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먹거리며 얘기를 끝낸 미누키우스는 파비우스와 입맞춤 섞인 포옹을 했다. 두 장수의 부하들 또한 대장들을 따라 서로 부둥켜안고 입술을 비비며 동료애를 확인했다. 그들은 진정 순수한 의미에서 기쁨을 나누는 몸이 되었다.
파비우스가 이뤄낸 통쾌한 역전승 덕분에 로마는 위기에서 벗어나 모처럼 안정을 되찾았다. 이는 더는 독재관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 조성됐다는 의미다. 로마는 집정관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상적인 정치체제로 복귀했고, 새로 임명된 집정관들은 한니발과의 정면승부를 회피하면서 동맹국들과의 긴밀한 공조 아래 한니발을 압박하는 파비우스의 장기전 전략을 충실히 좇았다. 테렌티우스 바르로가 집정관에 선출되기 이전까지는….
파비우스는 테렌티우스가 태생이 불분명하고 민중에게 아첨하기 좋아하는 자라고 혹평하였다. 바꿔 생각하면 바르로는 서민 출신의 흙수저 정치인이었다는 뜻이다.
어느 시대건 전쟁의 고통은 평범한 서민대중이 주로 무겁게 지기 마련이고, 따라서 그들은 무한대의 지속적인 출혈을 강요하는 장기전보다는 하루빨리 버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속전속결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테렌티우스가 단지 본인의 이기적인 정치적 셈속에서 단 한 번의 결전으로 신속하고도 완전한 승리를 거두자고 주장했다고만은 여기기 어려운 이유다.
테렌티우스는 한니발을 단번에 격파할 수 있는 압도적 전력을 구축하기 위해 로마의 장정들을 죄다 박박 긁어모으다시피 하여 무려 8만 8천 명의 전례 없는 대병력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한마디로 모두걸기, 곧 올인 전략이었다.
파비우스를 비롯한 로마 사회의 원로급 인사들은 나라가 가진 모든 인적 자산을 한 차례의 단판 승부에 쏟아 붓는 테렌티우스의 대도박에 깊은 우려와 불안감을 느꼈다. 파비우스는 공동 집정관으로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를 움직여 테렌티우스의 치기어린 만용을 제어하려 했다.
파울루스는 안으로는 테렌티우스를 말리고, 밖으로는 한니발을 막기에는 개인적 약점을 지닌 인사였다. 그는 최근에 민중이 그에게 부과한 벌금으로 말미암아 기가 죽어 있었다.
그럼에도 파비우스는 카르타고군의 숫자가 이탈리아로 처음 쳐들어올 당시와 비교해 3분의 1을 밑도는 수준으로 줄어든 사실을 거론하면서 로마군이 침입자들과의 성급한 교전에만 휘말리지 않는다면 한니발은 1년 안에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이탈리아 반도에서 고사할 것이라고 파울루스를 설득하였다. 경험 많은 전직 독재관의 신중한 판단과 따듯한 격려에 고무된 파울루스는 명망 높은 선배의 기대에 부응할 것을 약속하며 전선으로 떠났다.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에게 항복한 독일 야전군의 총수 이름도 파울루스임을 알았다면 파비우스는 다른 인물을 전선으로 내보내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미래의 볼가강변에서 침략자가 맞이할 달갑지 않은 운명이 칸나에에서는 정반대로 방어자를 기다리는 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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