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편집위원
아리스테이데스의 상종가는 테미스토클레스의 하한가를 뜻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리스테이데스가 법이 아닌 개인의 지배를 획책하고, 더욱이 은근히 왕 노릇까지 하려 든다고 음해하였다.
게다가 민중은 전투에서의 승리감에 한껏 고무돼 이제는 영웅도, 지도자도 필요 없다고 호기를 부렸다. 아테네를 망국의 길로 밀어 넣은 대중독재가 이즈음부터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압도적 권위와 명망을 누려온 아리스테이데스가 민중의 질투와 의심의 희생양이 되는 건 이제 필연적 순서였다.
소수가 권력을 전횡하며 민중을 억압하는 일반적 독재에서건, 다수가 몰려다니며 반대자들을 조리돌림을 하는 대중독재에서건 모난 돌은 정을 맞기 마련이다. 도편추방 제도의 도입 취지는 독재의 싹을 미리 자른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몇몇 교활한 선동가들이 군중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 일쑤였다. 이번에는 테미스토클레스가 가해자였고, 아리스테이데스가 피해자였다.
도편추방이 유효하게 성립하려면 6천 명 이상의 시민들이 도자기 조각에 특정인의 성명을 적은 다음 난간이 둘러쳐진 광장 안으로 입장해야만 한다. 도자기 조각에 이름이 제일 많이 기재된 자는 10년간 아테네를 떠나야만 했다. 결코 달갑지 않은 최다 득표자의 영예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추방당한 자의 재산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후세인들이 너무나 잘 아는 일화다.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문맹자인 농민 한 명이 아리스테이데스에게 도자기 조각을 건넸다. 사진은 없고, 초상화는 극히 귀했던 시대인지라 까막눈인 농부는 도편을 받은 사람이 아리스테이데스일 줄은 까맣게 몰랐다.
농부가 아리스테이데스의 이름을 도편에 써달라고 부탁하자 아리스테이데스는 그 이유를 물었다. 농부는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다들 아리스테이데스가 정의롭다고 떠받드는데, 나는 그자가 그냥 싫소.”
아리스테이데스는 더 이상 이유를 캐묻지 않고 농민이 도편에 써달라는 대로 순순히 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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