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최상의 취임사는 짧은 취임사
윤석열 대통령은 동종교배의 유혹을 극복해야 성공할 수 있다. (사진출처 : 미국의 소리 한국판 누리집)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오늘 5월 10일 화요일 오전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치러진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서 단연 긍정적이고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취임사가 아주 짧았다는 점이다.
역대 대통령 취임사를 통틀어 화려한 말의 성찬을 이루기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연설이 단연 최고였다. 그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요란하게 약속하며 인민들의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허나 퇴임하는 문재인 정부의 국시가 ‘내로남불’이 아니었을지 의심될 정도로 더불어민주당 정권 5년은 이제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이권공동체로 완전히 전락한 남조선사회의 운동권들을 위한 운동권들에 의한 운동권들의 특권과 반칙으로 시종일관 점철됐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국민들의 기대심만 쓸데없이 허황되게 자극하지 않았다면 오늘 윤석열 대통령이 있었던 자리에는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위정자의 말이 길어지면 이걸 듣는 일반 국민의 기대사항도 그와 정비례해 길어지기 마련이다. 대통령 취임사에 본래 담으려 기획한 의도와 취지가 뭐였던 간에 윤석열은 새로 출범한 정부를 향한 민중의 기대심리를 결과적으로 확 낮추는 데 일단은 성공한 셈이다.
올해 대선의 특징은 자신을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닌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포장한 정치인들이 여론조사에서 1, 2, 3등을 차레로 차지했다는 거였다.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 후보도, 박빙의 차이로 분루를 삼킨 이재명 후보도, 투표일 며칠 전 야권후보 단일화를 명분으로 후보직을 전격 사퇴한 안철수 후보도 본인의 장점과 경쟁력을 일을 잘한다는 대목에서 구했다.
일 잘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중요한 공통분모가 있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빠른 집행에 도움이 된다는 구실로 자기와 비슷한 성향과 배경을 지닌 인사들로 주변을 메운다는 것이다. 아니, 이건 일을 잘하든 못하든 관계없이 거의 모든 권력자들이 공유하는 성질이기도 하다.
그러한 연유로 박정희는 군인 출신 인사들을 총애했고, 문재인은 운동권 경력 인물들을 선호했다. 이재명이 집권했다면 그는 모교인 중앙대 동문들을 데려다가 권부의 요직들에 대거 포진시켰으리라. 고독한 마라토너를 연상시키듯 모든 주요한 일들을 심지어 가까운 핵심 측근들과도 상의하지 않은 채 혼자 결단하는 안철수만이 지극히 특이한 범주에 속한다.
젊은이들만의 선거캠프, 당선무효로 가는 지름길
참신하고 톡톡 취는 선거운동을 기획하고 전개한다면서 선거사무소 운동원들을 젊은 청년들로만 충원하면 과연 선거에서 확실한 압승을 거둘 수 있을까? 때때로 압승을 거둘 수는 있다. 그 대신 나중에 선거법 위반 혐의로 어렵게 쟁취한 선출직을 홀라당 날려먹을 수 있다. 청년들 사이에 노련한 이른바 구태들이 적당한 비율로 섞여 있어야 하는 이유다. 구태들은 선관위에서 나눠주는 선거법 관련 책자를 구태여 들춰보지 않아도 어떤 것이 합법적 선거운동 방식이고, 어느 게 불법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 단박에 본능적으로 구분할 수가 있다.
시야를 확장하면 북한은 왜 지금처럼 못 먹고 못살게 됐을까? 김일성 주석부터 시작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이르는 3대에 걸쳐 계속 그악스럽게 고집해온 ‘우리 민족끼리’라는 강박적 순혈주의가 북한 체제의 정상적 발전을 끈질기게 가로막아온 탓이다. 가문의 혈통적 순수성을 보존한다면서 근친혼을 거듭하다가 결국은 이런저런 유형의 유전병을 자초한 합스부르크 왕조도 본질적으로는 북한과 유사한 사례이리라.
