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의 야무진 희망사항과 다르게 로마인들은 항전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로서는 적들에게 되레 시간만 벌어준 꼴이었다.
한니발이 로마의 동맹국들을 카르타고 편으로 열심히 포섭하는 동안 로마인들은 튼튼한 창과 방패를 장만했다. 방패는 파비우스였고, 창은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였다. 마르켈루스는 충동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의 사나이로 모험을 무릅쓰길 좋아했다. 싸움꾼 한니발조차 마르켈루스 앞에서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 정도였다.
마르켈루스는 한니발에게 기습을 당해 싸움터에서 결국 목숨을 잃는다. 헛되기만 한 죽음은 아니었다. 파비우스가 한니발에게 오장육부를 좀먹는 암세포 같은 존재였다면, 마르켈루스는 물귀신처럼 그의 팔다리를 수시로 붙잡고 늘어진 까닭에서였다.
성정과 싸우는 방법은 반대였어도 각각 다섯 차례씩, 합쳐서 총 10번씩이나 집정관에 오른 로마의 두 영웅은 한 명은 한니발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한 명은 한니발의 몸을 피곤하게 하는 식으로 카르타고의 명장을 서서히 무너뜨렸다. 조직력의 독일이 마라도나와 메시 같은 현란한 개인기를 지닌 슈퍼스타를 보유한 아르헨티나와의 축구경기에서 왜 거의 항상 번번이 이겨왔는지를 생각해보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다. 사실 파비우스도 앙숙의 계략에 걸려들 뻔한 적이 있었다. 한니발이 메타폰툼의 우두머리를 사칭해 거짓 항복문서를 보내온 다음 복병들을 매복시킨 것이다. 파비우스는 한밤중에 도시를 접수하러 가다가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 채고는 병력을 뒤로 물렸다. 대어를 놓친 한니발은 허무하게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플루타르코스는 파비우스가 순전히 재수가 좋았던 덕분이라고 묘사했지만, 남들은 여지없이 다 걸려드는 한니발의 지능적인 두뇌 플레이에 파비우스만은 한 번도 당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고수에게는 운도 실력임이 분명하다.
파비우스는 로마가 카르타고군에게 함락될지도 모를 최악의 고비를 넘겼다는 판단이 서자 그의 주특기를 다시 발휘하기 시작했다. 믿음과 인내로써 부하들과 동맹국을 포용하는 일이었다.
그는 동요하는 여러 도시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한니발에게 일시적으로 유리하게 재편되었던 이탈리아 반도의 역관계를 로마가 우위인 원래 구도로 되돌려놓았다. 그는 로마 이외의 지역에서 태어난 병사들의 마음을 끌어안는 데도 각별히 주력했다. 한니발에게 투항할 것이라는 억울한 의심을 사고 있는 마르시 출신의 한 병사에게 군마 한 필을 포상으로 내린 일은 군대의 사기와 충성심을 크게 올려놓았다.
파비우스는 농부들이 정성스럽게 곡식을 가꾸고 조련사들이 상냥하게 짐승들을 다루는 일을 예로 들면서, 휘하의 장수들에게 동물이나 농작물에 견주면 백배는 더 소중한 병사들을 친자식이나 친형제처럼 사랑스럽게 보살필 것을 주문했다.
그는 때로는 스스로 군율을 여기면서까지 사병들의 고충을 해결해주었다. 무공은 뛰어나나 여인과의 사랑에 빠져 자주 몰래 군문을 이탈하곤 하는 어느 루카니아 태생의 병사를 위해 그의 애인을 군중으로 은밀히 데려온 것이다. 그는 정인 하나만을 믿고서 위험한 전쟁터로 들어온 아름다운 아가씨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다시는 군영을 무단으로 빠져나가지 말 것을 병사에게 단단히 못을 박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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