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찬양에는 우열이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전두환 정권에 대해서 누가 들어도 긍정적 평가일 수밖에 없는 발언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전두환 언급과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는 주장이었다. 윤석열과 이재명 두 사람 모두 전두환의 5공 군사정권이 잘못한 일도 있지만 잘한 일도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윤석열의 전두환 견적을 단도직입적으로 찬양으로 단정해 맹비난했던 단체와 인물들은 이재명의 전두환 긍정 평가와 관련해서는 일제히 입을 닫았다. 심지어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같은 경우에는 아예 노골적 두둔에까지 나섰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이 현재의 집권세력과 그 추종자들에게는 단순한 습관을 넘어 이미 하나의 선천적 유전자로 몸속 깊이 새겨진 듯하다. 남한 주류 진보진영에 확실히 뿌리내린 위선의 DNA 덕분으로 말미암아 국민의힘은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탄핵된 지 겨우 몇 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당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한때 세 가지 수수께끼가 농담처럼 인구에 널리 회자된 적이 있었다. 첫째는 박근혜의 창조경제였다. 둘째는 북한 김정은의 속셈이었다. 셋째는 안철수 현 국민의당 대표의 새정치였다. 박근혜의 창조경제는 일찌감치 허당으로 판명됐고, 안철수의 새정치는 오래전에 꽈당이 났다. 김정은의 속내는 모질고 황당한 형제살해였음이 최종적으로 밝혀졌다.
한물간 세 가지 수수께끼를 뒤이어 하나의 오묘한 미스터리가 새롭게 등장했다. 그건 바로 이재명의 본심이다. 호남의 심장부 광주에서는 독재자 전두환의 방문을 기념해 세웠다는 비석을 발로 짓밟더니, 보수의 본향 대구경북에 가서는 나라경제를 전두환이 잘 운영했다고 떠드는 그의 본심이 대관절 무엇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탓이다.
이제부터 서술되는 내용은 필자의 일방적 추측일 수가 있다. 하지만 대다수 인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체험담에 기초한 추론이므로 무리한 일방적 억측으로만 마냥 치부할 수는 없으리라.
나는 여타의 문제들은 어떨지 몰라도 전두환에 대한 평가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자신의 출생지이기도 한 대구경북에서 꺼낸 얘기가 그의 본심을 보다 정확히 반영했을 걸로 생각한다.
그렇게 유추한 근거가 뭐냐고? 김종필 평가를 일례로 제시해보겠다. 충청도 사람들이 김종필에 대해 어떠한 속내를 갖고 있는지 알아보려면 충청도 태생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에 가는 게 합리적이다. 보통, 외지인들과 섞여 만날 때 떠드는 김종필 평가와 비교해 충청도 사람들끼리 속내를 터놓고 대화할 적의 JP 평가가 훨씬 더 호의적임은 물론이다. 자기 검열, 곧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참여정부 초기에 부산경남 출신의 진보 성향 지인들과 자주 어울릴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다른 지역에서 태어난 누리꾼들과 함께 있을 시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 관해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삼당합당을 강행해 호남을 고립시키고, 실패한 경제정책을 고집해 외환위기를 불러왔다는 게 주요한 이유였다.
그런데 막상 PK 정체성을 공유하는 인자들이 다수가 되는 자리가 생기자 김영삼에 대한 평가의 방향이 180도로 변침했다. YS 특유의 똘끼, 아니 추진력과 돌파력이 없었다면 하나회 척결도, 공직자 재산등록제 실시와 금융실명제 전격 도입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을 거라는 시각이 이들의 전반적 견해이자 공통적 정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의 청와대 핵심 실세 참모로 활동할 시절에 노무현 정권이 부산정권임을 국민들이 몰라준다고 볼멘소리를 한 것도 단순한 꾀병이나 엄살이 아니었다. 그는 PK권 유권자들을 향한 섭섭한 속마음을 참여정부의 이너서클인 부산인맥의 수장으로서 여과 없이 표출했을 따름이다.
호남인들로부터도 비슷한 추세가 발견된다. 과거 서울 잠실구장이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스 구단의 홈구장처럼 기능한 것도 수도권에 거주하는 수만 명의 호남인들이 스스로의 집단적 열정을 거리낌 없이 표출할 수 있는 무대가 평소에는 야구장이 유일한 까닭에서였다. 그곳에서는 ‘비판적 지지’ 따위의 소심한 몸 사림은 더는 필요하지 않았다. 외지인들 앞에선 비판적 지지의 대상으로 격하되었던 DJ는 호남인들이 단단히 결집한 공간에서야 비로소 열광적 환호의 아이콘으로 온전히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가 있었다.
천하의 이재명도 고향에선 긴장해
이와 같은 심리적 기제는 학교와 가족을 비평할 때도 마찬가지로 작동된다. 모교에 대한 나의 솔직한 논평은 동문회에서 발설되기 마련이고, 내 가족에 관한 진실한 소회는 식구들만 모인 자리에서 피력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전두환에 대한 이재명의 본심은 대구경북에 머물렀던 시간에 나온 말들에 담겼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전두환에 관한 이재명의 판단은 대선 판도에 별다른 파장을 드리우지 못할 것이다. 호남 유권자들은 이재명이 영남에서 한 전두환 평가가 선거용 사탕발림(Lip-Service)에 불과할 뿐이라고 철석같이 확신할 터이고, 영남의 일반대중은 이재명이 고향에 내려와 전두환에게 던졌던 호의적 시선이 역시나 표를 얻으려는 알량하고 지능적인 기만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야장천으로 불신할 테니까.
사람은 믿고 싶은 건만 믿고, 보고 싶은 건만 본다. 영남에서도, 호남에서도, 그리고 충청에서도. 인류의 문명과 역사는 믿고 싶어도 용기 있게 의심하는, 보고 싶어도 과감하게 물리치는 진취적인 창조적 소수가 창출하고 제공하는 추동력에 의해 언제나 발전하고 전진하고 혁신돼왔다.
필자는 이재명의 본심을 어느 정도 탐구하는 데에는 성공한 것으로 자평하련다. 허나 그의 진심을 풀어내는 일에서는 여전히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실, 정치인의 진심을 규명하려는 노력만큼 무익한 시도도 없으리라. “내 마음 나도 몰라”란 어느 고색창연한 추억의 외국 가요 가사처럼 이재명의 마음은 이재명도 모른다. 욕망과 야심이 마음의 일부일 수는 있으되, 마음의 전부일 수는 없다.
이재명은 생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고향에서 인정받기를 갈망한다. 그가 경주의 표암재를 방문해 조상들에게 대선출마를 보고하는 행사를 치르다가 순간적으로 뒤로 주저앉은 일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예전에 갓 시집온 새색시들이 시댁 어른들 면전에서 얌전히 큰절을 올리다가 몸의 중심을 잃고서 뒤로 발라당 자빠지곤 한 건 결국은 과도하게 긴장한 탓이 컸다. 이재명도 지나친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가 다른 곳들에서는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모습이었다.
영남에 들른 이재명은 고향 사람들 앞에서 진심은 몰라도 최소한 본심만은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가 보여준 본심이 이재명의 선거 당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필자는 정밀하기 계측하지 못하겠다. 분명한 대목은 수수께끼에 가려져 있던 이재명의 본심이 드디어 서서히 장막을 벗기 시작했다는 점이리라. 마침내 드러난 그의 본심이 회심의 승부수로 주효할지, 아니면 치명적 자충수로 기록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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