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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을 위한 변명’을 시도한다 - 이해찬을 생각한다 ②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19-11-04 13: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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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은 외환위기 사태 극복의 영웅


이해찬이 과감히 밀어붙인 교원정년 단축은 김대중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공공부문 개혁의 백미이자 압권이었다. (당시의 KBS 뉴스 갈무리)‘이해찬 세대’는 이해찬 본인보다도 어쩌면 더욱더 오랫동안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지도 모른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정작 서태지보다 더 유명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실력과 전문성으로 승부하는 유능한 능력자로부터 지위와 권세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오만한 권력자로 탈바꿈한 시기는 그가 김대중 정부의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머물렀던 시기와 대략 일치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나 또한 이러한 기존 평가에 동의해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까지는….


이해찬은 억울하다. 지금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파문을 계기로 다시금 확연히 드러난 대한민국 입시제도의 모순과 파행의 뿌리가, 부조리와 난맥상의 시발점이 마치 이해찬에게 있는 것처럼 거칠게 맹목적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남한사회의 입시 문제와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관계는 백제의 멸망과 계백 장군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계백이 황산벌에서 신라군에게 중과부적으로 패배한 것이 백제 멸망의 한 단계일 수는 있어도 원인은 아니듯, 이해찬이 교육부 장관으로서 추진한 입시 정책들은 대한민국 교육이 폭망에 이르는 기나긴 과정의 일부분일 뿐 단초 자체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해찬이 교육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일궈낸 커다란 치적은 여전히 정당한 조명을 받지 못해왔다. 그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공부문 개혁 기조에 호응해 이해찬 교육부 장관 주도로 교원들의 정년을 종전의 65세에서 현행 62세로 단축한 일이다.


애당초 목표했던 60살로 낮추지 못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상당히 미진한 감은 있으나 문재인 정권이 공무원들에 대한 응당하고 정상적인 직무평가마저 지레 포기한 사실을 감안하면 이해찬의 교육부가 교사와 교수 같은 교원들의 정년을 3년이나 앞당긴 사건은 단군 이래로 가장 성공적인 공공개혁이었다고 상찬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역량과 참신함, 개혁성에 충청도 출신이라는 나름의 지역기반까지 두루 갖췄던 이해찬이 유력 대권주자의 대열에서 되돌릴 수 없이 탈락한 사태는 그가 교육부 장관으로서 이룩한 공공부문 개혁의 성공에서 비롯되었다. 한마디로, 그는 성공의 저주를 받은 셈이다. 자기들의 특권적 밥통을 빼앗아간 이해찬을 보수적인 한국교육단체총연합회는 물론이고 진보 성향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용서할 리 만무했다.


‘성공의 저주’에 빠진 이해찬


문재인 정권의 장관들 중에서 김대중 정부의 이해찬 교육부 장관처럼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서 교사와 공무원의 철밥통을 깬 사람이 있었다면 경제폭망 정부의 오명은 쓰지 않았을 게다. (당시 MBC 뉴스화면 갈무리)허나 명심하자. 교사를 위시한 공무원들의 철밥통 유지에 들어갈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아낀 덕분에 김대중 정부는 대한민국을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도약시켰고, 벤처기업 투자를 활성화했으며, 한류의 창달에 필요한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만약 현재의 문재인 정부가 망국적인 ‘공무원 늘리기’만 편집증적으로 고집하지 않았어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퍼센트대로 주저앉는 부끄럽고 치욕적인 경제성적표를 받아들지는 않았으리라.


이 창피스러운 경제성적표로부터 민중의 시선을 돌리자니 대다수 평범한 인민대중의 실질적 삶과는 하등 상관없는 이른바 공수처 도입에 정권의 사활을 걸고, 동성연애자가 운영하는 일개 소규모 사조직이 일국의 국방부를 쥐락펴락하는 엽기적인 블랙코미디가 매일 연출되는 것이다.


투수가 긴장을 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평소의 제구력이 발휘되지 않는 법이다, 정치인이 억울한 감정에 사로잡히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판단력이 흐려지면 대국을 그르치기 일쑤다.


이해찬은 교원 정년 단축이라는 장쾌하고 역사적인 성과물을 창출함으로써 김대중 정부가 한국을 전임 김영삼 정부 때 초래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부터 탈출시키는 일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럼에도 이해찬에게 남은 건 한국교육을 망친 주점이라는 선연하면서도 억울한 주홍글씨가 되레 전부였다.


대중적 이미지가 심각하게 나빠진 인물이 정권의 요직에 계속 중용되기는 힘들다. 교육부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이해찬은 새천년민주당의 최고위원에 선출된 것을 빼면 한동안 특별한 역할을 맡지 못했다. 민주당 정풍운동의 화려한 각광은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삼총사에게 돌아갔다. 노풍으로 상징되는 파란만장하고 변화무쌍한 2002년 대선정국에서 이해찬의 존재감은 그의 이름 석 자에 어울리지 않게 몹시 미미하기만 했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부터 참여정부 출범 초기까지 정치인 이해찬은 유권자들에게 철저히 망각된 존재였다. 그는 자칫하다간 한때의 유망주로 끝나고 말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③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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