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파 검사 윤석열의 공정과 상식은 어디로 갔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번째로 맞이한 8ㆍ15 광복절 경축사를 발표했다. 지지율 급락에 더하여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권부의 심장부에 결사항전의 선전포고를 감행한 엄중한 상황인 터라 일흔일곱 번째 광복절이자 보수진영의 관점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74주년인 어제, 윤 대통령이 과연 나라 안팎에 무슨 메시지를 던질지 국민들이 예의주시하는 게 당연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했다. 허나 때로는 어떠한 수종이 숲에서 몇 그루가 자라고 있는지 면밀하게 살펴봄으로써 삼림의 전반적 현황과 건강상태를 파악할 수가 있다. 이를테면 침엽수가 단 한 그루도 발견되지 않았다면 해당 삼림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지구온난화 현상의 직격탄을 맞았음을 뜻한다.
그래서 필자는 길면 길었지 짧다고는 평가할 수 없을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에서 전혀 거론되지 않은 단어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검색해봤다. 대통령의 연설문에서 특정 용어와 표현의 유무를 확인하면 정권이 향후 어떤 방향과 기조로 국정을 운영해나갈지 그 전반적 추이와 진로를 비교적 정확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충격과 공포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줄기차게 누누이 강조해온 ‘공정’과 ‘상식’이 올해 2022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홀연히 사라진 탓이었다.
기실 윤석열 정부가 지금껏 국민들에게 보여준 모습은 공정과는 거리가 매우 멀었다. 김건희 여사가 대표이사로 오랫동안 재직해온 회사인 코바나 컨텐츠의 후원업체가 한남동에 마련 중인 대통령 관저의 인테리어 공사를 수주했다. 이준석 대표로부터 장제원 의원, 이철규 의원과 나란히 윤핵관 3인방의 한 명으로 지목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지역구 지인의 아들이 용산 대통령실의 행정관으로 알음알음으로 취직한 게 드러났다.
상식적이지도 않았다. 만취운전 전력이 있는 하자투성이 인물을 다른 부처도 아닌 교육부 장관에 기어이 임명했다. 현직 대통령이 세 번의 중요한 선거를 승리로 이끈 집권여당의 당대표를 텔리그램 메신저로 지질하게 뒷담화하는 광경은 몰상식의 극치를 달렸다.
‘공정’과 ‘상식’을 대통령의 연설문에 담는 게 집권세력 입장에서는 솔직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런데 대통령 연설문은 ‘자유’란 어휘로 도배질되다시피 했다. 더욱이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잡음과 논란들이 대통령실에서는 금기와 성역으로 통할 정도로 윤석열 정권이 내부 구성원들 간의 표현의 자유를 악착같이 금압해온 점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이 어딘가 양심에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여태껏 윤석열 정권의 존재의 이유와도 같아온 공정과 상식의 개념을 통째로 폐기처분한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만 읽는다면 앞으로 우리는 공정이고 상식이고 전부 깡그리고 무시하고 ‘마이 웨이’ 하겠다는 지독한 오만과 독선이, 대책 없는 일방주의와 선민주의가 윤석열 정권이 처음 치르는 광복절 국경일 경축식 대통령 기념사에는 노골적으로 반영돼 있었다.
공정과 상식을 내다버렸으니 ‘정의’와 ‘평등’처럼 진보적 지향과 좌파적 느낌을 주는 단어는 아예 설자리조차 없었을 게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무수한 민간인들을 살상하고 집권한 전두한 정권조차 집권당 당명을 ‘민주정의당’으로 작명했었다. 우리는 그런 거추장스런 수식어는 필요치 않으니 여론 같은 것에는 개의치 않고 돌격 앞으로 하겠다는 공공연한 의사 표시인가?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여당에 “돌격 앞으로!”를 명령한 다음 제일 먼저 무찌른 적군이 국민의힘의 변화와 혁신을 나름 꾸준하게 추구해온 젊은 당대표였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치를 신줏단지처럼 신봉해왔다. 법치의 근간은 헌법이고, ‘평등’은 제헌헌법 시기부터 우리나라 헌법에 확고부동한 필수요소로 명문화된 양도할 수도 없고, 훼손될 수도 없는 가치이자 목표였다. 이 평등이라는 추상명사도 윤 대통령은 그의 장황한 광복절 경축사에서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게 생략했다. 그는 “모든 인민은 평등하다, 단, 특수부 검사는 보다 평등하다”는 소설 「동물농장」식의 특권적 사고를 남몰래 하고 있는 것일까?
