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이준석을 위한 정당은 없다
‘계승’은 일반적으로 이 세상에 더는 생존하지 않는 고인의 업적과 유지를 이어받는 행위를 뜻한다. 멀쩡히 두 눈 뜨고서 건강하게 살아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계승하라는 얘기를 접하면 이준석 본인은 물론이고 그의 열혈 지지자들은 자다가 난데없이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며 뜨악한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준석 정신’을 계승하자는 대단히 도발적 주장을 들고 나온 동기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정세분석에 기초를 두고 있다. 현역 정치인으로서의 이준석의 생명은 사실상 끝났다는 판단이 바로 그것이다.
이준석은 조수진 최고위원의 볼썽사나운 항명 사태에 격분해 당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맡아온 모든 직책을 전부 내던졌다. 그는 형식적으로 당대표 지위는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크고 작은 당무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더 이상은 실제적 영향력과 발언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
선대위에서 완전히 손을 뗀 다음의 이준석의 행보는 직업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지속할 의도와 생각이 터럭만큼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결코 보여주지 않았을 모습과 발언들로 점철돼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금의 이준석은 마음을 비운 듯하다. 그가 선대위에 복귀하건 복귀하지 않건,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이 이기건 야당이 승리하건 여의도로 표상되는 제도권 정치에서 이준석이 의미 있고 비중 있게 발붙일 공간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꼰대들이 씨줄을 놓고 구태들이 날실을 얹은 기성 질서에 발칙하게 도전하는 꽤씸죄를 지었다가 이단아로 낙인찍혀 정치권에서 파문당한 이준석은 방송 프로그램 진행 등의 이종 분야로 아예 전직해 이름값을 이어가거나, 혹은 그의 사회생활의 최초 출발지였던 스타트업 기업인으로 복직해 왕성한 활동을 계속할 개연성이 높다.
허나 기존 정치인들에게 이해도, 용납도 되지 않는 돈키호테적인 파격적 발상과 돌출적 행각을 수시로 일삼은 이준석을 진보좌파든 보수우파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적극적으로는 찾지 않을 테고, 그의 추종자들이 오롯이 자기들의 힘만으로 만만찮은 당세를 과시하는 신당을 성공적으로 창당해 그를 당수로 옹립한 후 선거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는 한에는 정치인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된 시점을 전후해 펼쳤던 종횡무진의 맹활약상을 우리나라 인민대중은 다시는 구경하기가 힘들 것이다.
이준석은 현재는 당의 지방선거 공천 작업을 주도적으로 관리해나가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순전히 장밋빛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이란 것은 당사자인 이준석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세대연합은 이준석의 위대한 유산
살아 있는 자연인 이준석은 남들에게 물려줄 만한 변변찮은 유산을 아직은 쌓지 못했다. 반면, 당대표가 대선기간에 파업에 돌입하는 전무후무할 충격적 사건을 벌이며 자신의 정치생명을 스스로의 손으로 끊는 모질고 극단적 선택을 감행한 ‘젊은 전직 정치인’ 이준석은 누군가 반드시 승계해야만 할 귀중하고 위대한 성과물을 창조하고 개척해놓았다. 세대연합을 통한 정치개혁의 길과 사회변화의 가능성이다.
21세기 남한사회는 세대가 계급이 되는 최악의 세계적인 기현상을 빚어냈다. 고용의 안정성과 높은 임금을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격으로 두루 만끽하는 대기업 정규직과 공공부문 종사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1960년대생 586 세대와 1970년대생 서태지 세대가 부유한 기득권층을 형성하고서 국가를 지배하는 부르주아 계급으로 군림하는 중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노인세대와 괜찮은 일자리를 가질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한 청년세대는 수탈받고 착취당하는 불행한 피지배 프롤레타리아 계급 신세에 놓였다.
수구기득권 세력의 강고한 아성을 뚫자면 폭정과 억압의 희생자인 피지배계급의 연대와 결속이 필수다. 2021년 4월의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프롤레타리아 세대가 부르주아 세대의 부패와 탐욕을 제대로 응징한 신나고 통쾌한 반란이었다. 이 혁명적 만조기의 선봉에 선 주동자가 다름 아닌 이준석이었다.
이준석이 공들여 구축한 청년세대와 노년세대의 통일전선은 이른바 윤핵관들의 사악한 충동질과 달콤한 아첨에 포획당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시대착오적인 지역연합 전략으로 되돌아가면서 전면적으로 와해될 위기에 직면했다. 윤석열과의 갈등에서 촉발된 이준석의 급작스러운 몰락과 때 이른 퇴장은 세대연합을 지탱시켜온 중심적 기둥이 무너지는 일과 진배가 없었다.
문재인 정권 집권 5년은 586 세대와 서태지 세대에게는 단군 이래 최고의 번영과 돈잔치를 선사했다. 반대로, 다른 세대에게는 몸서리쳐지는 지옥의 공포와 고통을 안겼다. 프롤레타리아 세대들에게 잔인하게 강요되어온 끔찍한 지옥의 고통과 공포를 명징하고 확실하게 종식시킬 세대연합의 노선과 가치가 이대로 허망하게 유실된다면 남한은 북한만큼이나 희망도, 출구도 없는 음울하고 을씨년스런 동토의 땅으로 전락할 게 분명하다.
안철수는 이준석과는 견원지간의 앙숙관계로 유명하다. 이준석는 틈날 때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치졸하게 조롱하고 능멸했다. 안철수는 이준석을 무익하고 쓸모없는 잉여인간으로 취급하는 무시전략으로 이준석의 집요한 공격과 비난에 대처ㆍ응수해왔다.
그런데 안철수와 이준석은 두 가지 결정적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기득권 586 세대와 철밥통 서태지 세대의 지독한 비토와 철저한 견제에 시달려왔다는 점이다. 둘째는 세대연합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눈을 뜬 몇 안 되는 선각자적 정치인이었다는 점이다.
이준석의 정치생명이 한계지점에 다다른 지금, 안철수는 이준석과의 해묵은 불화와 오랜 감정적 앙금을 잊어야 한다. 대신에 안철수는 이준석이 미처 이루지 못하고 미완의 과제로 남긴 세대연합의 꿈을 한국정치에서 완벽하게 실현시켜 서태지 세대와 586 세대의 거대한 기득권의 벽에 큼지막한 균열을 내야만 한다. 이 균열이 안철수가 윤석열과 이재명의 식상하고 짜증나는 양강 구도를 깰 수 있는 획기적인 돌파구 역할을 수행해줄 연유에서이다.
그래서 나는 1962년생 안철수를 향해 1985년생 이준석의 정신을 계승하라는 엽기적이고 기상천외하게 들릴 제안을 감히 공개적으로 발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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