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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페르시아 제국에 최종적 승리를 거두다 - 아테네의 강남좌파 아리스테이데스 (11)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19-11-18 11: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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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케다이몬의 장졸들도 수시로 변하는 명령에 짜증이 치솟았다. 그중에 아몸파레토스는 성격이 불같은 자였다. 그는 진영을 자꾸만 옮기는 것은 후퇴하자는 게 아니냐고 반발하면서 왕의 발밑으로 커다란 돌덩이를 던졌다. 이곳에서 한 발짝도 더는 움직일 수 없다는 무언의 항의였다.


집단항명의 심상찮은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감지한 파우사니아스는 아테네 진영으로 급히 전령을 파견해 스파르타 군사들이 도착할 때까지 지금의 위치에서 기다려달라고 요청한 후에 부대의 이동을 재개했다. 그러면 하극상의 주동자격인 아몸파레토스도 마지못해 고집을 꺾으리라고 그는 계산했다.


현대의 사가들이 양측 모두를 합해 20만 명 가까운 대병력이 참전한 것으로 평가하는 플라타이아이 전투 이후 그리스 세계와 페르시아 제국은 150년 동안의 냉전체제에 돌입했다. (이미지는 당시의 전투현장을 묘사한 그림)

이튿날 아침, 적진이 텅텅 빈 사실을 발견한 마로도니오스는 발 빠른 기병대를 움직여 스파르타군의 후위를 따라잡았다. 파우사니아스는 즉각 전투대형을 갖췄으나 그가 동맹군에게 너무 늦게 연락을 취하는 바람에 다른 폴리스의 군대들은 적시에 라케다이몬 사람들을 도우러 나타날 수가 없었다.


파우사니아스는 승리를 예언하는 상서로운 징조가 나올 때까지 짐승의 내장만을 계속 제물로 바쳤을 뿐, 휘하의 장병들에게 무기를 들고 맞서라는 신호를 내려주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스파르타 병사들은 적군의 일방적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당해야만 했다. 놀라운 점은 그들이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태연히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었다. 스파르타인들은 소중한 개인의 생명과 명령에 대한 복종 중에서 기꺼이 후자를 택했다. 부대 내의 최장신이자 제일가는 꽃미남 병사였던 칼리크라테스 역시 이때 적군이 쏜 화살을 맞고서 의연하게 죽어갔다.


플루타르코스는 파우사니아스가 유리한 점괘가 나올 때까지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 된 채 신들에게 무기력하게 기도만 했다고 기록했다. 필자는 플루타르코스가 스파르타 국왕의 겉모습은 적었으되 속내는 써놓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리스인들의 용감함과 인내력을 더욱 극적으로 찬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파우사니아스는 잦은 이동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군대가 적을 향한 분노로 이글거릴 시점을 묵묵히 기다렸으리라. 혹독한 맹훈련으로 단련된 노련한 스파르타 병사들일지라도 공격개시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적군을 무서운 기세로 밀어붙이기는 불가능한 이유에서이다.


공격 태세로 전환한 스파르타군의 밀집대형은 단숨에 적병들을 압도했다. 이제는 페르시아군이 방패로 방벽을 쌓고서 적을 막아야만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페르시아인들은 곳곳이 무너지고 헐거워진 방패의 벽을 파고들어 그들을 마구 찔러대는 스파르타인들의 장창을 맨손으로 붙잡으며 격렬히 저항했다. 그들은 심지어 상대를 부둥켜안고서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주먹질을 교환하는 원초적 육탄전을 불사하면서까지 한참동안을 끈질기게 버텼다.


우리의 주인공인 아리스테이데스는 이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함성소리를 듣고는 뭔가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 참이었다. 그가 스파르타 전령의 급보를 받자마자 지체 없이 출발할 수 있었던 이유다. 동맹군을 구원하러 떠난 아테네 군대를 막아선 무리는 조국을 배반하고 페르시아 측에 빌붙은 그리스 사람들이었으니 그 숫자가 무려 5만 명에 달했다.


아리스테이데스는 같은 그리스인들끼리 싸울 까닭이 없다며 주적인 페르시아인들을 무찌를 수 있도록 길을 내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그는 배신자들이 요구에 불응하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이내 싸움을 시작했다. 전투는 싱거우면서도 치열했다. 대부분의 적병이 스파르타와 교전중인 제국군이 수세에 몰렸다는 얘기를 듣고는 줄행랑을 쳤다는 점에선 싱거웠고, 도주 대신 항전을 택한 권세 있고 지체 높은 테베인들이 아테네인들과 죽기 살기로 싸웠다는 점에서는 치열했다.


먼저 승리를 거둔 쪽은 스파르타였다. 페르시아군 총사령관 마르도니오스는 아림네스토스가 내리친 돌에 맞아 죽었다. 이윽고 아테네군도 승전고를 울렸다. 테베의 엘리트 300명도 이때 사망했다. 아테네는 테베의 패잔병들을 추격하기를 포기하고 스파르타를 도와 방책 안에서 농성하는 페르시아의 잔당들을 소탕하는 데 착수했다.


그리스 연합군은 이날 26만 명의 페르시아인과 그 부역자들을 섬멸했다. 도주에 성공한 적병은 아르타바조스를 비롯해 겨우 4만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스 측에서는 총 1,360명의 군인이 전사했다. 그중 52명이 아테네인으로 전몰자 전원이 아이안티스 씨족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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