평등과 정의도 삭제되고, 상식과 공정도 거세된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필자에게 차라리 계엄사령관의 무시무시한 협박조의 계엄포고문처럼 들렸다.
틀튜브 보는 엽기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민중을 상대로만 권위주의적 냄새를 물씬 풍긴 게 아니었다. 그의 연설에서는 국민들이 현 정권이 출범할 때부터 간절하고 강력하게 요구해온 ‘협치’도, ‘상생’도, ‘공존’도 등장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를 겨냥해 과도하고 쓸데없는 발목잡기를 해온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공존과 상생과 협치를 외면해선 안 된다. 야당은 미워하되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까지 증오해서는 안 되는 연유에서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의 압권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철저한 폄하와 냉대였다. 그의 연설문에는 ‘독재’라는 단어가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국민들이 장기간에 걸쳐 치열하고 처절하게 전개한 피와 땀과 눈물의 투쟁사를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으려다 보니 수십 년간 자행되어온 독재의 부끄러운 역사마저 그냥 없었던 것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그는 면면히 이어지며 엄연히 실재했던 민주화운동의 험난한 과정을 ‘제도적 민주주의의 구축’이라는 지극히 기능주의적 문구로 살짝 바꿔치기했다. 윤석열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등본 발급받듯이 손쉽게 취득한 근본 없는 민주주의로 그 의의와 위상을 확 끌어내린 셈이다.
독재의 오욕은 깔끔하게 포맷되고, 민주화운동의 성과는 석연치 않게 행방불명된 이와 같은 근본 없는 정체불명의 광복절 경축사가 이 문명개화한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언죽번죽 출현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현재의 용산 대통령실이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에게 철저히 장악된 데 있다. 당장 대통령실에서 대통령의 눈과 귀 역할을 수행하는 국정상황실장부터가 뉴라이트 전국연합 정책실장 출신의 인물이다.
이명박 정권은 뉴라이트가 창출하고 유지한 정치권력이었다. 권성동과 장제원 의원은 물론이고, 며칠 전 수도권 지역에 유례없는 집중호우가 쏟아져 곳곳에 끔찍한 물난리가 난 당일, ‘저녁이 있는 삶’을 찾아 정시퇴근을 고집한 대통령의 부적절한 처신을 무리하게 옹호했다가 민심의 지탄을 받은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 수석비서관 역시 죄다 MB맨들이다.
뉴라이트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달아 법의 심판대에 서며 철퇴를 맞았다. 이준석 대표는 뉴라이트 세력을 위시한 시대착오적 강성 극우집단과의 헤어질 결심을 과감히 실행에 옮김으로써 국민의힘을 극적으로 기사회생시켰다. 여권 내에서의 뉴라이트의 발호와 득세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던 이준석이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교묘하고 기습적으로 숙청되면서 뉴라이트 분자들에게 “아니오!”라고 분연히 대꾸할 수 있는 사람은 현 집권세력 안에서 완전히 멸종ㆍ근절되었다.
‘틀튜브 보는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의 본원적인 정치사회적 정체성을 한마디로 요약ㆍ규정하면 이렇다. 윤 대통령이 청년세대로부터 ‘틀튜브’로 조롱ㆍ비판받는 극우 유튜브 저질 상업방송을 즐겨 본다는 것은 국민들 사이에 이제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대통령이 틀튜브에 중독된 틈을 타 용산 대통령실은 낡고 부패한 뉴라이트 무리의 놀이터이자 집합소가 돼가고 있는 분위기이다. 빛이 돌아온 날, 곧 광복절이라고 하는데 세상은 칠흑처럼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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