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군영에서는 목불인견의 추태가 빚어지고 있었다. 미누키우스는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이 아니라, 마치 신민을 다스리는 전제군주처럼 거드름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한니발과의 전쟁보다는 파비우스와의 정쟁에 더 관심과 열의가 컸던 탓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으니 나름 승자의 여유와 과실을 마음껏 즐기려 들만도 했다.
미누키우스는 만족을 몰랐다. 그는 한 술 더 떠 부대를 번갈아 지휘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는 휘하의 군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지도 몰랐다. 파비우스는 부대의 절반만이라도 지켜내기 위해 군대를 반으로 나눠 이끌자는 역제의를 해 관철시켰다. 동맹군도 두 사람이 반반씩 나눠가졌다.
병력과 군마와 군수품은 나눴어도 위엄과 명성은 나눠가질 수 없는 노릇이었다. 파비우스는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가 하늘을 나는 듯이 기분이 들떠 있는 미누키우스를 향해 그에게 분수에 맞지 않는 권력과 영광을 쥐어준 시민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말라고 진지한 어조로 충고하였다.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미누키우스의 귀에 불신임당해 끈 떨어진 독재관의 조언이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는 파비우스가 하는 모든 얘기를 늙은이의 심술과 노파심의 발로로 치부하고는 할당된 병력을 이끌고 별도의 장소에 진영을 설치했다.
로마군이 갑자기 병력을 반분한 정확한 까닭을 한니발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전장에서 단련된 본능적 후각으로 적군 내부에 심상치 않은 동요의 조짐이 있음을 감지하고는 로마군을 유인해낼 계책을 궁리해냈다. 양군 사이에 위치한 매끈해 보이는 평원을 함정으로 삼은 것이다.
멀리서 바라볼 때와 달리 평원에는 무수한 도랑과 구덩이가 있었다. 그는 이곳들에 로마군이 눈치 채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약간의 병력을 배치했다. 적의 공격을 유도하려는 심산이었다. 한니발의 노림수대로 미누키우스는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 모두를 차례로 출동시켰다.
미누키우스가 승세를 탔다고 생각해 전군에 계속 전진할 것을 연달아 독촉할 즈음, 로마군 후위대가 밀고 들어온 지역에 미리 매복해 있던 카르타고 군이 은신처에서 일제히 튀어나와 총반격을 개시했다. 허를 찔린 미누키우스는 부하들에게 현재의 위치를 사수할 것을 명령했으나 겁에 질린 병사들은 원래의 출발지를 향하여 무질서하게 도주할 뿐이었다.
대오가 무너진 보병은 기병대의 만만한 사냥감이 되기 십상이었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로마군 병사들의 등과 목덜미마다에 카르타고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노련한 누미디아 기병들의 칼끝과 창날이 무자비하게 꽂히고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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