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은’ 흙수저 조국
조국 법무부 장관은 아이러니로 가득한 삶을 살아왔다. 그는 수억 원의 막대한 시세차익이 예상되는 강남의 값비싼 재건축 예정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레 좌파를 자처한다. 과거에는 국가는 물론이고 민족의 존재마저 철저하게 부정하는 견결하고 급진적인 사회주의자였다가, 지금은 「죽창가」를 틀어대며 과격한 민족주의를 앞장서서 선동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조국 법무장관은 자기의 책과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는 대학입시 제도의 공정함과 투명성을 부지런히 주장했지만 정작 본인의 딸에게는 평범한 서민들은 감히 상상조차 못할 “그들만의 화려한 스펙”을 석연치 않게 만들어줬다. 조국 장관은 핵심적인 정치적 지지기반을 옛 참여정부 진영에 두고 있다. 현재는 친문세력으로 변신한 예전의 참여정부 진영은 특권과 반칙을 배격한다는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를 자임해왔다. 그런데 조국 스스로는 특권과 반칙을 밥 먹듯이 일삼아온 반칙왕으로 드러났다.
그야말로 모순 반, 역설 반일 조국 법무부 장관의 인생역정에서 내가 진짜 놀란 지점은 따로 있었다. 조국이 세간의 예감 또는 선입견과는 달리 전형적 흙수저였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돈 많은 흙수저라는 아주 예외적인 흙수저!
필자는 남의 시시콜콜한 가족사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타인의 가족관계를 조사하고 탐문하는 작업은 흥신소에서 담당하는 영역이지, 메시지 창작자(Message Creator)가 관여하는 분야는 아닌 까닭에서이다. 허나 내가 세상에 눈감고, 귀 막고 사는 은둔형 외톨이는 아닌지라 수많은 언론보도와 이런저런 유튜브 채널을 구경하면서 조국 법무장관이 어떠한 가정적 배경을 갖고 있는지를 본의 아니게 파악하고 말았다.
나는 조국 장관의 집안에 두 번 놀랐다. 조 장관의 가족이 돈이 많다는 부분에서 당연히 첫 번째로 놀랐고,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를 제외한다면 그의 가문에서 일반적 기준으로 남들이 선망할만한 괜찮은 직업을 갖고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이 집안 전체를 통틀어 조국 장관 한 명뿐이라는 사실에 두 번째로 뜻밖에 놀랐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용옥 전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집안에 돈도 많거니와 이른바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들도 친인척들 중에서 즐비하다. 이를테면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와 장하진 전 여성부 장관은 장 전 실장과는 가까운 인척지간이고, 김숙희 전 교육부 장관은 김 전 교수의 친누나이다. 굳이 자신이 아니더라도 출세하고 성공한 친인척들이 주변에 여럿이다.
소설가 장정일이 그려낸 조국의 숙명
조국 법무부 장관은 가정환경 측면에서 장정일의 장편소설인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무죄한 은행원이자 가난한 집안의 죄 많은 장남과 유사한 처지일 수도 있다. 나중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입신양명을 이뤄내는 소설 속의 주인공은 단지 별 볼일 없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무거운 운명의 명령과 책임을 홀로 감당해야만 한다. 가족 전체의 기대와 욕망을 혼자 오롯이 짊어졌던 탓이다.
나는 공인으로서의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해 극히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이다. 반면에 민간인 조국을 향해선 인간적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솔직히 숨기기 어렵다.
싸움으로 전교 1등이었다는 남동생, 누이의 남편이 이사로 등재된 사학재단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직원으로서 일자리를 옹색하게 구해야만 하는 처남, 5촌 당숙이 투자한 사모펀드를 관리하겠다고 당돌하게 나섰을 조카. 문제의 5촌 조카는 변변한 직장도 없이 수년째 주식 투자에만 골몰해왔다. 일가친척들이 영락없이 조국 법무장관 한 명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형국이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는 바람 잘 날이 없는 법이다. 그 나무가 황량한 광야 한가운데에 혼자 덩그러니 잎과 열매가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라면 바람의 세기와 변덕이 얼마나 강하고 심할지는 구태여 두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공인 조국의 시련과 위기는 조국 법무장관이 아니면 달리 내세울 마땅한 차기 대선주자가 부재한 친문세력의 정치적 불임상태에서 비롯되었다. 인간 조국의 고뇌와 비애는 그가 아니면 다른 믿을만한 기댈 구석이 없었을 일가친척 구성원들의 범용함과 변변찮음으로부터 연유했을지도 모른다.
가족주의 전통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끈끈한 혈육의 정을 유독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나 하나 믿고 찾아오는 혈육들을 매정하게 내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자 결정일 게다. 그렇지만 공직에 나아가려는 인물일수록, 국가권력을 잡고 싶은 인사들일수록 친인척들에게 모질고 잔인할 필요성이 있다. 나 홀로 집에서 출세하고 성공한 일이 또 다른 맥락의 ‘승자의 저주’의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다. 여기에서 제가의 의미가 이제는 확실히 바뀌어야만 한다. 가정을 바로 다스리는 제가(齊家)가 아니라, 피붙이들과 아예 인연을 끊는다는 제가(除家)로 말이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의 주인공은 가족을 버린 다음에야 작가로서의 성공의 가능성이 비로소 크게 트였다.
조국 장관 역시 마찬가지일 터이다. 여태껏 조국 한 명만 바라보며 살아왔을 갑갑한 친척과 친지들과의 인연을 완전하고 단호하게 끊은 연후에야 정치적 활로가 제대로 활짝 열릴 수 있다. 친척들과 얼굴을 억지로라도 마주해야만 하는 추석 명절이 행복과 기쁨의 원천이 아닌 짜증과 고통의 근원이 이미 오래전에 돼버린 시점에 다시금 확인하는 위정자의 올바르고 바람직한 자세이자 몸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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