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장군들이 작전계획에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는 동안 아리스테이데스는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프쉿탈레이아에 상륙했다. 살라미스 해협에 자리 잡은 이 자그마한 섬을 개미떼처럼 가득 메우고 있는 페르시아 병사들을 소탕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온 이 불청객들을 간단히 제압한 다음 아주 귀한 손님 몇 사람을 포로로 잡아왔다. 왕의 누이가 낳은 세 아들이었다.
그는 생포한 대왕의 조카들을 즉시 테미스토클레스에게 보냈다. 스스로의 전공을 뽐내기 바랐다면 그들을 수중에 계속 움켜쥐고 있었으리라. 진정한 업적은 자가발전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다름 사람들에 의해 빛내지기 마련이다. 아테네인들은 나중에 이 섬에 승전비를 세움으로써 아리스테이데스의 용맹함과 겸손함에 경의를 표했다.
살라미스 앞바다에서의 해전은 아테네 해군을 주축으로 한 그리스 연합함대의 대승으로 끝났다. 전투의 종식은 아리스테이데스를 향한 테미스토클레스의 질투와 경계심이 다시 발동됨을 뜻했다. 그는 아리스테이데스에게 현재는 다르다넬스 해협으로 알려진 헬레스폰토스 해협으로 가서 그곳에 설치된 페르시아군의 부교를 파괴할 것을 종용했다. 부교를 끊는 일에 성공해도 좋고, 만약 실패해도 그 책임을 경쟁자에게 돌릴 수 있어서 좋다는 식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속내를 꿰뚫어본 아리스테이데스는 만약 아시아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막히면 그리스에 침입한 페르시아의 대군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미쳐 날뛸 것이 분명하다며 부교파괴 작전에 대한 반대의사를 완곡히 표현했다.
사실 테미스토클레스도 부교를 파괴하는 일이 그리 급하거나 중요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살라미스 해협에서의 해전 계획은 일종의 배수진과 마찬가지 발상이었다. 그런데 헬레스폰토스의 부교가 사라지면 페르시아군 측에서 전군이 옥쇄할 각오로 되레 배수진을 칠지도 몰랐다.
그는 아테네 군영에 포로로 잡혀 있는 왕의 내관인 아르나케스를 크세르크세스의 본진으로 돌려보냈다. 그리스인들이 부교를 불태우려고 궁리했다가 테미스토클레스의 만류로 포기했다는 은밀한 전갈과 함께였다. 페르시아 전쟁은 무기의 싸움과 더불어 머리싸움이기도 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귀띔은 싸우지 않고 적을 몰아내는 절묘한 계책이었다. 낯선 유럽 땅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크세르크세스는 본국으로의 귀국길을 서둘렀다. 하지만 그냥 순순히 돌아가기는 조금 섭섭했는지 그는 맹장 마르도니오스 휘하의 300명의 육군 정예부대를 뒤에 남겨놓았다.
이후의 전황을 추측해보건대 이들은 전 병력이 300명이 아니라 장교들의 숫자가 삼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패잔병 아닌 패잔병 무리에는 조국을 배반한 그리스인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을 테니 실제로는 엄청난 규모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axnews.co.kr/news/view.php?idx=28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