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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재익② “부동산담보대출 제도의 폐지가 필요하다” - 586 세대가 축적한 부와 재산을 서민과 청년들에게 돌려줘야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19-10-30 16: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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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사회에는 다양한 유형의 부자들이 존재한다. 주식부자도 있고, 현금부자도 있다. 그러나 부자 중의 으뜸 부자는 단연 강남부자이다. 수익성과 안전성 전부에서 강남 부동산을 따라갈 자산은 이전에도, 이후로도 극히 드문 덕분이다.

정권의 이념적 성격을 불문하고 역대 모든 정권이 강남 땅값을 잡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평범한 인민대중은 결국 잡힌 건 강남 땅값이 아니라 정권의 명운이었음을 생생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정권의 이념적 성격을 불문하고 역대 모든 정권의 기세등등한 실세 인사들과 내로라하는 고관대작들이 강남에 아파트 한두 채씩은 예사로 갖고 있는 일이 무엇을 시사하겠는가?

빈재익 사회적 협동조합 「동아시아 신경제 이니셔티브」 연구이사는 강남 아파트로 상징되는 부동산의 불평등한 소유로부터 유래하는 경제적 불평등 구조의 발본적인 혁파 없이는 그 어떠한 정치사회적 개혁 시도도 용두사미로 유야무야될 것임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주거용 부동산담보 대출, 이제는 막아야


빈재익 이사는 과거의 부로 미래의 부를 움켜쥐는 경제구조의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빈재익 : 부동산 시장 개혁의 기본 방향은 가계용 부동산, 즉 주거용 부동산이 은행담보 등의 형식으로 신용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있습니다. 가계용 부동산을 담보로 활용한 대출 제도를 궁극적으로는 폐지하자는 취지입니다.


필자도 나름 과격하고 급진적이라는 소리를 주변에서 자주 들어온 터였지만 빈재익 이사의 주장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통쾌하고 시원하다는 느낌은 그 다음이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금융기관이 가계용 주택을 대출 용도에 필요한 담보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바로 땅값 폭등의, 부동산 불평등의 핵심입니다. 주거용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은행에서 그것을 담보로 삼아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곧 신용을 창출할 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부동산 담보 대출의 사회적 해악과 부당성이 어디에 있느냐? 저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다는 것은 한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주도권(Initiative)을 장악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활동에서 일단은 먼저 치고나갈 수 있으니까요.


대출은 의무일 뿐만 아니라 더불어 권리이기도 하다. 금융기관이야말로 고객의 빈부귀천의 상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인 연유에서이다.


부동산을 자산으로 가지고 있다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과거에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증거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부동산담보 대출은 은행권 전체에서 만들어내는 신용의 50프로 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경제가 만들어내는 신용 즉 화폐의 절반을 이전의 경제활동에서 성과를 거둔 사람들이 가져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금융시스템 자체가 잘사는 계층에게 더 잘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셈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큰돈을 벌 수 있는 길은 부동산을 통한 돈벌이가 거의 유일한 방법이 돼 있습니다. 은행이 앞장서서 기존의 부동산 부자들을 더 큰 부자로 키워주고 있는 격입니다. 반면에 기업을 창업하려는 사람들처럼 실질적으로 절실하게 신용이 필요한 계층에게는 시장을 통한 자금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해왔습니다.


화폐제도와 금융시스템이 본래의 사회적 기능을 책임성 있게 수행하지 못하면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구조는 한층 더 공고해지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거시감독 비용을 분담하는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금융이 본래 맡아야만 할 사회적 책임성을 다하게끔 이끌어야 합니다. 부동산 담보대출을 종국적으로 없애는 일은 물론이고요.


‘땅 본위제’의 경제에는 정의도, 미래도 없다


빈재익 연구이사는 부동산과 관련해 586 세대는 기득권 체제에 깊이 편입됐음을 지적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제가 말씀드리는 얘기는 결론적으로 화폐개혁으로 수렴됩니다. 과거에는 금과 은을 보유한 집단이 화폐를 가졌습니다. 이게 금본위제이고, 은본위제입니다. 17~18세기 유럽에서는 금은을 확보한 계급이 조폐창에 가서 수중의 금과 은을 녹여 금화를 주조하고, 은화를 손에 쥐었습니다. 이것 역시 일종의 신용창출 행위였습니다. 21세기 한국의 화폐제도는 어떻습니까? 부동산을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신용을 창출하는 ‘땅 본위제’가 사실상 실시돼왔습니다.


저는 사법개혁의 의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검찰개혁의 당위성 또한 부인하지를 않겠습니다. 그러나 경제개혁 없는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은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개혁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국지적이고 지엽적인 부분적 개혁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풀뿌리 개혁으로 평가되는 경제개혁이 왜 지지부진하겠습니까? 부동산에 근거한 신용창출 행위가 586 세대의 경제적 이권과 기득권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데 매우 중요하고 요긴한 동력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586 세대가 주안점과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올바를 개혁은 사법개혁도, 검찰개혁도 아닙니다. 다름 아닌 경제개혁입니다. 586 세대와 그 이전 세대에게만 집중적으로 축적된 경제적 재부가 서민대중과 청년세대에게도 돌아가지 않으면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치명적으로 훼손될 게 명확합니다.


경제개혁은 정치개혁을 비롯한 다른 모든 개혁의 토대와 밑받침 구실을 해주는 개혁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초반부터 과감한 경제개혁에 매진했다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추진하려던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은 별 무리와 난관 없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빈재익 이사와의 인터뷰를 앞둔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입 정시모집 확대 방침이 갑작스럽게 발표되었다.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마자 강남 땅값이 또다시 억수로 뛰었다. 빈재익 「동아시아 신경제 이니셔티브」 연구이사와의 인터뷰는 원래의 예정에 없던 이 주제를 다루는 것으로 매조지를 지었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신용만을 창출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학벌과 학력도 아울러 생산합니다. 부동산의 불평등이 교육의 불평들을 낳는 구조입니다.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화폐 제도와 금융 시스템의 획기적 변화가 있어야 효과적이고 성공적인 교육개혁도 도모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동산이 화폐를 창출하는 기존 경제시스템을 그대로 놔둔다면 부동산으로 학력과 학벌과 같은 사회적 자본마저도 창출하는 현재의 교육시스템 또한 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희준 : 의미 있고 유용한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빈재익 : 조금은 복잡한 얘기 재미있게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빈재익 사회적 협동조합 「동아시아 신경제 이니셔티브」 연구이사는 196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다음 프랑스로 건너가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으로 귀국한 후에는 현재까지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들을 수행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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