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엘리트와 운동권 엘리트
뭉뚱그려 말하겠다. 남한사회에서 2010년에서 2015년은 ‘안철수 현상’의 시대로 국민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2016년에서 2020년은 ‘조국 현상’의 시기로 역사에 기록될 듯싶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서울대학교 의대를 나와 서울대 융합대학원장을 지냈다. 안철수는 한국의 이공계가 배출할 수 있는 최고의 엘리트였다.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로스쿨 교수 신분을 유지하는 중이다. 조국은 한국의 운동권이 산생할 수 있는 최고의 엘리트이다.
시간 순서로 따지자면 안철수 현상에 앞서서 조국 현상이 있었다. 관건은 조국 현상은 단지 김용민 전 한양대 겸임교수의 책의 제목으로만 언급되는 특수한 현상이었을 뿐, 일반대중 수준으로까지 파급되는 보편적 현상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반면에 안철수 현상은 요지부동의 철옹성으로만 여겨졌던 박근혜 대세론에 금이 쫙 가게 만들었을 만큼 폭넓고 확실한 실체가 있었다.
안철수의 철수 정치와 조국의 조로남불
안철수를 띄운 건 공정함에 대한 대중의 폭발적 열망이었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면서 한국사회는 정치, 경제,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고질적인 불공정성이 한층 더 심화되었다. 안철수는 이와 같은 모순되고 불공정한 사회구조를 동물원에 비유하며 공정한 세상을 실현하자고 역설했다.
안철수가 공정한 사회만 외쳤다면 그는 입바른 소리 좀 자주 하는 명망가의 하나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안철수는 외치는 데만 머물지 않고 스스로 도전에 나섰다. 그가 벤처기업의 전도사이자 청년들의 멘토로 우뚝 선 연유였다.
그러나 현실정치에 입문한 이후의 안철수는 특유의 도전정신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는 수시로 좌고우면서하면서 주판알을 굴렸다. 그 결과 안철수에게는 간만 본다는 부끄러운 오명이, 불리하면 슬그머니 철수한다는 부정적 평판이 꼬리표처럼 달라붙고 말았다.
안철수가 공정을 외쳐 자신의 중량감을 키웠다면, 조국은 정의를 부르짖으며 자기의 몸값을 높여왔다. 조국은 안철수와 비교하면 정무 감각과 언어구사 솜씨의 측면에서 훨씬 기민하고 발달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였던 시절부터 문 대통령과의 밀접한 관계를 틈나는 대로 빈번히 과시하면서 권력자의 후광을 효과적으로 영악하게 이용할 줄도 알았다.
더욱이 조국은 자폐증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기피하던 안철수와는 매우 다르게 마당발을 연상시키는 빼어난 사교성을 발휘함으로써 진보진영, 정확히는 진보적 정치 성향을 표방하는 남한사회의 출세하고 성공한 엘리트 집단과의 교분을 두텁게 다져왔다. 안철수의 사회성 수준이 빵점이라면, 조국의 대인관계 능력은 가히 100점이었다.
물론 여기에서의 스킨십은 힘 있고 부유한 엘리트들과의 스킨십을 가리킨다. 사노맹 활동 이후의 조국 법무장관이 힘없고 가난한, 평범한 인민대중들과 소탈하고 허심탄회하게 어울렸다는 소식은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조국과 안철수, 엘리트였으되 지도자는 아니었다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를 공격 목표의 일부로 설정한 현상은 아니었다. 분노한 대중이 불공정한 정치권력, 재벌권력, 언론권력, 교육권력, 문화권력을 겨냥해 일으킨 거대한 해일이었다. 조국 현상 역시 안철수 현상처럼 불공정한 정치권력, 재벌권력, 언론권력, 교육권력, 문화권력을 향한 대중적 분노의 쓰나미이다.
안철수 현상과 조국 현상의 결정적 공통점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의 분노한 20대가 그 주역이라는 데 있다. 당연히 중차대한 차이점도 있다. 조국 현상에는 안철수 현상에서는 아직은 어렴풋한 형태로만 있었거나, 또는 아예 드러나지 않았던 두 가지 불공정한 기성권력이 젊은 청년세대의 들끓어오르는 분노의 표적으로 자리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남한사회 최강‧최고‧최대의 기득권세력으로 출현한 586 세대의 카르텔 권력이고, 두 번째는 문재인 정권의 공식적인 2인자로 화려하게 등극한 조국 장관 자신이 오랫동안 저질러온 위선과 불공정함이다. 안철수가 분노의 주체였다면, 조국은 분노의 대상인 셈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에게 마냥 후한 평가를 내리는 건 아니다. 안철수 전 대표 또한 조국 장관 같이 엘리트였지, 리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리더는 인민과 개인적 삶의 운명까지도 함께하는 사람이다. 엘리트는 인민과 개인적 운명만은 철저하게 달리하는 사람이다. 단적으로, 모택동은 리더였고 장개석은 엘리트였다. 게다가 엘리트는 태생적으로 특권과 반칙을 일삼는 존재이기 마련이다. 엘리트는 이론을 주장하는 즉 세상을 관조하는 인간이지, 이론을 실천하는 곧 세계를 변혁하는 인물은 아닌 것이다.
필자는 조국 장관이 우리나라 법무행정의 수장으로 임명되는 것을 처음부터 시종일관 반대해왔다. 그럼에도 나는 조국에 대한 세간의 돌팔매질에는 분명 과도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국 장관을 유복한 엘리트가 아닌 유능한 리더로 착각한 당사자는 결국은 대중 자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국에게는 그가 지금껏 내뱉어온 온갖 유형의 정의로운 독설과 진보적 미사여구를 양심적으로 실천할 책임이 근원적으로는 없다. 그도, 그의 가족도 우리네 서민들과는 아주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 자라고 생활한 전형적인 엘리트 귀족계급인 이유에서이다.
귀족에게 민중이 한번 속으면 속인 귀족이 나쁜 놈이다. 허나 귀족에게 민중이 계속 속으면 속은 민중이 나쁜 놈이다. 조국 장관의 건투를 빈다. 조국 법무장관의 운동권 귀족과 윤석열 총장의 검찰 귀족 사이의 권력투쟁으로부터 전사자가 많이 나면 날수록 그건 엘리트들끼리의, 귀족들끼리의, 지배계급들끼리의 치열한 밥그릇 싸움에서 당분간은 숨죽이며 어부지리를 노려야만 하는 옹색한 입장인 우리네 대다수 인민대중들에게는 좋으면 좋았지, 결단코 나쁜 일인 아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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