로 작용했다. 결국 박근혜의 몰락은 역사의 시계를 무모하게 거꾸로 돌리려 시도한 게 근본적 원인이었던 셈이다.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의 청와대 비서실장 기용과 국정교과서 도입 파동은 박근혜 정권의 시대착오적 면모를 도드라지게 부각시켰다.
허나 아무리 탄핵당한 정권이라고 하여도 모든 분야에서 시쳇말로 깽판을 치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두 가지 영역에서는 대단히 합리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이었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대중국 정책이 그것이다. 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5년의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치고 권좌에서 무탈하게 퇴임했다면 미래세대의 등골을 빼먹으면서까지 공무원 연금에 국민들의 세금을 퍼주는 사태에 어느 정도 제동이 걸렸으리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을 모방한 중국의 ‘대한적대시’ 정책이 지금처럼 노골적이고 살벌하게 펼쳐지지도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연금개혁은 워낙 복잡하고 전문적 주제인 터라 필자의 능력 바깥에 자리하고 있음으로 논의를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겠다. 그렇지만 북한이 요 며칠 동안 집계가 어려울 정도로 무수한 숫자의 미사일과 포탄을 심지어 우리의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까지 무차별 발사한 현실을 감안하면 한중 관계의 경색과 난조에는 아쉬움을 표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북한은 자주성을 중시하는 국가이다. 오죽하면 주체사상도 모자라 기상천외한 ‘주체연호’라는 엽기적 역법까지 만들어냈겠는가? 이런 북한을 상대로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현재로서는 전 세계에서 중국이 유일하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다. 공산주의자 마오쩌둥이 국부다.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과 자본주의 체제 한국의 관계가 단연 가까웠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보수 대통령이 청와대에 머문 박근혜 정부 때였다. 문재인 정부는 문 전 대통령 스스로 ‘중국몽’을 입에 올릴 만큼 중국과의 관계가 각별함을 과시해지만, 이는 한국 측의 일방적 짝사랑 성격이 역력했다. 한중 양국은 박근혜와 시진핑이 한국과 중국을 각각 다스릴 때 서로를 동등하게 존중하며 협력했다. 단적으로 시진핑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한국 땅을 끝내 밟지 않았다.
박근혜는 자신이 제창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성공에 중국의 협조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그가 서방국가의 정상 중에서는 홀로 중국 수도 북경에서 진행된 제2차 세계대전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해 천안문 망루에 오른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박근혜의 대중국 외교는 실패했다. 시진핑의 방한과 이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이뤄진 박근혜의 방중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박근혜의 임기 중 두 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해 한반도의 긴장을 한껏 고조시켰다. 여기에 대응해 한국 정부는 경상북도 성주에 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가 배치되는 걸 허락했고, 그러자 중국은 이른바 3불 정책을 실시하며 한국을 겨냥한 전면적 보복조치에 착수했다. 미국의 대북제재에 상응하는 중국의 대한제재였다. 박근혜는 꽉 막힌 한중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발의돼 사상 초유로 가결된 탓이었다.
박근혜 탄핵에 박근혜 정부의 친중 노선에 불만을 품은 미국의 입김이 개입됐다는 음모론이 일각에서 돌았었다. 돌이켜보면 박근혜와 최서원 간의 은밀하고 오래된 개인적 인연을 가장 먼저 특종 형식으로 보도한 매체들은 남한사회에서 친미 성향에서는 남부럽지 않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두 보수 신문사였다.
중국은 북한의 핵무력 증강과 미사일 기술 고도화를 막고자 나름 최선을 다한 흔적이 짙다. 그렇지만 한반도의 위기는 언제나 북한과 미국의 갈등과 대립에서 비롯되었고, 박근혜와 집권기를 같이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미명 하래 북한을 향해 사실상 손을 놓다시피 했다. 작금의 시점에서 반추해보면 북한 핵을 제거하겠다며 박근혜 혼자서 한중 양국을 오가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뛴 모양새였다. 한국에서는 독재자로 비판받는 시진핑은 부인인 팽려원 여사까지 동반해 한국을 방문한 데서 보이듯, 박근혜의 노력에 성의를 다해 화답했다.
윤석열은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국을 중계국 겸 지렛대로 삼는 외교안보 정책을 과감히 밀어붙인 일에는 그가 보수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톡톡히 도움이 되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보 대통령이었던 까닭에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즉 한미 FTA를 체결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실효성 있게 달성하려면, 이와 동시에 윤석열 정부가 북한에 제안한 담대한 구상이 실질적 성과를 거두려면 한미동맹의 강화와 한일관계 정상화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박근혜-시진핑 조합에 필적할 상호 신뢰와 호혜의 정신에 바탕을 둔 중국과의 관계 복원이 필수적이다.
윤석열 정권은 나라 안팎에서 잇따라 불거진 악재와 윤 대통령 본인의 부족하고 미숙한 리더십이 겹치며 무엇을 하든 간에 지지층은 무조건 지지하고, 반대진영은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외통수 구조에 봉착했다. 필자는 이러한 답답한 교착상태일수록 윤석열 대통령이 당장의 정치적 유‧불리의 계산에만 매몰되지 말고, 장기적 국익증진에 필요한 작업들을 뚝심 있게 해나가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 일차적 과제가 박근혜 정부 수준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다시금 개선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중도층의 지지까지 잃고서 보수세력만의 대통령으로 위상과 입지가 축소된 지금이야말로 그러한 과제의 수행에 적극 나서기에 오히려 적기라고 하겠다.
윤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단기적 여론과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해야만 할 일들을 반드시 했던 대통령으로 극찬했다. 구체적 실례가 한미 FTA 타결이다. 윤 대통령은 이제 말이 아닌 실천으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해야 옳다. 전통적 지지층의 결사적 반대를 무릅쓰고 노무현이 미국과의 자유무역 협정을 완성시켰듯, 윤석열이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번영의 불가결의 전제조건인 한중관계의 완전 복구를 이룩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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