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뜨거운 감자 정세균
정세균 전 국무총리(이하 정세균으로 호칭)는 조직력의 정치인이다. 정세균과 조직의 관계를 나훈아와 트로트의 관계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까닭이다.
정세균을 키운 힘의 8할이 조직의 힘이었다면, 정세균이 받아온 비판의 8할도 조직의 힘 탓이었다. 정세균은 조직의 쓴맛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경쟁자와 정적들을 차례차례 제거해왔다는 혹독한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왔기 때문이다. 정세균을 겨냥해 그러한 취지의 공격을 남부럽지 않게 퍼부어온 대표적 인간은 다름 아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본인이다.
나는 이를테면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2009년 봄에 전라북도 전주에서 치러진 보궐선거에 불가피하게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사태의 원인은 당시 민주당 당대표로서 당권을 장악하고 있던 정세균이 당조직을 총동원해 정동영을 정치적으로 왕따시킨 데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어느 날 내 인생에 정세균이 들어왔다」는 부제를 달고 있는 우석훈 성결대 교수의 책을 열심히 읽는 것에 더해서 책을 보는 과정에서 느꼈던 소회까지 또박또박 글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정세균의 대선행보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될 행동은 아닐 것이다. 왜 나는 평소에 그토록 격하게 미워해온 정세균에게 플러스가 될 게 명명백백한 이적행위에 스스로 자청해 나선 것일까? 그 대답은 「다크 히어로의 탄생」의 저자인 우석훈이 그의 블로그를 통해 피력한 심경의 일부를 잠깐 빌려오는 걸로 충분하리라.
“정세균 책 나왔다. 그야말로 우정에 관한 책이다.”
그렇다. 도서출판 오픈하우스에서 펴낸 「다크 히어로의 탄생 : 어느 날 내 인생에 정세균이 들어왔다」는 우석훈이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의 부원장으로 근무하던 2년 동안 정세균을 거의 매일 만나며 두 사람, 아니 두 남자 사이에 싹트고 쌓인 우정을 우석훈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꼼꼼하게 갈무리해놓은 내용의 책이다.
정세균이 조직인의 대명사라면 우석훈은 개인주의의 화신이다. 그는 고독한 늑대로 불려도 무방할 지경의 독립된, 어쩌면 고립된 삶을 한국 굴지의 대기업인 현대그룹에서의 안정된 회사원 노릇을 돌연 그만둔 다음 줄곧 고집해왔다. 더욱이 우석훈은 최근 들어서는 좌파로서의 커밍아웃조차 공공연히 불사하는 중이다. 역시나 대기업인 쌍용그룹에서 임원인 상무로 퇴사한 정세균과는 궁합이 맞으려야 맞을 수가 없는 유형의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우석훈은 주변 지인들의 집요한 반대와 간곡한 만류를 끝내 뿌리치고서 정세균을 위한 책을 적잖은 시간을 투자해 공들여 완성시켰다. 그는 책을 서술하면서 좌파들은 여간해서는 쓰지 않는 ‘우정’이라는 단어를 서슴지 않고 사용했다. ‘우정’은 ‘의리’와 나란히 한국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영락없는 빼도 박도 못할 우파의 언어이다. 좌파는 의리나 우정 대신에 ‘박애’ 또는 ‘연대’를 애용한다. 정세균을 지원하고자 우석훈은 장문의 책 한 권을 쓰는 데 머물지 않고 비록 일시적일지언정 우파로의 외도마저 서슴없이 감행했다.
남자의 남자 정세균
악은 악을 부르고, 선은 선을 낳는 법이다. 필자가 우석훈의 「다크 히어로의 탄생」을 주제로 글을 작성하기로 결심한 건 순전히 우석훈을 향한 우정 때문이었다. 우석훈의 정세균을 향한 우정이, 우석훈을 향한 나의 우정으로 연결된 셈이다.
나는 올해 두 권의 책을 만들게 되었다. 하나는 지난 2월에 출판된 대담집 「리셋 대한민국」이다. 또 다른 하나는 며칠 후에 간행될 예정인 「이준석이 나갑니다(부제 : 이준석 전후사의 인식)」이다. 두 책 전부 우석훈의 흔쾌한 지지와 격려가 있었기에 내가 제작에 감히 관여할 수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가 우석훈에게 의리와 우정을 느끼지 못하다면 그야말로 배은망덕한 짓일 게 분명하다.
나의 우석훈에 대한 우정은 일종의 보은의 성격을 띤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선 ‘대가성 감정’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반면에 우석훈의 정세균을 향한 우정은 나의 우석훈에 대한 우정과는 달리 철저히 정신적 우정이다. 영어를 동원한다면 순결한 이지적 사랑, 곧 Platonic Love일 게다.
정세균은 우석훈에게 물질적 형태로 환원될 수 있는 계산된 후의와 의도적 배려를 베풀어준 바가 없다. 이러한 사실에 개의치 않고 우석훈은 정세균에게 깊은 신뢰와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천하의 우석훈을 정세균 가까이로 이끌어간 걸까? 그것은 정세균이 그가 아주 어렸을 적 이후로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정세균의 면모를 우석훈한테만 드러낸 데 있었다. 그건 바로 집단에 겹겹이 감싸인 조직인으로서의 정세균이 아니라, 고독한 개인으로서의 단독자 정세균의 모습이었다. 우석훈은 정세균의 가족마저도 아직 모를 수 있는 외로이 홀로 서 있는 남자 정세균의 애환과 고충을 편견 없이, 가감 없이 들여다본 유일무이한 목격자였다.
남자가 남자에게 흉금 없이 털어놓는 속 깊은 비밀은 두 사내를 세상 어떤 것도 떼어놓을 수 없는 질긴 인연으로 묶어놓기 마련이다. 그 모진 인연의 사슬을 우석훈은 도저히 끊어낼 수 없었을 테고, 두 남자의 숙명적 인연을 노래한 낭만적 송가가 정세균이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하는 시점을 즈음해 한 권의 책으로 마침내 등장했다고 하겠다. (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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