가장 최신 교훈은 문재인 정부가 제공한다. 평생 제대로 된 회사생활 한번 해보지 않은 시민단체 인사들끼리 바글바글 모여앉아 경제 규모가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팎을 왔다 갔다 하는 국가의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했으니 수많은 서민들 민생이 도탄에 빠지지 않으려 않을 수가 없었다. 문재인 정권을 만든 주역도 참여연대였지만, 문재인 정권을 망친 주범도 참여연대였다.
윤석열 정부는 이와 같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경험적 예증들에서 여전히 아무런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기색이다. 필자는 윤석열이 대통령 비서실에 검찰청 밖 세계에는 나간 기억이 드물 검사들과 검찰 직원들을 꾸역꾸역 연달아 채워 넣는 광경에서 으스스한 공포감이 엄습한다.
검찰청은 피의자 혹은 참고인에게 수사나 조사 형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곳이다. 반면, 대통령 비서실은 각계각층 인민대중으로부터 쉬지 않고 올라오는 온갖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충실하게 준비해야만 하는 기관이다. 건전지의 양극과 음극을 바꿔 끼면 기계의 전원이 켜지지 않는다. 작금의 윤석열 대통령의 용인술이 바로 그러한 모습을 닮았다.
인재를 널리 폭넓게 구하는 것은 조직 내부에서 활발한 토론과 의견 교환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예로 든 선거사무소 경우처럼 칙칙한 구태들은 일절 필요 없다며 젊은 사람들만 모아놓으면 법원에서 당선무효의 판결 받으려고 안달하는 짓과 진배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빠릿빠릿한 검사들 위주로 대통령 비서실을 꾸리면 국정이 원활하게 운영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확신하는 모양이다. 이는 마땅히 브레이크가 있어야 할 자리에 가속페달 한 개 추가로 설치하면 자동차가 더욱 속도감 있게 질주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근시안적 발상일 따름이다. 모든 과속운전자들에게는 다 계획이 있다. 단, 교통사고가 발생할 때까지는.
주류들과 차별화된 이질적 소수파의 존재는 신선한 시각과 다채로운 대안을 선물해주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다. 창의적 발상과 자유로운 발언권이 보장된 소수파는 방화벽의 용도 또한 겸한다. 중대한 의사결정을 책임진 유력 집단을 그 얼굴이 그 얼굴인 동질적 부류 일색으로 전부 도배하는 행동은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사용한 연환계 전법을 방불하게 하는 무모하고 자멸적인 선택이다. 수전에 취약한 위나라 100만 대군에게 연환계도 나름 괜찮은 방책이었다. 제갈량과 주유가 지휘하는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이 화공만 가해오지 않았다면….
신임 윤석열 대통령은 거대 야당에 맞서는 데에는 그가 오랫동안 믿고 의지해온 베테랑 검사들을 총동원해 연환계 진용을 짜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한 듯싶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에는 김남국 의원처럼 이모씨와 이모님을 식별하지 못하는 함량미달의 국회의원도 있지만, 정국의 흐름을 일거에 반전시킬 수 있는 회심의 승부수를 띄울 약삭빠른 책사들도 아직까진 즐비하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을 밀어붙였다고 해서 갈데없는 검사들을 대통령 비서실로 줄줄이 불러들여선 곤란하다. 정권 말아먹기에 딱 좋은 희대의 패착이자 자충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윤석열 대통령은 그가 용산의 새 대통령 집무실로 여기저기에서 긁어모은 검사들에게 빨리 서초동 법조타운에 가서 변호사 개업하라고 너무 늦기 전에 진지하게 충고해주시기 바란다. 소속 정당이 5년 만에 무기력하게 정권 내줬다는 사실에 빈정이 상한 나머지 새로운 정부를 상대로 끊임없이 몽니와 심술을 부리는 옹졸하고 속 좁은 전직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하나만으로도 이미 차고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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